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그리고 한국적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
유신, 그리고 한국적 민주주의에 대한 기억
  • 홍광석 소설가
  • 승인 2012.07.21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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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하다.

도대체 어째서 이런 기막힌 역사의 반전을 보아야하는지, 무엇 때문에 야만의 시대였던 유신의 공포를 기억해야 하는지.

72년 여름의 7.4 남북 공동성명에 이은 그해 가을 [10월 유신].
섬마을의 젊은 교사에게는 혼란이었다.

면직원, 지서(지금의 파출소) 경찰관, 중학교 교사, 초등학교 교사, 농협직원 등을 한 조로 편성한 홍보반은 마을별로 순회하며 유신의 당위성을 선전했다.

젊은 교사들은 젊다는 이유만으로 20리길 먼 마을로 배정되었다.
섬에 택시도 없었던 시대, 각 기관에서 모인 사람들은 서로를 감시하며 마을 이장집으로 찾아가 “유신만이 살길”을 외쳤다.

그 때 처음 ‘소비가 미덕’이라는 말도 들었다.
꾀를 부려서라도 빠지고 싶었지만 그 후에 다가올 권력의 후환이 두려워 포장도 안 된 자갈길, 왕복 20리를 밤길을 구두 뒷굽이 닳도록 걸으면서도 군소리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더러는 마이크를 잡고 마을 사람들에게 홍보물을 읽기도 했다.
그 시절 홍보 팜프렛이나 책자들은 국민투표가 끝난 후 일제히 기관장의 책임하에 수거하여 태워버렸기에 수집벽이 있는 나도 감출 수 없었다.

어쩌면 지긋지긋한 기억이 묻어있는 홍보물을 보관하고 싶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아니면 후환이 두려워 감추지도 못했을 것이다.
주변에 검은 손, 검은 눈을 의식하며 살았던 시대.
친한 사이가 아니고는 정치적인 이야기가 금기였던 시대.

유신이후 정치상황은 더 살벌했다.
국회의원 3분의 1을 대통령이 임명하여 국회내에 유정회라는 박정희의 친위사단이 만들어졌다.
정부에 대한 비판, 헌법에 대한 비판은 긴급조치로 봉쇄했다.
헌법위에 긴급조치가 민주주의를 박살내고 있었다.
그리고 박정희는 그런 제도를 이름도 고상한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했다.

한국적민주주의!
독재를 미화한 허울뿐인 민주주의.
국민은 침묵하거나 아니면 노예로 살 수밖에 없었다.
무수한 간첩 사건은 시도 때도 없이 신문의 한 면을 도배했다.

젊은이들을 독재의 희생양으로 삼았던 민청학련 사건, 그 배후로 된 인혁당 사건도 그런 무렵에 검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진 야만적인 사건이었다.
그 때는 조작된 사건이 아니냐는 의문조차 품을 수 없었다.

언론의 자유는 완전히 박살났다.
(75년 동아일보 광고사태 이후 동아일보는 기절하고 말았는데 지금도 혼수상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정경 유착은 당연시 되었고, 권력에 기생했던 재벌들은 지금의 대를 이어 천년을 누릴 수 있는 재벌 왕국의 기틀을 다졌다.

우리 민족 문화를 야만이라고 몰아내고 농촌을 죽이는 정책이 시작된 것도 그 때였다.
모든 행사에서 의무적으로 국민 교육헌장을 외우게 했다.
고등학교에서도 군사 훈련을 제도화 했다.

사회적으로 제2경제 운운하면서 “하면 된다.”는 구호를 내세워 보편적 인간에 대한 가치보다 황금만능의 가치가 우선되는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돈만 잘 벌면 몰염치한 이기주의도 용인되는 사회를 만들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아파트 가격의 붕괴로 대출받은 사람들의 고통도 근본 원인은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부하의 총에 박정희가 죽고, 유신체제가 붕괴된지 30년이 지난 오늘날에 쿠데타로 규정한 5.16을 미화하고 박정희와 유신체제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꿈틀대고 있다.

박정희가 없었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없을 것이라고 강변한다.
5.16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한다.

불가피한 선택!
제 아비를 옹호하는 딸의 이야기라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을 꿈꾸는 여자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5.16과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니!

