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에 여유와 평화의 길이 있다.

지난 8월 17일, 이사 후 여러 가지로 바빴다.
짐을 정리하고, 그러면서 고추도 말리고 참깨도 털었으며 마늘 심을 밭도 만들었다.
그리고 대문에서 현관까지 들어오는 길에 맷돌로 징검다리 놓는 일도 혼자 했으며, 공사 당시에 모아둔 목재를 겨울 벽난로의 화목으로 준비하는 일도 내 몫이었다. 건강에 자신을 가진 아내가 9월부터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어 날마다 출근하는 바람에 나의 일이 더 많아졌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집 전화번호는 전남으로 옮기고, 휴대폰도 바꾸면서 사람을 피해 살겠다고 했건만, 이사 소식을 듣고 찾아온 친척 선배 후배 제자들을 그냥 보낼 수는 없었고, 거기에 예고도 없이 찾아온 손님들까지 상대하다보면 내 시간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더구나 달포 만에 맞이한 추석.
조카들이 노트북을 놓아둔 나만의 공간인 다락방을 점령하는 바람에 꼼짝없이 텔레비전 지킴이가 되거나 아니면 잔디밭에 풀이나 뽑는 신세가 되었다.

처음 숙지원을 처음 가꾸기 시작할 무렵에는 자랑삼아 많은 지인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뒤늦게 사람들의 방문이 내 시간을 빼앗는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나름대로 숙지원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간도 초대하는 공간도 아니라는 생각을 굳혔다.

▲ 4일 아침 다락방의 뻐꾸기 창을 통해 본 숙지원의 일부 풍경. 안개가 자욱하다. ⓒ홍광석

그리하여 지금은 찾아오는 사람은 반기지만 굳이 초대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지만 새집을 보겠다고 찾아오는 지인들 멀리 서울과 진도에서 찾아온 제자들을 그냥 물리칠 수 없었고, 명절에 모인 형제와 조카들을 두고 내일을 하겠다고 고집할 수만 없었던 것이다.

동생의 가족들과 조카들이 돌아간 2일과 3일에는 모처럼 아내와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아내는 그동안 손을 놨던 풀잡기에 나섰고 나는 아내가 부탁한 꽃밭 만들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잔디밭 가장자리의 조금 어수선한 땅에서 이미 심어진 잔디를 들어내고 몇 주의 철쭉을 옮기는 일이 생각보다는 쉽지 않았다.

잔디를 떠서 흙을 털어내고 씨앗을 뿌리기 좋게 흙을 고르는 작업, 그리고 떠낸 잔디는 지난 공사기간에 쌓아둔 건축자재로 인해 죽어버린 곳에 심고 물을 주는 일도 쉽게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시간과의 텃밭 농사나 꽃밭 일구는 일도 시간과의 싸움이다.
‘느리게, 좀 더 느리게’를 구호삼아 여유 있게 시작한 일도 한참 후에는 일에 매여 끌려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물을 마시고 “오늘 못하면 내일 하지 뭐” 하는 여유를 찾으려 하지만 다시 괭이를 잡으면 손놀림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빨리 끝내야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꼴인 것이다.
궁색한 변명이지만 그렇게 살아온 지난 세월속의 타성을 아직 고치지 못한 탓이라고 더듬거려본다.

‘아내의 뜨락’ 숙지원.
철쭉 한 그루 꽃 한 송이에 아내와 나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정원이다.
고추와 가지에도 아내와 나의 땀방울이 스며있는 텃밭이다.
지난 5년 거의 남의 손을 빌지 않고 아내와 나의 노력만으로 이룬 땅, 이제 아내와 나의 노년의 의지처가 되어줄 땅이다.

이사한지 두 달째.
전원의 새벽은 감동이다.
일어나 창문을 열면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이름 모를 새들과 곤충들의 합창, 여명에 나무들의 기지개소리, 그 뒤를 따라 얼굴에 부딪치는 솔바람.
이슬에 젖은 풀.

가까운 앞산을 감싸고 춤추듯이 느리게 흐르는 엷은 안개.
숙지원을 가꾸기 시작한지 6년, 내 인생의 6분의 일 쯤 되는 세월을 기다린 끝에 만나는 아침의 풍경을 보며 다시 한 번 잘된 선택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하고 가볍게 체조를 하면서 몸의 상태를 점검하는데 도시의 집에서 살던 때 보다는 확실히 몸이 가볍다.

물론 자연속의 새집이라는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하리라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산의 정기는 보이지 않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으며 솔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촉감으로 아는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오감을 청정하게 해주는 맑은 자연의 기운이 몸을 가볍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원에서 산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길이다.
가끔 자연의 심술 같은 태풍이 휩쓸어 가고, 가뭄과 홍수 그리고 병충해가 사람을 애태우게 하지만 불만스러울지언정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 자연재해만 아니라면 전원의 삶은 경쟁과 다툼과는 거리가 멀다.
전원생활이란 욕심을 버리지 않고 정직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다.
살다보면 거짓은 허망한 노름이요 욕심도 버려야할 죄임을 알게 된다.
마음을 비운다는 다짐이 아니라 마음을 비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여유와 평화의 참뜻을 가르쳐주는 전원생활. .

요즘 [슬로시티]에 이어 [힐링]이라는 치유의 뜻을 가진 외국 말이 유행처럼 회자되는 사실을 본다.
어떤 말이든 스트레스를 받지 말고 건강과 여유를 노래하며 살자는 의미로 귀결될 것이다.
전원의 생활 역시 여유와 평화로운 삶을 찾을 수 있는 기회이며 치유의 시간이 될 것임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점점 원색으로 다가오는 가을을 본다.
쌀이 나올 때 까지 백일을 핀다는 백일홍도 시들하다.
고춧대는 뽑아 말렸다가 불에 태웠다.
토란은 추석 차례 상에 올렸다.
텃밭에는 무와 배추 시금치 상추 생강 등이 자란다.
그제(2일) 아내가 마늘은 심었으니 곧 양파와 완두콩을 심고 고구마와 야콘을 캐면 가을은 더 깊어질 것이다.

오늘(3일) 낮에도 후배 부부가 지나는 길이라고 들렸다.
그러면서 전원생활은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라고 했다.
나는 전원생활이 마음의 고향을 가꾸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꽃밭 만들기, 조금은 피곤한 일이다.
피곤함 뒤에 올 기쁨과 보람에 비하면 찰라의 일이다.
얽매임 없는 자유를 누리는 일이다.

이제 밤이면 반디불이는 보이지 않는다.
야외탁자에 앉으면 몸이 싸늘해지고 만다.
추석을 넘긴 달도 느린 청을 부리듯 늦게 낯을 내밀고, 별은 그 달빛 속에서 몸을 낮추는 밤이다.
산속의 새들도 어둠에 주눅이 든 것인지 소리가 없다.
이슬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2012.개천절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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