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고 소박한 삶을 위하여

내가 처음 출판했던 책은 ‘회소곡’이라는 장편소설이었다.

분단과 전쟁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미시적인 관점에서 다룬 소설이었는데 읽은 분들의 반응은 좋았고, 지역 신문은 물론 한겨레를 비롯한 중앙지에서도 문화면에 책 소개를 해주었지만 책의 판매부수를 늘리는 데는 크게 도움이 안 되었다. 겨우 2쇄로 마감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2003년의 일이었다.

금년 여름, 다시 그동안 오마이뉴스와 한겨레 블로그 등에 올린 글 중 숙지원을 가꾸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점을 60여편 골라 묶어 ‘아내의 뜨락’이라는 산문집을 출판했다.

출판사 대표가 먼저 서둘러 성사된 일이다.
책을 많이 읽어 주었으면 하는 희망은 가졌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
책이 괜찮으면 팔리겠지 하는 생각만 했다.

출판사의 노력 덕인지 지방지 몇 군데서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올려주었는데 기사를 본 kbc에서 덜컥 ‘책과 인생’이라는 프로의 인터뷰 요청이 왔다는 연락이었다.

예전에 kbs2에서 ‘아름다운 귀촌’의 작가라는 분이 출연 교섭을 해왔지만, 숙지원은 보여주기 위한 공간도 아니고 또 사람을 초대하는 곳도 아니라는 취지를 분명히 하면서 사양한 바 있었는데 kbc의 인터뷰 요청은 난감하게 만들었다.

내 전화번호를 알려준 출판사측에서는 기회인양 압력을 넣었고 아내는 나 혼자 인터뷰하라고 미루었다.
그런데 방송국에서는 책의 제목이 ‘아내의 뜨락’인데 아내의 인터뷰를 요구했다.
더구나 인터뷰 날짜가 금요일이라 아내는 출근하는 날이었다.

방송에 출연한다고 책의 판매부수가 얼마나 증가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책의 판매에 관계없이 이번에 출판한 책 소개와 더불어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책 몇 권을 소개하면서 오늘날 학교 폭력 문제와 사회적 범죄의 증가가 독서교육의 부재에도 원인이 있음을 지적하고 독서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아내를 설득하여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12일) 오후, kbc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떠갔다.
촬영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촬영이 이어졌는데 먼저 집을 배경으로 잔디밭 평상에 아내와 나의 인터뷰가 시작이었다.

다음에는 방송국의 연출대로 고구마 캐는 장면과 아내와 마주보며 웃는 장면을 찍었는데 긴 시간 카메라를 의식하며 이야기하고 웃어야 하는 일이 아무래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실내 촬영은 주로 서재에서 했는데 최근에 출간한 책의 내용 등을 소개하고, 현재 쓰고 있는 작품의 내용도 곁들였다. 인터뷰의 핵심은 추천하고 싶은 책과 추천 이유였다.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평소 생각한 바를 이야기하는 순서였는데 긴장했던 탓인지 말 하고자 했던 내용을 많이 놓치고 만 것이다. 아쉬움이 컸지만 다시 녹화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1시간 30분 정도 찍어 7, 8분 방영 될 것이라니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다.

전적으로 방송국 편집 팀들의 손에 달렸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15일) 다시 광주 mbc에서 박피디가 직접 찾아왔다.
2주일 전에 숙지원에 다녀간 호남대학교 신교수가 지방의 모 신문에 ‘H형님’이라는 익명으로 나에 관한 이야기를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그 칼럼을 읽은 mbc 피디가 신교수에게 나를 소개해달라고 해서 연락이 되었던 사람이다. 숙지원은 공개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고 사양했으나 일단 방문하여 현장을 보고 싶다기에 오늘 (15일) 오후 3시로 약속을 잡았던 것인데 잊지 않고 찾아온 것이다.

박피디는 사람과 공간이라는 프로그램의 담당자로 귀촌한 사람들의 단순한 일상만이 아니라 귀촌한 사람들의 귀촌한 의도와 삶의 철학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했다.

전원생활의 소재를 찾는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숙지원도 촬영할만한 장소였을 것이다.
그러나 특별히 보여줄 것도 없고 깊은 철학이 담긴 생활도 아닌 처지에서 나의 모습을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 같아 부담이었다.

그렇다고 출판된 책의 소개만을 고집할 수는 없는 일.
정중하게 사양했더니 박피디는 다음에 들리겠다면서 돌아갔다.

내가 글을 쓰게 된 시기는 아주 늦은 편이었다.
전교조 운동으로 해직된 이후 자주 대중 집회의 사회를 보고, 길거리의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기회도 많이 가졌는데, 대중 앞에 선다는 사실은 부담이면서 한편으로 어설픈 연설에 환호와 박수로 응답하는 대중들을 보면서 그 순간 자기도취에 빠지기도 했다.

정치인들이나 연예인들이 대중 앞에서 서려는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러나 단상을 내려오는 순간 대중과 분리되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 느끼는 소외감과 허망함 역시 컸다.
그래서 나 혼자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일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잡은 일이 글쓰기였다.
일기처럼 시대적인 사건에 대한 소감이나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도 기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 또 그런 일들이 내 적성에도 맞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뒤늦게 신춘문예의 문을 두드린 것이 1993년이었다.
그렇지만 지방지에 동화가 당선이 되었으나 어느 누구도 작가 대접을 해주지 않았다.
다시 1996년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었는데 작가로 인정은 받았다고 하지만 글 써서 밥 먹고 살기란 아득한 일임을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문단에 선배도 친구도 없는 외톨이였다.
잡지의 지면하나 내어줄 지인도 없었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뛰어난 글재주를 자랑할 처지도 못되었다.

그런 가운데 2003년, 장편소설을 탈고 했으나 끝내 주목받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책을 출판하면서 역시 잘 팔리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글쓰기는 그냥 내 삶을 지탱하는 힘이다.
부조리한 현실에 물들거나 휩쓸리지 않고 담담한 노년을 위해 자신을 경계하고 타이르는 자경문이다.

그런 생각으로 글을 쓰며 산다.
‘아내의 뜨락’은 연구보고서가 아니다.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희망을 담은 책도 아니다.
아내와 나의 건강을 찾아준 텃밭과 꽃밭을 일구며 살아온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면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책이다.
솔직히 책에 대한 언론의 주목이 싫지만 않은 것이 사실이다.
내 생각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 가능한 기회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책도 더 많이 팔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책이 재미있거나 읽으면 제법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입소문이 날 만큼 좋은 책이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아무리 자기 추천과 선전이 일상화된 시대라고 하지만, 별 볼일 없는 책을 여러 언론의 힘을 빌려 독자들에게 광고하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특별히 사회변혁을 꿈꾸는 이상이나 철학도 없이 그저 유유자적하며 살겠다고 작정한 터에 새삼 내세울 것 없는 나의 삶을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박피디의 제안을 조용히 사양한 것이다.

이제 저물어가는 인생에 대박 나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을 바라는 또 하나의 욕심이다.
담담하고 소박하게 살기를 원하면서 현재의 명성도 짧은 순간의 한 줄기 바람이라는 사실을 다시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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