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지원에 첫서리 내리고

땔감은 열에너지를 발생시키는 물질로 음식을 조리하는 소재일 뿐 아니라 추울 때는 난방용으로도 활용하는 것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대체로 인간이 생존하는 곳에서 땔감의 소재는 주로 나무였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가축의 분뇨를 말려서 땔감으로 활용한다고 들었다. 인간의 의식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땔감.

과학의 발전은 땔감의 소재를 확대하는 과정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석탄을 땔감으로 사용하여 동력을 얻어 산업혁명을 이루었고, 석유의 사용으로 교통의 발달로 이어졌음을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땔감의 종류는 다양해져 원자력이나 천연가스 또 옥수수 등을 가공하여 얻은 바이오 연료를 열에너지를 활용하는 시대가 되었고 교통 기관을 움직이는 연료가 된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과거 우리나라도 땔감의 소재는 단연 산에 자라는 나무가 으뜸이었다.
겨울이 길고 추위가 심한 우리나라 기후조건상 땔감인 나무는 음식 조리뿐 아니라 난방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도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해조류와 단백질 공급원으로서 어(魚), 소금 염(鹽), 땔감을 뜻하는 시(柴), 문자 그대로 곡식을 비롯한 인간의 먹걸이를 말하는 초(草)를 묶어 어염시초(魚鹽柴草)의 중요성을 꼽았을 것이다.

역사적으로도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귀족과 사대부들에게 곡식을 생산하는 전답과 땔감을 조달할 수 있는 임야를 지급하는 전시과제도라는 독특한 토지제도를 시행했는데 땔감의 중요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귀촌 2개월.
날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텃밭 농사에 매달린 것은 아니었으나 한가하게 외출할 틈이 거의 없었다.
고추대를 뽑아 정리하고 참깨를 털고 괭이로 텃밭을 일구는 일 말고도 대문앞 도로에 넓적한 돌을 심고 주변에 자갈을 까는 일, 휀스 주변을 정리하는 일, 잔디밭의 잡초를 뽑는 일, 아내의 꽃밭을 만드는 일 등 자잘한 일들이 그치지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에 주말이면 찾아오는 손님들은 물론 지나가다가 구경 좀 하고 싶다는 사람들을 응대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겨울을 대비한 땔감을 비축하는 일도 여러 날이 걸렸다.
취사에서 난방까지 도시가스를 이용했던 광주와 달리 농촌의 취사는 LPG 가스를 사용하고 난방은 화목과 기름(등유) 겸용 보일러, 그리고 벽난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난방 문제를 기름으로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름값이 오죽한가.
그러나 기름은 언제든지 전화만 배달해주기에 비싸더라도 편리한 점은 있지만 가정에서 기름은 원하는 만큼 비축하기 어려운 한계가 있다.
그래서 비싼 기름도 아끼고 난방비도 절약할 겸 기름과 화목 겸용 보일러를 설치하고 실내에도 벽난로를 설치한 것이다.

그렇지만 보일러와 벽난로에 쓸 화목을 구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요즘 시골에서도 비싼 기름대신 화목보일러를 많이 사용하는 바람에 잘 말린 나무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소량은 배달해주지도 않는 점도 어려움이었지만 화목 가격은 예상보다 비쌌기 때문이다.

마을 노인들은 뒷산의 간벌한 나무나 잡목 등을 주워 화목으로 쓰라고 했지만 남의 산을 두리번거릴 주변머리도 없거니와 길도 없는 산속을 헤매고 나무를 알맞게 잘라 집까지 운반하는 일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참나무 화목 두 트럭분을 구입한 것이다.

시골에 살면 겨울 난방이 문제라는 말은 이미 들었다. 실제 한 드럼에 거의 25만원을 웃돈다. 그런 기름 한 드럼이면 4인 가족이 보름정도밖에 땔 수 없다고 했다. 취사와 난방용으로 기름을 사용했을 경우 월 50만 원 정도라면 농촌에 사는 노인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부담이리라.

노인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보이는 대로 나무 가지 하나라도 모으는 까닭이 난방비 부담 때문이었고 한 겨울에는 노인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하루를 보내는 것은 난방비를 아끼기 위한 지혜였던 것이다.

배달된 화목을 산골이나 농촌 마을의 집 뒤안에 장작을 보기 좋게 쌓아둔 그림을 떠올리며 흉내 내어 쌓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서둘지 않고 하루에 몰아쳐 무리하는 것을 피하기에 일의 진척이 느린 것도 문제였지만, 아내조차 없이 혼자서 똑 같은 일을 여러 시간 반복한다는 사실이 결코 즐겁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의 측면 벽과 차고 뒷벽에 나무를 쌓으니 새로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지나가던 마을 노인들은 가격을 묻더니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내는 지난날 연탄을 때던 시절, 겨울이 오기 전 연례행사처럼 창고에 연탄을 가득 채웠던 기억을 말하며 든든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난방비와 취사용 가스 등의 가격을 따져본 아내는 절반은 화목을 사용한다고 해도겨울철 연료비가 예년에 비해 크게 줄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생활비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비싼 화목 때문에 기대가 어긋난 셈이다.
앞으로 염치 체면 다 버리고 틈나는 대로 손수레를 끌고 산으로 다니면서 쓰러진 나무들을 주우러 다녀야 할까 싶다.

그제 (19일)는 숙지원에 첫 서리가 내렸다.
귀촌이건 전원생활이건 농촌에 사는 사람으로서는 잔디밭을 덮은 서리가 반갑지 않다.
추위를 피할 수 없는 계절이 바짝 왔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텃밭의 노란콩은 거의 전멸이다.

된장은 커녕 여름철 콩물을 만들 양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을 노인들의 말에 의하면 팥도 벌레가 달려드는 바람에 건질 수 있는 양이 예년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김장 무와 배추는 제대로 자라지 않고 쪽파도 살집이 오르지 않는다.

더구나 금년에는 우리나라 쌀의 자급률도 80%에 그치고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22%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면서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밀과 옥수수의 콩의 가격은 지난 봄에 비해 30내지 40% 오를 것이라고 예상한다.

김장철을 앞두고 각종 채소 가격도 급등했다는 소식이다.
외국에서 수입했던 농산물 가격까지 오르고 있다는데 걱정만 만발할 뿐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임기 말인 mb와 그의 가족은 이제 특검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여당은 치솟는 물가를 잡을 이야기나 민생 불안 해소 등 서민들의 걱정은 외면하고 북풍을 기대하는 언동이나 보이고 있다.
겨울 난방비와 식량 채소가격의 폭등에 서민들의 삶이 흔들리고 있는데 그런 서민들의 고단한 형편을 알아주는 대선후보도 보이지 않는다.

대선 정국이 서민들의 고통까지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서민들이 최소한 어염시초(魚鹽柴草)만이라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은 멀리 있는 것인가.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면 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채소라도 뜯어 먹을 수 있는 텃밭이 있고, 여차하면 땔감을 구할 수 있는 산이 곁에 있는 처지를 다행으로 여겨야하는가.
뒷산의 가을 단풍이 곱게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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