[이기명 칼럼] 장기판에서 ‘졸장’당하면 도망칠 곳도 없다

장군 받아라. ’국민저항‘이다’
내 장군도 받아라. 이것도 ‘국민저항’이다.


초딩 때 장기를 꽤 잘 뒀다. 방학 때 시골에 내려가 어른신들 장기 구경하면 얼씬도 못하게 했다. 훈수 둔다는 이유다. 따귀 맞아가며 훈수 둔다지 않던가. 멀리서 보면서도 ‘저건 아닌데’ 속을 태웠다.

요즘 ‘국민의 저항’이 화두다. 대통령도 야당대표도 모두 ‘국민 저항’을 입에 올린다. 대통령은 야당이 장외투쟁을 계속하면 국민이 저항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야당 대표는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외면하면 국민의 저항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잘난 맛에 사는 정치평론가 교수들은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라고 비유한다. 지겨운 논평이다.

▲ ⓒ민중의소리 갈무리

어느 누구의 말이 정당한지는 국민들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 솔직히 자기검열에 걸려서 공개적으로 말도 못하는 형편이다. 왜 이 지경이 됐는지는 분명하다. 국정원의 대선개입과 채동욱 검찰총장의 사퇴압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재판 결과도 안 본 조급한 결론이라고 시비를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다.

신뢰성에서는 바닥이지만 일부에서 하늘처럼 믿는 여론조사라는 것이 있다. 박대통령의 불통에도 불구하고 70%가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그러나 신뢰도 1위라는 <한겨레신문과 리서치플러스>가 실시한 9월17일 여론조사를 보자.

‘국민의 절반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의혹’ 보도 등에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이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새누리 지지자의 31.4%도 그렇게 생각한다. 10명 중 7명은 채 총장에 대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가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3자회담에서 대통령이 ‘채동욱 기획낙마 설에 대해 그런 일 없다면서 법무장관의 채동욱 감찰지시가 잘 한 일’이라는 인식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채 총장이 혼외아들 여부를 가리기 위한 유전자 검사를 수용하고 <조선일보>를 상대로 소송까지 낸 상황에서 나온 법무부 장관의 감찰 지시에 대해서도 ‘유전자 검사 결과 등을 지켜본 뒤 감찰 여부를 결정했어야 한다’(37.5%), ‘확인되지 않은 의혹보도에 대한 감찰지시는 옳지 않다’(33.3%) 등 부정적 의견이 70.8%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16일 전국 19살 이상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집전화와 휴대전화를 절반씩 섞어 임의걸기 방식으로 진행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 오차는 ±3.4%다.

다른 여론조사는 어떤가. 내일신문의 여론조사를 보자.

내일신문은 전체 여론조사 대상 800명 중 대통령 국정운영 긍정평가자 552명에게 지지 이유를 물었더니 190명만 ‘실제로 일을 잘하고 있어서’라고 응답했다. 800명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23.8%다. 대신 박 대통령 지지율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 것은 ‘일을 잘할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어서(25.6%)’라는 응답이었다.

<내일신문>은 “현재의 국정수행에 대한 평가보다 기대감이 박 대통령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는 셈”이라며 “ ‘지지율’이라는 단어에 가려져 있던 ‘실체적 진실’이 모습을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국민 10명중 7명은 채동욱 검찰총장이 지난 6개월 동안 검찰총장 직무를 잘해왔다고 긍정평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자.

18일 인터넷신문 <뷰앤폴>은 지난 16일 3자회담이 끝난 직후 여론조사를 했다. 전국 성인 휴대전화가입자 1천500명을 대상으로 지난 6개월간 채동욱의 직무평가를 한 결과 ‘잘 했다’가 68.5%로 조사됐다. ‘잘 못했다’는 17.8%에 그쳤다. 무응답은 13.8%였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도 잘했다가 64.7%, 잘못했다 22.1%다. 대구경북도 잘했다가 70.1%, 잘못했다는 21.4%로 긍정평가가 압도적이다.

한편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55.3%로 지난 9일 조사 때보다 2.1%포인트 하락했다. 부정평가는 34.5%였으며, 무응답은 10.1%였다.

국민들은 3자 회담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민낯을 확인했다. 그의 '지지율 거품'은 이번 추석이 지난 후 들어날 것이다.

왜 이런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까. 공정한 여론조사라면 국민들의 상식이 반영된다. 그래서 상식이 무섭고 국민이 두렵다는 것이다.

정치는 대통령 혼자 하는가.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과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의 정치는 대통령 혼자서 다 했다.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했고 심기 살피느라 말도 제대로 못했다. 이런 독재밑에서 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다. 물이 흐르지 않으면 반드시 썩듯이 소통이 멈춘 정치는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세종대왕같은 성군도 신하와 백성과 소통이 있었기에 현군이 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을 불통이라고 한다. 매우 불행한 일이다. 성장과장에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세상 돌아가는 거 다 알 수 있는 세상이다. 사람을 쓰는 용인술에 문제가 있다. 도대체 초원복집 사건의 주인공을 비서실장으로 기용하는 용인술에 박수를 보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대화는 힘 있는 사람이 가슴을 열어야 이루어 질 수 있다. 힘이 있으니 너희들은 따라와 하면 설사 따라 간다 해도 진정한 대화는 없다. 더구나 지금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는 결코 정치가 성공할 수 없는 시대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힘이다. 강권이다. 강권이 언제까지 갈 수 있는가. 길어 봤자 4년 반이다. 연속 드라마도 재미없으면 시청자의 외면으로 조기 종영이 된다. 정치도 다를 것 없다.

