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물건에는 숨은 의미가 있다.

옛 부터 복숭아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의 과일로 알려져 왔다.
귀신을 쫓는 과일이라 하여 나무는 집 울안에 심지 않고, 복숭아는 제사상에도 놓지 않았다고 한다.

복숭아는 신화에 나오는 과일이다.
중국 신화(神話)에 모든 신선을 감독하는 여신 서왕모(西王母)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 서왕모와 복숭아에 관한 설화는 많다.

▲ 은제 표주박. 손잡이에 붙어있는 개구리한 마리가 표주박 안쪽으로 뛰어들 것처럼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이 귀엽다.ⓒ홍광석

서왕모는 자신이 가꾸는 반도원(蟠桃園)에 3000년, 6000년, 9000년 만에 열리는 복숭아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서왕모'는 반도원(蟠桃園) 경비를 '손오공'에게 맡겼는데 욕심 많은 손오공이 몽땅 다 따 먹고 도망쳐서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오는 이야기의 하나일 것이다.

하여튼 서왕모로 인해 복숭아 앞에는 다시 천상의 복숭아라는 천도(天桃)가 붙어 천도복숭아로 불리고 있다. (천도라는 단어에 복숭아를 붙인 것은 복숭아의 이중표기이다. 우리말의 역전앞 초가집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그밖에 복숭아와 관련한 이야기는 많다. 삼국지의 유비 관우 장비가 형제의 의를 맺었다는 도원결의 이야기, 인간의 이상향을 말한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나오는 무릉도원(武陵桃源)도 그런 이야기 중의 하나일 것이다.

또한 복숭아는 수많은 시의 소재였다. 시경의 주남(周南) 편에 도요(桃夭)라는 시는 젊은 남녀의 결혼을 찬미하는 시라고 한다. 시에 복숭아나무가 나오는데 시경의 초목을 해설한 시명다식(詩名多識)이라는 책에는 복숭아나무를 홰나무, 버드나무, 뽕나무, 닥나무와 함께 불씨를 얻었던 다섯 가지 좋은 나무 중의 하나라고 소개한다.

▲ 은제 표주박의 겉면. 당초무늬를 붙였다. 제작 연대는 5, 60년대 쯤으로 추정한다. ⓒ홍광석

또 후대에도 복숭아는 수많은 시인 가객의 사랑을 받았는데 대체로 미인을 칭송하는 비유나 이상향을 상징하는 표현이 많았다.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이라는 시에도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m封頓�)하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흐르는 물에 복숭아꽃잎이 떠가는 풍경이 이상향을 말하고 있어 나 역시 한가하게 살겠다는 여망을 담아 가끔 외우기도 한다.

불로장생(不老長生)이라는 인간의 원초적인 기원이 담긴 복숭아는 우리나라에서도 선조들이 남긴 시와 그림은 물론 연적 같은 도자기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복숭아형 표주박도 그런 선조들이 남긴 유물의 흔적이다.

원래 표주박은 표자(瓢子)라고도 하는데 조롱박이나 둥근 박을 반으로 갈라 만든 매우 작은 바가지를 말한다.(瓢는 바가지라는 뜻을 가진 한자이기에 표주박 역시 바가지와 박이라는 같은 뜻을 가진 합성어이다.)
처음에는 서민들의 생활에서 술잔 혹은 간장종지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랬던 표주박이 언제부터 옛 사람들이 허리에 차고 다니며 물잔 혹은 술잔으로 사용했던 표주박이 되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그리고 둥근 조롱박 형태를 벗어나 복숭아형으로 바뀌었는지도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다만 조롱박으로 만든 표주박을 술잔으로 쓰던 선비들이 그것에 옻칠을 하여 허리에 차고 다녔던 것이 유행하면서 여러 모양의 표주박으로 진화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데 불로장생의 기원을 담은 복숭아형 표주박도 그 중의 하나일 것으로 본다.

