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년, mb정권의 실책으로 국민의 실질적 소득은 뒷걸음질 쳤다. 그럼에도 mb정부 권력과 언론은 치밀한 음모와 공작으로 경제 불안을 조성하면서 국민들의 위기의식을 키웠다.

무너지는 하우스푸어 이야기, 그로 인한 금융권의 붕괴, 그렇게 되면 우리 경제는 무너질 것이라는 보수 언론의 예측은 집도 없는 서민들까지 자기 주머니를 움켜쥐도록 만들었다. 그로 인한 서민들의 소비 위축도 국가 위기처럼 떠들었다.

어렵다는 경제 속에서도 외제차의 수입 증가, 명품 시장의 과열 등 부자들의 씀씀이는 커지고 있었는데 그런 양극화 현상에 대한 고찰 없이 위기만을 강조하는 언론의 의도를 바로 보는 국민들은 많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고 낮은 수위이지만 교묘하게 NNL을 들먹이면서 야당 후보를 걸고넘어지는 고도의 심리극을 연출한 것도 권력과 언론이었다.

맑은 물 한 컵에 빨간 물감 한 방울 떨어뜨리고 서서히 번지는 효과를 노린 고도의 심리전이었다. 자신들의 가슴에 물감처럼 번지는 안보불안이 권력과 언론이 연출한 심리극이 노리는 효과임을 모르는 국민들은 슬픈 영화를 보고 울듯이 그냥 따라가고 말았다.

거기에 실천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한데도 세금을 줄이겠다는 공약, 중산층이 70%가 되는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여당의 민생을 앞세운 공약이 과연 실천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따질 능력이 없었던 국민들은 그냥 자신들이 기대하는 쪽으로 기울어 갔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기업을 팔아넘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예측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여당이 던져준 먹기 좋은 곶감을 집어 들었다. 그런 환경을 만드는 쪽이 권력과 언론임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채소가격 인상, 과자 등 공산품 가격 인상 등 물가 인상의 근본적인 원인이 기후변화와 농촌 인구의 감소 등으로 인한 정부의 실패에 있음에도 국민들은 그런 사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처방은 없고 무조건 각종 위기와 불안이 “왔다!” “왔다!” “왔다!” 고만 외치는 권력과 언론의 의도에 국민들의 쏠림현상은 심각해지고 있었다.

안철수 효과를 기대하는 야당후보를 보면서도 안타까웠다. 안철수의 양보가 후보 경선에 의한 승복이 아니라 떠밀린 양보였다. 그럼에도 국민들의 정서를 모르는 민주당은 단일화라고 주장했다. 개인적으로 대선 전 우리 사회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솔직히 정권교체가 어렵겠구나 하는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몇 번 <한겨레> 블로그에 걱정하는 글을 올리고, 투표일에는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부축하고 가서 기권시키지 않았던 까닭은 그런 불안을 끝내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투표율이 오르면 젊은이들의 표가 많아질 것이라는 기대는 절대적인 판단 착오였다. 나이든 유권자들이 젊은이들보다 자신들의 불투명한 이익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투표하리라고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출구조사의 발표 순간의 심정은 말하지 않겠다. 개표를 볼 수 없었던 심정도 야당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떻든 대선은 끝났다. 이제 형식적으로는 높은 득표율과 투표자의 50%를 넘는 득표로 당선된 여당의 후보에게 권력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나는 여당 후보의 당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밴댕이 속이라는 비난을 들을지라도 당선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5.16과 유신에 대한 당선자의 역사의식, 노동자들에 대한 편협한 사고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 mb에 대한 면죄부는 주어졌고 성탄절 축사로 감옥에 갇힌 mb 형님과 최시중 등 그 측근들도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재벌들은 기분 좋게 축하 선물을 마련할 것이다.

검찰 국정원 등 권력 기관은 편하게 안도의 숨을 쉴 것이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민주주의의의 기막힌 역설! 그렇다고 먹고 사는 것만을 최선으로 여기는 단세포적인 구호가 먹혀들어가는 현상, 잘살게만 해준다면 일본인이 대통령을 출마해도 당선시켰을 것 같은 일부 국민들의 우매함을 탓하고 싶지 않다.

생각이 달랐다고 악담하는 것도 듣기 거북한 일이다. 당선자가 나오는 TV를 외면하는 것은 일시적인 화풀이 일뿐 더 먼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나는 탓하고 악담하고 외면하고 살지 않으려 한다.

누구나 그간의 잘잘못을 가리는 평가나 분석은 필요할 것이다. 민주당도 평가 작업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염원하는 국민들의 기대를 좌절시켜 미안하다.” “민주당의 정책이 국민들의 감성적인 공감을 얻지 못했다.” “선거 운동 기간 중 국회의원들 모두가 취약지역의 장터를 맴돌며 호소하지 못했다.”
등등의 빤한 분석은 경계한다.

정말로 민주당이 피눈물 흘리는 1천 4백만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국회의원 모두가 국회기둥에 머리를 찧지는 못 할망정 몇 사람인가는 책임지고 정계 은퇴라도 선언했어야 옳다. 그러나 최소한 몇 수를 앞서보는 예지 능력조차 없는 인간들이 국회의원 금배지나 어루만지있는 역겨운 꼴을 보는 것은 선거의 패배로 인한 상처와는 또 다른 아픔이다.

이제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면 텃밭이나 일구고 글이나 쓰면서 살고 싶을 뿐이다. 다만 언론 출판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또 국민의 저항권을 명시한 헌법21조의 권리가 보장되고, 모든 국민이 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와 비판의 소신을 밝히고도 인권이 침해당하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경제적으로 빈부의 격차가 적은 나라, 누구나 안심하고 대문을 열어놓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또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 금강산과 백두산을 마음대로 구경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결과가 못 마땅하다고 수양산 고사리만 캐먹고 산들, 무인도에 들어가 미운 인간들 꼴을 안 보겠다고 한들 내 나라 정치 현실은 피하기 어려운 개인의 운명일 수밖에 없다.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돌아가신 내 아버지 나이를 생각하면 금년 대선은 나에게 마지막이 된다. 살아계신 어머니의 나이까지 산다면, 그리고 현재와 같은 5년 단임제라면 4번의 대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불과 60년대 평균 수명을 생각하면 많이 산 셈이다.

적극적으로 앞장서 물리적인 투쟁을 하기는 어려운 나이, 거창하게 남을 돕거나 자신을 던져 봉사하며 살겠다는 약속은 하지 않겠다. 그저 실수없이 깨끗하게 살고자 한다. 내가 키운 농작물이 여유가 있다면 찾아오는 이웃에게 한 움큼 나누면서 살고자 한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가끔씩 잘못 가는 정권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 그건 얼굴을 볼 수 없는 먼 후손까지는 아니더라도 손자의 밝은 미래를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 지금의 절망을 넘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선 이 겨울에는 당선자의 공약을 꼼꼼히 검토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아직 가슴에 담긴 분노의 눈물을 퍼내지 못한 분들께 힘내시라는 격려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2.12.22.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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