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느림과 게으름이 죄가 되지 않는 곳

일반적인 정의이지만 귀촌은 농업을 생계 수단으로 하는 전업농이 아니라 텃밭 농사차원의 전원생활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 귀촌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다.

실제로 직업을 농업으로 전환한 귀농이나 전원주택을 지어 귀촌한 사람들도 크게 증가했다는 자료도 보인다.

개인적으로 오랜 준비 끝에 농촌에 정착한 사람으로서 반가운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귀농 혹은 귀촌한 사람들 모두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염려도 된다.

▲ 나무에 살짝 가린 우리 집의 가을 풍경. 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는 집이다.뜻만 있다면 누구나 이룰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홍광석

귀농 혹은 귀촌하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많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금전적인 지원도 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생계형 농업을 위한 귀농은 물론 더 어렵고, 적당한 텃밭과 꽃밭을 가꾸며 사는 전원생활형 귀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귀촌을 함으로써 수 십 년 젖은 도시생활의 타성을 깨야 되는 과정도 그렇지만 도시에 비해 농촌(혹은 어촌)은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농촌은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여러 가지로 불편한 곳이다.

거의 모든 마을에는 마을에 빵 한 개 과자 한 봉지를 살 가게가 없다. 갑자기 손님이라도 오면 생선 한 마리 돼지고기 한 칼 살 곳도 없고, 전구 비누 칫솔 같은 생활용품을 사려고해도 차를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백화점은 멀리 있고 눈 나쁜 사람에게 안경집도 찾기 어려운 곳이다.

카페는 물론 맥주집도 없고 영화관은 꿈도 꿀 수 없는 곳이다. 때문에 새로운 일을 시작 했을 경우 포기할 것은 많고 기대하는 것이 불확실하다면 귀촌역시 누구라도 망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고 부부가 뜻을 모았다고 해도 귀촌을 실행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다른다. 먼저 살 집과 농사지을 땅을 구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지리적으로 이상적인 곳, 자신의 경제적인 형편에 맞는 땅을 찾기란 배우자를 찾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도시에서 멀리 있는 땅은 내키지 않고, 도시 가까운 곳의 마음에 든 땅은 가격이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또 경치가 좋다면 인가와 너무 멀어 적적할 뿐 아니라 교통도 불편하다. 원하는 넓이의 땅이나 살만한 집도 정작 찾으려면 쉽게 보이지 않는다. 땅 찾기, 상당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할 일이다.

집과 땅을 구하여 귀촌했다고 하더라도 전원생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풀어야할 일이 원주민들과의 관계 설정이다. 요즘 농촌은 대부분 노인들만 있는데 대개 젊은이들의 귀농을 환영하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은 자기들의 삶과 다른 귀촌한 이들의 도시적인 생활양식을 고깝게 보는 경우 많고, 자기 자녀들이 사회적으로 성공한 노인들은 귀촌한 이들을 자녀들의 기준으로 판단하여 귀농인들을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또 일부 노인들의 경우 다듬어지지 않는 오기로 귀촌자들에게 시비를 걸어 불화를 조장하는 일도 있다.

그밖에도 작게는 인사성이나 옷차림을 문제 삼는 노인들도 있기에 귀촌 이후에도 상당기간세심하게 신경 써야할 것으로 본다.

▲ 서리내린 아침의 소나무와 남천. 도시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홍광석

농촌에 안착한지 100일째. 5년의 준비와 집짓기, 이제 우리는 완전히 마을 사람이 되었다.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멀리 있고 목욕탕 이발관 등 간단한 편의시설도 차 없으면 불편한 곳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행하게도 마을 사람들과 단 한 번의 충돌 없이 자리를 잡았다.

오히려 농사방법을 전수받았고 토종 씨앗을 얻는 등 마을 노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지금도 마을 노인들은 우리에게 없는 채소 종자를 나누어주고 김치를 담으면 맛보라고 건네준다. 우리 역시 마을 울력에는 내가 예초기를 지고 참여하고, 마을의 행사에는 아내가 작은 성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최근 그동안 여러 분야의 많은 사람들이 집을 다녀갔다. 그러면서 숙지원의 텃밭과 정원이 소박하면서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린다며 후한 평점과 더불어 부러움을 남겼다. 아마 새집이라는 사실도 좋게 보이는 요인이었을 것이다.