표주박을 만드는 소재와 형태는 는 다양했다. 나무가 가장 흔했고 귀하게는 은으로 만든 것도 있으며, 더러는 팔각형으로 만든 한지 공예에 옻칠을 한 것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가장 흔한 형태는 나무로 만든 복숭아형 표주박이다.

▲ 대추나무 표주박의 겉면. 복숭아잎이 정교하게 양각되어 있다. 100년 이내의 작품으로 추정한다. ⓒ홍광석

표주박의 사용은 소박하게 개인용 물잔 혹은 술잔의 용도에서 시작했으리라 여겨진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일을 많이 하는 서민들이 사용했던 것 같지는 않다.

우선 표주박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먹는 잔에 먹지 않겠다는 위생적인 측면도 고려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그보다는 상민들과 다르다는 신분 과시용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다시 그보다는 불로장생의 과일이라는 복숭아형 표주박에 자신의 기원을 담아 부적처럼 몸에 소지하고 다녔을 것으로 생각된다.

옛 물건을 대하다 보면 우리 조상들은 모든 사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었고, 또 사람의 행위에 기복적인 의미를 부여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인륜대사인 관례와 혼례에 길한 날을 택했던 것이나 해와 달, 산과 강 하다못해 커다란 바위까지도 경외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은 그런 예일 것이다.

그랬으니 불로장생과 이상향의 상징으로 알려진 복숭아 표주박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인가!

현재 남은 표주박은 다른 민예품에 비해 수량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일정한 신분의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이라 원래 제작한 수량도 많지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어른들의 구취가 묻은 물건은 자식들이 사용해서 안 된다는 유교적인 사회에서 아무래도 사용했던 이가 죽은 후 폐기 처분했기 때문에 남은 것이 적다고 본다.

현재 남은 물건들은 개인이 사용했던 것이라기보다는 개인들이 노리개용 또는 소장용으로 제작했던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

어찌 생각하면 서민들은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빌고 있을 때, 일도 안 하는 선비들이 불로장생을 꿈꾸면서 악귀를 막아줄 것으로 여겼던 표주박을 도포 안쪽의 허리춤에 아니면 도포의 소매에 넣고 다니다가 술잔으로 사용했을 선비들을 상상하면 얄미운 생각도 든다.

그렇잖아도 헐벗고 굶주리는 서민들의 비해 상팔자라고 할 수 있는 선비들이 악귀를 막는 부적의 의미를 담은 표주박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곱게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가끔 이제 전 국민이 표주박을 개인 소지품으로 마련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현재도 직장에서 자기 컵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제 좀 더 멋스럽게 표주박을 개량한 작은 그릇을 만들어 사용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원의 낭비요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1회용 종이컵 사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 1회용 종이컵에는 따뜻한 물에 반응하는 환경 호르몬이라는 유해물질이 나온다고 하지 않던가!

▲ A4용지위에 올려놓고 잡은 사진. 볼륨이 있어 두툼하지만 길이는 스마트폰 크기이다. 젊은이들이 이런 물건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싶다. ⓒ홍광석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휴대폰과 함께 작은 표주박 하나쯤 들고 다니는 여성들도 멋스럽게 보이지 않을까 싶다. 하얀 은으로 만든 작은 표주박이라면 휴대폰 가격에 못 미칠 것이다. 은이나 나무가 아니라도 요즘은 훨씬 다양한 소재로 표주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표주박에 사랑하는 사람의 불노장생의 기원을 담는다면 연인들끼리 선물로도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복숭아꽃은 미인을 상징한다. 과일은 모양이 예쁘고 향도 좋다. 그리고 복숭아는 온 몸에 기(氣)와 혈(血)을 보해주고 피부를 곱게 하는 과일이다. 또 담배 해독작용은 물론 항암 효과도 있다고 한다.

꼭 그런 점을 말하며 현실적인 기원을 담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건강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작고 예쁜 복숭아형 표주박을 평소에는 휴대폰과 함께 손에 들고, 산에 갈 때는 등산용 배낭에 차고 다닌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혼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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