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보다 뽑기가 힘든 나무

5년 전 숙지원은 논과 밭이었다. 전원주택을 지을 꿈을 꾸기에는 너무 황량한 풍경. 울타리에 늙은 대추나무와 감나무 그리고 자두나무가 전부였고 숙지원의 가운데에는 한 주의 자두나무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나무를 심었다.

모든 일은 내 손으로 한다는 원칙, 가급적 돈을 많이 들이지 않겠다는 각오 때문에 처음부터 크고 아름다운 조경수를 구입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말이면 인근 나무시장이나 오일장을 찾아다니며 어린 묘목을 구입하여 심었다. 뿐만 아니라 철쭉은 직접 삽목하여 묘목을 만들기도 했다. 그때는 아무리 심어도 나무의 흔적이 잘 보이지지 않았다. 

▲ 최근 소나무를 옮긴 후 달라진 숙지원 모습. ⓒ홍광석
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숙지원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먼지 날리던 흙밭은 시원한 잔디밭으로 변했고 주변에 심은 회초리만한 묘목들은 열매를 맺고 그늘을 만드는 나무로 자란 것이다.

하지만 빨리 푸른 숲을 보고 싶은 욕심에 어린 묘목을 배게 심었던 것인데 나무들이 자라면서 사이가 가까워진 탓에 옆 나무와 가지가 닿은 부분은 삭정이가 되기도 했고, 세가 약한 나무들은 성장이 더뎌지는 현상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최근 배게 심은 나무를 솎아내는 일을 했다. 제법 큰 보리수나무 한 주, 앵두나무는 두 주, 뽕나무 아홉 주, 자두나무는 열 주나 솎아내고 소나무는 일곱 주나 옮겼다.

나무는 심기보다 자란 후 뽑아내기가 더 어렵다. 한 손에 다발로 들고 다녀도 부담 없던 묘목이 지름이 10cm 정도가 자라면 사람의 손으로 뽑아내는 일이 힘들어진다. 물론 마당의 풀 뽑듯 나무를 금방 들어내는 힘 좋은 기계를 이용하면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한두 주 뽑자고 기계를 동원할 수 없는 일. 그래서 삽으로 파고 곡괭이로 쳐서 나무를 쓰러뜨리는데 아직 찬바람에도 온 몸에 땀이 흐르는 것은 물론 팔 다리에 힘이 빠지고 말았다.

괜한 짓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쫓아낸 기업의 횡포를 따라 하는 것 아니냐는 자책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나무를 베고 뽑으면서 내가 만났다가 헤어진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사람이 출생하여 성장하고 늙고 죽는 과정에서 수많은 매듭을 경험한다던가. 학교 입학은 가족 밖의 세계로 나오는 의식이었다면 취업은 독립된 생존의 장을 구축하는 작업이었으며 결혼은 가족제도의 계승과 유지라는 인류 존속을 위한 중요한 의식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부모님과 이별 친지들과 만남과 이별을 경험한다. 뿐만 아니라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동료와 만남과 이별 그리고 교사들에게는 셀 수 없는 학생을 만나고 보내는 일을 반복한다.

그리고 자신도 언젠가는 그들로부터 떠나게 된다. 정년 혹은 은퇴 역시 인간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하나의 매듭이다. 인간의 삶에 영원이란 없는 법, 나이가 들면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비켜주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지난 2월, 직원들이 만들어준 송별의 자리에서 담담하게 송별 인사를 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오래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또 은퇴 후 할 일을 마련해 두었다고 하지만, 그래서 당연히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어쩐지 밀려난 것 같은 상실감도 적지 않았다.

나이를 먹었다고 그래서 감정을 절제할 수 있다고 여겼는데 마음을 추스르기가 쉽지 않았다.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이제 학교 밖에서 또 다른 인생을 준비한다. 숙지원에 오두막보다는 큰집, 하지만 결코 허세를 부리지 않는 평안한 집을 지을 계획이다.

아내와 내가 쉴 방으로 방 한 칸, 늙은 어머니의 방 한 칸, 책을 읽고 글을 쓸 서재로 한 칸을 들이면 족할 것이다.

그리고 텃밭에는 우리 가족이 자급할 정도의 씨앗을 넣고, 계절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보며 살 작정이다.
참, 개 한 마리와 알을 낳는 닭 몇 마리도 식구로 삼을 작정이다.

우연한 만남과 숙명적인 이별.
만남보다 무거운 이별.

헤어지는 순간에 지나간 사람과 모든 일을 한꺼번에 잊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쉽지 않다.

20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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