피터지게 싸워 이룩한 민주주의와 남북간의 평화, 어렵게 바로 잡은 역사와 헌법을 만약이라는 가정법으로 뒤집으려는 박근혜를 보면서 자꾸 어두운 밤, 이슬을 맞으며 걸었던 섬 마을의 기억을 떠올린다.
권력의 고문으로 조작된 무고한 사람들의 비명을 듣는다.

만약 그런 시대가 온다는 가정만으로 모골이 송연하다.
부질없는 짓인줄 알지만 나도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역사를 뒤집어 본다.
민주주의에 대한 반역 5.16 군사 쿠데타.
그 주인공 박정희.

만약 패역의 친일파였던 박정희가 해방 후 자신이 연루된 좌익 집단에서 그의 동지들을 배반하지 않고 그의 동지들과 함께 군에서 축출되었더라면 훗날 5.16은 없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신봉했던 이념을 가진 자들이 일으킨 전쟁이 아니었다면 박정희는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살아남았을 수 없었고, 훗날 민주헌정을 파괴했던 5.16쿠데타는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배신했던 집단의 도움으로 살아남은 기막힌 역사의 아이러니.

다시, 만약 5.16쿠데타가 없었더라면 우리 사회에 “하면된다.”는 구호아래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목적전치의 가치관이 만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부실과 부정도 적었을 것이다.
또 정경유착에 의한 재벌 키우기는 없었을 것이다.
치욕적인 졸속 한일협정도 없었을 것이다.
한일협정의 과정에서 커넥션도 없었을 것이다.
나아가 경제적으로 일본에 예속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5.16쿠데타가 없었더라면 [10월 유신]도 없었을 것이다.
만약, 박정희의 [10월유신]이 없었더라면 조작된 간첩도 없었을 것이고, 인혁당 사건처럼 억울하게 죽은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남북 갈등은 심화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남북간의 경제적인 통일이라도 이루었지 모를 일이다.
만약 5.16 쿠데타가 없었다면 [10월유신] 없었다면 박정희 부부는 총에 맞아 죽는 불행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주의 파괴자였고 국민을 억압했던 독재자로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으로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
만약이라는 가정하에 지나간 역사를 미화하거나 역사를 뒤집으려는 일은 없어야 한다.
만약이라는 가정법에 얽매인 박정희가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견강부회한 주장도 철회되어야 한다.
경제발전은 높은 교육열, 우수한 민족성, 부지런한 국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8년 철권 통치, 그리고 막대한 외국 차관을 끌어다가 재벌만 키운 경제를 마치 박정희 개인의 치적으로 말하는 것은 우리 국민을 문맹률이 90%쯤 되는 아프리카의 한 나라 수준으로 인정하는 꼴이다.

그런데 독재의 현장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박정희 독재를 지켜본 속칭 [유신공주]라는 박근혜는 “보릿고개 운운”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저지른 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한 5.16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으로 미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시절로 회귀를 꿈꾸고 있다.

밥 한 그릇을 미끼로 굴종을 강요했던 시대, 천부인권을 짓밟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까지 포기하도록 강요했던 시대의 주인공 박정희가 돌아오는 것 처럼 보인다.

5.16과 유신의 망령이 목을 조이는 듯 답답하다.
어떻게 그런 인물이 여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인지.
그럼에도 유신공주의 미소를 바로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들….

만약 앞으로 다시 ‘한국적 민주주의’ 시대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70년대 유신 당시처럼 공무원들이 정권의 선전 도구가 되어 밤길을 걷은 일을 없을 것이다.
대신 일부 과거로 회귀에 동조하는 일부 언론과 군복을 입고 가스통을 굴렸던 노인들, 성조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미쳐 날뛸 것이다.

민간인 불법 사찰은 확대되어 휴대폰의 통화까지 감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다시 가난한자와 병든자는 스스로 무덤을 만들어야 하고 죽을 용기가 없는 힘 없는 백성들은 불의한 권력이 강요하는 체념과 굴종에 길들여질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은 요원해질 것이다.

5.16 군사쿠데타, 유신, 한국적 민주주의, 인권탄압…, 현실로 살아오는 참담했던 기억들.
‘만약’이라는 단어가 새로운 의문 부호로 가슴을 짓누른다.

참, 유신의 꼭두각시였던 유정회 회원들도 국회의원들에게 주는 연금을 받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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