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의 개혁도 용기가 있어야 성공한다

요즘 감동을 자주 느낀다. 살벌하고 재미없는 세상에 무슨 감동이냐고 할지 모른다. 실제로 재미없는 세상에 진저리를 치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왜 감동을 느끼는가. 이유는 박원순 시장(이하 경칭생략) 때문이다.

10.26 선거에서 무소속 시민후보인 박원순이 한나라당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된 것은 질려버린 한나라당 때문이고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 때문이라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

그러나 박원순이 시장이 됐다고 해서 뭐가 얼마나 달라지랴. 달라진다 해도 엄청 세월이 흐를 것이라고 생각한 시민들이 태반일 것이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시민들은 ‘그럼 그렇지’ 하고 다시 좌절에 빠질 것이고 정치 불신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원순이 시장 자리에 앉은 바로 다음 날. 시민들은 깜짝 놀랐을 것이다. ‘무상급식 예산 결재’였다. 입에서 나온 소리는 어어 였다. 전광석화였다. 시민들의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렸다. 결단이었다. 복지는 공짜나 낭비가 아닌 투자라는 박원순의 말이 실감으로 전해 온다.

취임 후 전철 출근 한 번쯤은 시장의 빠질 수 없는 행사지만 박원순의 지하철 출근은 좀 달랐다. 바로 진심이 배어 있고 마치 따스한 공기가 옮아오듯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다. 바로 신뢰였다.

미화원과 함께 쓰레기를 치우는 그의 모습에서도 역시 진심이 느껴진다. 함께 일을 한 미화원의 ‘다른 시장과는 달랐다’ 말에서도 박원순의 진심은 읽힌다.

오랜 세월동안 시민운동가로서의 박원순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이 그의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시민운동가들이 이중의 모습을 보여 주었던가.

시민운동을 전유물인 듯 행동하던 사람들의 변신은 시민운동 전체를 불신의 늪으로 빠트렸다. 시민운동의 동력은 신뢰고 불신은 시민운동의 실패를 의미한다.

좀 더 얘기하자. 시립대학의 등록금을 반으로 줄인다고 했다. 만 만세다. 왜 그렇게 등록금이 비싸냐 하는 이유는 감사원 감사결과로 들통이 났다. 교육이란 말이 부끄럽다. 자신들도 자식을 기를 텐데 등록금으로 치부를 해? 국민들의 분노다.

알바로 등록금을 벌다가 지친 학생이 자살을 하고 아버지는 딸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는다. 이것이 우리 등록금의 맨 얼굴이다.

박원순이 시립대학의 등록금을 반으로 내린다는 말을 듣는 순간 전국 곳곳에서 들리는 만세 소리가 환청처럼 들렸다. 이것은 개혁이 아니라 천지개벽이라고 느껴졌다. 울화통이 터져서 가슴이 멍든 자학이겠지만 사악한 사학이 지은 죄 생각하면 쇠고랑 차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잘못 낀 단추… 류경기 대변인

인사처럼 어려운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인사를 만사라 하고 망사라고도 한다. 그러나 망사를 했을 경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고치면 되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의 ‘고소영과 강부자’ 내각을 망사의 대표적인 예로 생각한다. 처음부터 이렇게 망사만 하지 않았더라도 정권의 출발이 그토록 힘들고 후유증이 오늘까지 계속되지도 않고 MB의 인사가 거의 무조건 불신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계속되는 망사와 요지부동의 고집불통. 이제 이명박 정부는 불통내각으로 낙인이 찍히고 임기 말년의 고질적 레임덕 현상이 산이 무너지듯 덮쳐 오고 있다. 피할 방법이 없다.

흔히들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한다. 죄는 우선 영혼이 없도록 만든 정치인들에게 있지만 공무원들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왜냐면 한 술 더 떠서 스스로 영혼을 버리는 공무원들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서울시 대변인 ‘류경기’에 대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가 해온 처신을 지적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했느냐고 할지 모르나 정말 너무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듣고 본 그의 행적만으로도 서울시와 박원순의 입 노릇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적절한 인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원래 공무원은 영혼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기에 박 시장이 앞으로 그를 어떻게 쓰느냐에 달렸다.’