남의 얘기 들어야 내 모습이 보인다.

한인섭 교수는 법학을 가르치는 서울대 법대 교수다. 그의 제자 검사들도 수두룩할 것이다. 한인섭 교수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의 말을 경철하자.

“야당이 장외투쟁 고집하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박대통령이 말하는데. 야당이 국민저항에 직면한다는 발언은 머리 털 나고 처음 들어봤다. 국민의 저항권은 야당이 아니라 언제나 집권자와 독재자를 겨냥하게 되는 것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의 선거개입 공판이 지금 국민의 주시속에 진행되고 있다. 공판팀의 A검사는 15일 검찰 내부 게시판에 ‘검찰수사 외압 및 검찰총장 음해 의혹’을 정리했다.

“민정비서관은 일부 검사에게 조선일보 보도 예정 사실을 알렸고, 그 무렵 일부 검사에게는 총장이 곧 그만 둘 것이니 동요치 말라는 입장을 전달하였다”

지금껏 민정비서관이 “검찰총장이 곧 그만 둘 것이다”라는 발언한 사실은 알려졌지만, “조선일보의 ‘혼외아들’ 보도를 검사들에게 예고했다”는 주장은 처음 밝혀진 것이다.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 박지원 의원도 “8월 한달간 채 총장에 대한 ‘사찰’이 (청와대에 의해) 비밀리에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A검사는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과정에 있었던 외압사실도 조목조목 기록했다.

민정에서는 국정원 사건 결론 전에 공선법 위반이 어렵다고 검토의견을 정했고, 민정수석은 수사지휘 라인에 있는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공직 선거법 위반’기소가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또 특별수사팀이 기소 뒤 수사과정에서 추가 압수수색 등을 수행하는 것에 대해 “민정과 법무부는 부적절 입장을 피력하였다”고 주장했다.

A검사는 자신이 거론한 의혹들에 대해 “법에 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수사 외압이 직권남용 등으로 처벌받은 전례가 있고 위법한 방법을 통한 음해 정보 취득 및 사용등 역시 형사처벌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안달하지 말라. 잘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추석민심에 신경을 세운다. 그러나 잘하면 된다. 잘못하면서 민심을 얻으려고 한다면 그건 도둑놈 심보다. 잘하면 국민들은 지지하지 말라고 고사를 지내도 지지한다.

앞 뒤 문 꽁꽁 닫아 걸고 대화를 거부하는 대통령을 국민이 어떻게 평가할까. 대선에 관여해서 국민의 공정한 선택을 망친 국정원과 경찰을 국민이 지지하면 그게 이상하다. 이들 민주정치를 방해한 반민주 세력들과 온 몸으로 싸우는 것은 야당의 의무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것을 방기한다면 국민은 야당을 지지할 이유가 없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그들은 국민의 사랑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한다.

여.야당 의원들이 서울역에 나가 홍보전단을 귀성객들에게 돌린다. 항상 보는 현상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천박함은 어디에서도 입질에 오른다.

“누가 대한민국의 적을 국회에 들였습니까”란 제목의 홍보 책자 27만부에는 새누리당 의정활동 성과 보다 야당에 대한 비판과 야당 대표를 희화화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특히 천막 당사에서 노숙 중인 김한길 대표의 사진과 함께 한 개그 프로그램 유행어를 패러디해 ‘한길 오빠, 노숙하고 가실게요~’라는 제목을 달았다.

제목 밑에 “호화로운 이불, 침대, 노트북, 전깃불까지 다 있네”, “이게 노숙이냐, 캠핑이지”
라는 글이 네티즌의 이름을 빌려 실렸다. 사람의 탈을 쓰고 할 짓이 아니다. 욕 먹지 못해서 환장을 했는가.

장기판도 사기를 치면 구경꾼이 판을 엎는다.

청와대와 국정원과 새누리와 경찰과 조선일보가 한통속이 되어 대선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속속 등장한다. 미운 오리새끼 채동욱을 조선일보의 추잡한 ‘혼외자녀’기사로 묶어 내 쫓았다는 것도 국민들은 믿고 있다. 새누리는 몸살이 날 것이다. 추석이 원수같은 집단이 있을 것이다.

잘못하면 매를 맞는 것이 당연하다. 머슴이 잘못하면 새경도 못 받고 쫓겨난다. 장기판에서 사기를 치면 관전하던 훈수꾼들이 판을 엎어 버린다. 훈수꾼이 누군가. 바로 국민이다.

이 기 명(팩트TV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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