구경 온 사람들에게 그들의 관심사인 집짓는 과정의 이야기도 하지만 나아가 귀촌 시 좋은 점과 어려운 점을 이야기 한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 부러워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귀촌의 과정을 알고 참고하라는 뜻이다.
아마 5년이라는 준비과정과 금년에 봄부터 여름까지 이어진 집짓기의 이야기를 다시 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귀촌하기까지의 과정은 이미 많은 글을 통해 밝혔고 또 ‘아내의 뜨락’이라는 한 권의 책에 담았으니 여기서는 간단히 결론만 이야기 하고 줄이고자 한다.

전원생활. 도시에 비하면 불편한 점이 많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그런 불편함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여성들을 위한 과자 한 봉지, 남성들의 방문에 대비하여 말린 조기 몇 마리 사둔다면 미안한 일은 없을 것이다. (하긴 손님들에게 깨끗한 채소만 대접해도 괜찮을 것이다.)

전구 치약 비누 등 일상 용품도 미리 조금 여유 있게 준비하면 될 것이다. 요즘 교통이 편리하여 도시 출입도 예전처럼 머리 무거운 행사가 아니다. 입은 옷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영화관으로 달려간들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설정하는 것도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고 본다. 마을 사람들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태도, 마을 일에 적극 참여하며 또 자두 몇 알 야콘 한 봉지라도 나누려는 정성만 정신만 있으면 노인들의 마음을 잡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전원생활을 동경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텃밭에 채소라도 가꾸어 먹는 꿈을 꾼다고 들었다. 하지만 텃밭 농사라고해서 만만한 일은 아니다. 밭을 만들고 씨앗을 넣는 일, 아무리 구박해도 잘도 자라는 풀을 뽑는 일, 허리를 굽혀 수확하고 그것들을 햇볕 좋은 곳에 널어 말리는 일을 재미있는 놀이로 여기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확한 마늘을 묶어 그늘에 쌓고, 말린 고추를 자루에 담아 손으로 무게를 가늠하는 일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기쁨이다.

또 고구마나 야콘을 컨테이너 박스에 담아 창고에 쟁여놓으면 얼마나 든든한지! 더구나 먹걸이의 안전성이 의심스러운 요즈음 내 손으로 지은 완전한 무공해 식품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그 즐거움과 보람은 흘린 땀의 무게를 넘을 것이다.
텃밭 농사,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다.

요즈음 나는 느리게 산다. 그렇다고 숙지원의 모든 일이 끝났다는 말은 아니다. 화목 보일러 불쏘시개를 준비하는 일, 아내가 부탁한 꽃밭을 만드는 일, 그 꽃밭 경계에 심을 돌을 주워오고 또 그 돌을 심는 일, 뒤뜰의 진땅에 건너기 편리한 돌 징검다리를 놓기, 나무 가지치기, 너무 밴 나무 솎으기, 하우스 채소밭에 물주기 등등 잔잔하게 할 일은 많다.

▲ 하얗게 서리내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전원의 즐거움일 것이다.ⓒ홍광석

하지만 6년을 지켜온 땅이기에 어디에 무슨 나무가 심어졌으며 어디에는 무슨 풀이 잘 자라는지 눈을 감고도 훤하고, 때를 놓치면 안 되는 급한 농사도 없고 강제로 등을 떼미는 사람도 없고 누구와 다툴 일도 없기 때문에 추우면 말고 비가 오면 쉬면서 느리게 아니 게으르게 돌아다닌다.

개인의 취향과 뜻에 따라 재미를 느끼는 일이 다르겠지만 간섭도 경쟁도 없는 혼자 설계하고 노동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일 중의 하나가 전원에서 텃밭을 일구는 일이 아닌가 한다.

귀촌. 거창한 명분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도시의 보이지 않는 경쟁에서 나라도 한 자리 양보하겠다는 마음으로 결정하고, 농촌 마을에서 통하는 상식을 존중하며 살겠다는 준비만 되어있다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귀촌은 자신과 가족이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길이며, 또 나보다 형편이 어려운 그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 될 것이다.

특히 은퇴자와 은퇴예정자들 그리고 도시 생활에 지쳐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참고하기를 바란다.

끝으로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기대하지 말 것을 부탁하고 싶다.
그런 도움은 처음부터 빚을 안고 시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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