박원순의 이번 인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 같은 말을 들으며 참으로 비참해진다. 이 말대로라면 신임대변인은 ‘영혼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격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막말로 하면 쓰기에 따라서 좋은 물건도 나쁜 물건도 된다는 이 최악의 평가는 인간은 사라지고 사육되는 동물이 존재할 뿐이다.

대변인으로 임명된 그는 처음부터 사양을 했어야 한다. 자기가 대변인이 됨으로써 ‘아무리 영혼이 없는 공무원’이라고 해도 박원순 같은 시장을 만나면 이렇게 살아나는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격이 없다고 사양을 함으로써 그래도 ‘영혼이 있는 공무원’임을 보여 줬어야 한다.

인간에게 영혼이 없다고 하면 이보다 더 수치스러운 모욕이 어디 있는가. 신임 대변인의 행적을 보면서 그가 아무리 자질이 뛰어나다 해도 그를 발탁한 것은 잘못이고 발탁을 수용한 그의 자세 역시 다시 한 번 ‘영혼 없는 공무원상’을 보여 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발탁된 데 다행으로 생각지 말고 사양을 했어야 했다. 영혼이 없는 공무원도 이렇게 살아남는다고 자부심을 느낄지 모르나 이것은 정말 아니다.

도대체 류경기의 과거 행보가 어떠했기에 이런 논란이 일고 있는 걸까. 류경기는 오세훈 시장 시절, 서해뱃길·세빛둥둥섬 수호자였다. 그는 오세훈의 비서실장과 한강사업본부장을 지낸 분신과 같은 최측근이었다. 오세훈과 철학을 공유하지 않으면 앉을 수 없는 자리다. 지금은 달라졌는가.

“박원순 시장은 '한강운하를 비롯한 한강 개발사업을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공약했다. 류경기와 박원순의 어느 부분이 어울리는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이런 지적에 대해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박원순의 힘은 시민들들의 지지

신발끈 다 잡아 매고 심호흡 깊게 하고 출발한 박원순 시장이다. 앞으로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고 판단을 잘못할 수도 있다. 사람이기에 당연히 겪어야 할 시련이다. 문제는 잘못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시정하려는 자세다.

‘나는 무오류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대화는 끝난다. 경험은 훌륭한 스승이다. 우리가 지금 이명박 정권에서 겪는 경험이 훌륭한 스승이다. 잘못을 시인하고 고치는 자세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대변인 한 사람 가지고 뭘 그렇게 따지느냐. 대변인이 시장이냐. 얼마든지 고쳐 쓸 수가 있다. 물론 이해한다. 그러나 동의를 못하는 것이다.

지금 박원순이 사람 고쳐가며 일할 때가 아니다. 대변인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대변인을 선택한 인사체계의 문제점이다. 박원순이 직접 골랐나. 아니리라고 믿는다. 추천이 잘못됐다. 어떻게 이런 인물을 추천한단 말인가.

대변인은 중요한 참모다. 그의 입을 통해서 박원순의 정책이 대외적으로 전해진다. 참모회의에는 빠질 없는 멤버다. 류명기에 뒤에 드리워진 오세훈의 모습은 과연 지워질 것인가. 그가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행동을 했는지 모두 알고 있는데 터놓고 오세훈의 지나간 정책을 비판하고 뜯어고치는데 혹시 장애를 느끼지는 않을까.

대변인을 바꿀 수도 있다. 바꿔야 할 것이다. 문제는 박원순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다는 사실이다. ‘박원순이 사람 고를 줄 모르네’, 깊은 상처다.

만약에 청문회가 있었다면 류경기는 신청도 못 했을 것이다.

언론들이 침묵하고 있다. 대변인 정도야 하고 무시하는 것인가. ‘뷰스앤뉴스’만이 비중 있게 문제점을 지적했다. 왜 언론이 침묵하는가. 조중동이나 방송매체들은 류경기의 과거를 들출 수가 없었을 것이다. 누어서 침 뱉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른바 진보매체들은 왜 침묵하는가. 박원순의 출발을 순탄하게 하려는 배려일지도 모른다. 현명한 배려인가.

대변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영혼이 있는 공무원’이 되려면 스스로 대변인 자리를 사퇴하는 것이다. 박수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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