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지원에 집짓는 이야기15

사전적 의미로 색(色)이란 빛을 받은 물체가 어떤 파장의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가에 따라 나타나는 물체의 빛깔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눈에 보이는 사물의 색이란 빛의 파장이 만든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색의 종류는 참 많다.
원시시대부터 그런 색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높았다.
아마 인간만큼 색의 명암에 민감하고 색의 대비를 따지는 동물은 없을 것이다.
또 자신의 원하는 색이나 자연의 색을 찾아 혼합하는 능력을 갖춘 동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보니 지나가는 사람의 옷 한 벌에도 갖가지 비평이 따르고, 남의 집 벽의 색깔에도 호감과 비호감을 분명하게 드러내게 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옷을 고르는 경우는 물론 심지어 음식을 고를 때도 색을 살피는데 그만큼 사람들에게 사물의 색에 대한 선택은 민감한 문제가 되었다고 본다.

▲ 집의 외벽 공사가 끝나고 비계를 철거하는 모습. 집의 맨 얼굴이 드러난 셈이다. ⓒ홍광석
과거에는 황제만이 입을 수 있는 옷의 색이 있었고 신하들이 입었던 옷이 있었듯이 색으로 사람의 신분과 계급을 드러냈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좋아하는 옷을 입을 수 있고 자신의 주변을 좋아하는 색으로 덧칠할 수 있다. 특별한 사회가 아니면 색깔로 계급을 표시하지 않는다. 신분을 가르지도 않는다.
어쩌면 소위 말하는 명품이냐 아니냐 하는 점을 더 따지는 시대라는 말이 맞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사회의 모든 사물 즉 명품이건 아니건 여전히 색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없다고 본다.
집은 물론 도로에 다니는 자동차 그리고 가전제품 하다못해 식기하나까지도 색은 선택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체로 많은 사람들은 나만 좋은 색으로 독특한 개성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신도 만족하고 남의 시각적 판단을 의식하여 선택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선택의 기준이 애매하다는 점이다.

어떤 면에서 집짓기는 색을 찾는 작업이었다.
지붕에 얹을 기와의 색, 집 전면에 붙이는 돌의 색, 시멘트 사이딩의 페인트 등 여러 번 색을 선택하는데 갈등을 겪어야 했다.

집이란 가족의 공간이면서 사회 구성의 중요한 실체라는 점, 또 한 번 색을 입히면 살아있는 동안에 다시 수종하기란 어렵다는 점 때문에 때문에 덜렁 내키는 대로 결정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 튀지 않으면서도 따뜻하고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편안한 색을 찾았지만 얼른 보는 순간에 이것이다 하는 색을 찾기는 어려웠다.

결국 소비자는 오직 생산자가 제시하는 견본 혹은 카다로그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기업이 제시하는 견본이나 카다로그는 소비자의 선택을 돕는 측면도 있었다.

그렇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카다로그는 소비자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기업의 편의를 위한 것이었다.
기업이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한 다품종 소량 생산이 아니라 기업의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소품종 대량 생산을 시도하면서 제품의 디자인과 색상을 자신들의 의도에 맞추어 제작하여 사실은 소비자 개인의 취향을 제약하고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 기업이 제시하는 카다로그는 선택하는 소비자들에게 나 아닌 대중들의 시선을 더 의식하도록 강요하는 측면도 있었다.

타인의 시각으로 튀지 않는 색, 부담이 가지 않는 색을 고르게 되고 결과적으로 다른 집들과 별로 다르지 않는 집의 색상에 안도하는 소비자들.

마치 학교에서 오지 선다형 문제에 대한 답을 고르듯 주어진 범위 안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소비자들.
결국 개성 없는 소비자를 양산하는 셈이었다.

▲ 내벽에 삼목 루바를 붙이는 작업. ⓒ홍광석
기업의 제한된 색상과 무의식적으로 선택을 제한하는 기업의 의도가 맞물린 현실에서 자연과 친화적인 색, 집의 품위를 높여주는 색, 주인의 개성을 반영하는 색을 찾는 것은 하나의 이상이었을 뿐이었다.
나 역시 자본의 편의에 따라 제시한 색 중에서 하나를 찍으면서 ‘운명이다!’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뒷맛이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이제 집짓기는 내부 삼목 [루바]를 붙이는 공사가 끝났다.
열흘이 넘는 기간이 소요되는 섬세한 공정을 지켜보면서 집이란 여러 사람의 덕으로 지어지는 공덕의 산물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어서 타일공사에 들어가고 이어서 바닥공사를 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시 색깔에 대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욕실과 주방의 타일은 무슨 색으로 할 것인가?
벽지는?
방바닥은?
붙박이장의 색은?
아내와 머리를 싸매고 찾지만 결국 어느 부처님의 손바닥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나만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으면서도 맨 가슴에 부채질을 해댄다.

어렵다.
개인의 상상력과 추구하는 이상이 보이지 않는 자본의 힘에 제한되고 정형화된 도식의 카다로그에서 아니면 진열된 전시 품목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색은 단순히 개인적인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201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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