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지원에 집짓는 이야기 1


몇 년 전, 먼저 퇴직한 친구에게 어떻게 지내느냐고 했더니 그 친구 대답인즉 “백수가 과로사(過勞死)한다는 말을 못 들었느냐”고 했다. 웃자고 하는 말이었지만 그만큼 바쁘다는 의미였다.

요즘 나 역시 퇴직 후가 더 바쁘다. 친구와 선후배들과 친목 모임, 사회단체 혹은 개인적인 연고로 참석했던 조직들은 거의 정리했기에 그런 모임에 특별히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음에도 날마다 눈을 뜨면 하루해가 금방 저물고 만다.

숙지원에 비닐하우스를 짓고, 밭을 다듬어 씨 고구마 넣기, 야콘 모종을 만들기, 감자 심기도 순간에 되는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보다 요즘 나는 숙지원에 지을 집을 구체적으로 설계하는 일에 며칠간 머리를 싸매고 있다. 숙지원에 집을 지겠다는 계획은 오래전에 세웠고 나름대로 구상한 바도 있었지만 막상 집을 지을 생각을 하니 설계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에게 집짓기는 큰일임에 틀림없다. 요즘에야 집은 재산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 선인들은 유난히 집에 대해 큰 의미를 가졌다. 조상의 공덕이 있어야 되는 일이요, 후손 발복을 기원하는 일이라고 여겼기에 집짓기는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던 것으로 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집짓기를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 중의 하나라고 했는지 모른다.

그저 살기에 편안한 집, 사치스럽지 않은 집, 최대한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집, 자식들의 주말에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 등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날을 잡아놓고 보니 내 고집대로만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 현재 살고 있는 주택을 많이 참고 했다.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방과 거실을 최대한 넓혔다. 4평 정도의 다락방은 서재로 활용할 작정이다. 노모가 계시기에 방을 세칸을 들였다. ⓒ홍광석

 

기왕이면 나쁜 곳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에 제법 이름 있는 지관을 초빙하여 수맥, 방향, 지형 등 땅의 상태를 살피고 주거할 집의 대문과 현관, 안방의 위치에 대한 자문을 받기도 했다. 아주 좋은 땅이라는 지관의 말에 고무된 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지관의 조언을 참고하여 설계를 하다보니 나의 구상과 약간 차이가 있어 조금은 더 어려웠다.

그리고 어제(20일), 아내와 수 없이 많은 토론, 그리고 방한지 한 권을 소비한 끝에 비록 한 장의 평면도이지만 집의 설계를 끝내고 건축업자에게 넘겼다.

집짓기도 처음에는 내가 직영하는 방향을 고려하였으나, 법에 개인이 집을 짓는 절차가 어렵게 만들어진 우리나라 법, 그리고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는 점 때문에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 몇 업자의 견적을 받아 검토한 끝에 젊은 사람을 골라 의뢰한 것이다.

물론 그가 지은 집을 살피고,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최근 그가 건축하는 현장을 직접 찾아가 공정을 살피기도 했다. 주변에 건축하는 제자도 있고 후배들도 있지만 일단 아는 업자는 피하기로 했다.

대체로 집을 짓다보면 분쟁거리가 많아 자칫 형제사이에도 척이 질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피한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전혀 초면의 업자를 선택하였는데 일말의 불안도 없지 않지만 일단 사람의 성실성을 믿어볼 작정이다.

이번 집짓기는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일 수 있는 기회일 수 있다. 집을 지어본 많은 사람들이 집짓기가 쉽지 않다는 말을 한다. 지어진 집에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비록 업자에게 의뢰하여 집을 짓는다고 하지만 집이 완성되기 까지 과정이 녹록치 않으리라는 점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 태어나 내가 살 집을 설계하고 지어보는 일도 의미 있지 않을까.

선거철이다. 투표는 하겠지만 선거에 별 관심도 없다. 이 나라를 위해 나선 사람들은 많지만 기대하고 싶은 정치인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제 2의 인생을 시작하는 집짓기에 전념할 작정이다. 날마다 도시락을 싸들고 숙지원에 출근하여 꼼꼼하게 일하는지 지켜보면서 사진을 찍고 기록할 작정이다. 물론 설계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하여 내 선택이 더 완전해지도록 노력할 작정이다. 목조주택이기에 기초부터 약 3개월 정도 걸린다니 여름이면 집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내일은 시청에 가서 농지를 대지로 전환하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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