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흔적을 지우는 계절

초여름에 수확한 마늘, 양파, 완두콩은 지난해 가을 심은 것들이다.
마늘은 12접 정도 수확 예상했으나 봄 가뭄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탓으로 10접 밖에 건질 수 없었다. 그래도 우리 가족이 1년을 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양파는 30kg 정도 수확했다.
겨울을 난 완두콩은 10kg 넘게 수확했는데 선물용으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이었다.
아내는 양파와 완두콩을 이웃들에게 나누었더니 양파보다 완두콩을 무척 고맙게 여기더라고 했다.

이른 봄에 가장 먼저 심은 감자는 흉작이었다.
겨우 종자나 남길 수 있을 런지 모르겠다고 한다.
텃밭에 야콘 옥수수 가지 오이 토마토 그리고 각종 채소 등을 차례로 심고 고구마는 가장 늦게 6월 중순 심었다.

오이와 가지는 풍작으로 여름 내내 우리 밥상의 중심에 있었다.
오이는 내가 직접 모종을 만든 탓에 모종의 양이 많아 들어 비닐하우스와 텃밭 그리고 소나무 사이 세 군데로 나누어 심었다.

그런데 어느 해보다 수확하는 양도 많아 당뇨 환자에게는 과일을 대신하는 매우 기특한 채소라고 하여 여름 동안 내가 마음껏 먹었던 점도 그렇지만, 그보다 아내와 내가 훑고 지난 자리에 다음날이면 꼭 노각이 된 오이를 한 두 개씩 발견할 수 있었는데 보물을 찾은 듯 재미있었던 일도 기억에 남는다.

가지는 여름내 많이도 먹고 오는 사람에게도 나누었지만 서리가 내린 현재도 따먹고 있으니 고맙게 여긴다.
반면 옥수수는 완전히 흉작이었다.
가뭄도 가뭄이려니와 종자를 바꾸지 않고 계속 심은 탓에 총자가 퇴화하여 수확이 떨어진 것이다. 숙지원 조경용으로 심었던 것이라고 접을 수밖에 없었다.

마늘과 양파 완두콩을 심었던 자리에 참깨를 심은 것은 6월 하순이다.
자급자족을 목표로 아내가 다리에 쥐나도록 심었고 기대또한 컸다.
참깨는 다른 작물에 비해 생육 기간이 짧다.
거름만 충분히 주면 연작의 피해도 덜 하다고 한다.

그러나 쭈그리고 앉아 일일이 심는 과정이 고단할 뿐 아니라 수고에 비해 수확량도 적고 터는 과정에서도 씨알이 잘아 잔손질이 많이 가는 작물이다.
그래서 시골 노인들도 재배를 꺼리는 작목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무튼 야심차게 출발한 참깨농사는 볼라벤이라는 태풍이 오기 전까지는 순조로웠다.

그런데 볼라벤이라는 태풍이 망쳐버린 것이다.
널어 말리던 비닐 하우스안이 침수되는 바람에 이미 쏟아진 참깨 알들이 폭우에 하얗게 떠내려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온전하게 거둔 것은 5되 정도였지만 아내는 그나마도 다행이라고 했다.
참깨를 털고 잡것을 골라내는 일은 늙은 어머니가 했는데 힘없는 노인들의 소일거리로는 적합한 일거리인 듯 싶었다.

기왕에 자급자족은 못하게 된 것, 아내는 양념거리만 남겨두고 참기름을 짜더니 추석에 온 동생들에게 한 병씩 안겨주고 말았다.
동생들은 냄새부터 “꼬숩다”면서 즐거워했다.

고추는 200주 심어 마른 고추로 13kg를 건졌는데 우리 가족의 1년 수요량과 거의 일치하여 완전한 자급을 이룬 셈이다.
무엇보다 일체의 농약과 비료를 뿌리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완전하고도 깨끗한 태양초라는 점을 더 자랑하고 싶다.

요즘 가을 수확이 진행 중이다.
콩은 별 볼 일이 없고, 팥은 현재 어머니가 틈틈이 수확중인데 우리가 1년 먹을 것은 나오지 않을까 싶다.
김장 배추와 무를 조금 늦게 심은 탓인지 알차지 못한데 상추 쑥갓 부추 등 채소는 그런대로 풍성하다
아직 하우스 안의 고구마와 텃밭의 야콘, 생강을 캐는 일만 남았다.

▲ 숙지원 꽃밭. ⓒ홍광석

숙지원의 또 다른 풍경은 잔디밭 가장자리 혹은 나무 사이 여기저기에 있는 듯 없는 듯 박힌 꽃밭이다.
아내의 꽃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어느 계절에 무슨 꽃을 심고 무슨 꽃이 피는 줄 아는 것은 기본이요 꽃의 키와 색상도 꿰고 있다. 흙에서 내민 싹만 보고도 무슨 꽃인지 알아 맞춘다.

지금은 서리 내리기 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멜란포디움 디기탈리스 달리아 사르비아 금관화 국화 과꽃 백일홍 담배꽃 일일초 등이 마지막 가을을 지키고 있다.
특별히 빛나게 아름답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흠 잡을 것이 없는 꽃들, 찾는 이가 없을 지라도 제자리를 지키는 그 꽃들을 보면서 나는 낙원을 꿈꾸면서 이승을 떠도는 넋들을 생각한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품은 것이 하나의 욕심이요 가볍지 않은 죄인지 모른다. 하지만 결코 유한한 짧은 찰나의 도전으로 끝나고 말지라도 낙원을 꿈꾸는 꽃의 존재를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으리라.
아내는 그런 꽃을 붙들고 낙원을 꿈꾸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 꿈이 부질없다고 생각되지 않는 까닭은 그 꿈이 있음으로 아내의 세상이 좀 더 밝아지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비록 상큼하게 먹을 수 없고 앉아서 쉴 그늘도 만들어주지 않는 작은 꽃, 요염하지도 짙은 향기도 없는 작은 꽃들을 보면 마음은 편안해진다.

▲ 가을 풍경으로 다가오는 감나무. ⓒ홍광석

감나무에 감을 따지 않고 두었더니 그것도 하나의 풍경으로 다가온다.
이제 며칠 후면 그것들도 사라질 것이다.
많은 것을 떠나보내는 가을, 이제는 가슴 철렁하게 서운한 것도 없고 눈이 시리게 그리운 것도 많지 않다.
그저 보이는 가을 풍경속의 한 자리를 조금 더 오래 지키고 싶을 뿐.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을 어이 막을 수 있으랴.

이제 날 잡아 야콘과 고구마를 캐면 겨울은 성큼 다가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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