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불통이면 세상만사 먹통

내 뱃속으로 난 자식도 배 밖에 나오면 맘대로 안 된다는 부모들의 탄식이다. 어르고 달래고 때려도 싹수가 안 보이면 마지막 결단은 포기다. 인간관계도 같다.

인간 못된 건 잡아먹을 수도 없다. 팔아먹지도 못하고 권력이라도 잡으면 오히려 행패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독재자가 바로 그런 인간이다.

▲ ⓒ<서프라이즈> 갈무리

금년은 독재자들에게 있어서 재앙의 해다. 그 중 리비아의 카다피가 대표적이다. 평소에 저지른 소행을 보면 당연하다고도 하지만 평가란 여러 가지여서 제국주의의 희생자라는 사람도 있다.

세계에는 아직도 독재란 이름으로 불릴 인물들이 많은데 그들은 좌불안석이다.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몰라 전전긍긍이다. 그래서 발등에 불 떨어지기 전 평소에 잘하라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원만하려면 어때야 하는가. 서로 말하면 된다. 네 생각은 이렇고 내 생각은 이런데, 이런 차이가 있으니 우리 서로 대화를 해 보고 차이를 줄여보자. 대화란 의사소통의 좋은 방법이기도 하지만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진정성을 알게 되는 것이다. 서로 눈을 쳐다보며 표정을 보며 목소리를 들으며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어려운 문제도 해결이 된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지도자를 보면 거의가 대화와 토론의 달인이다. 토론은 자기 자신의 의견이 옳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기도 하지만 틀렸다는 것도 인식시켜 준다. 그게 피차 얼마나 이득인가. 더구나 지도자의 입장이라면 그 이상으로 좋은 일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많은 국민들이 소통의 부재를 말한다. 본인 스스로는 늘 소통을 말하고 대화를 강조하지만 국민들은 전혀 믿지 않는다. 그가 취임 초부터 밀어붙힌 4대강 사업이 36억짜리 소통부재의 대표적 사례다. 그는 인사에서도 그렇다. 국민들이 그토록 ‘고소영’ ‘강부자’를 비판했는데도 전혀 까딱하지 않았다. 결과는 오늘의 모습이다.

더구나 10.26 선거 후 민심의 소재를 알았을 법한데 인사를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명박산성으로 악명을 떨친 어청수을 경호처장으로 임명했고 ‘스크루가 돌면 수질이 개선된다’는 황당한 주장으로 4대강 전도사라는 별명이 붙은 박석순 이대 교수를 임명했다. ‘인사권은 내가 가지고 있어!’ 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 대신 책임도 져야 할 것이다.

그럼 왜 대화를 하지 않고 독단적 결정을 하는가. 사람들은 그가 CEO 출신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엄밀한 의미에서 현대건설의 CEO는 정주영이고 이명박 대통령은 고용사장이다. 결국 내려진 결론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의 성격 때문이다.

자기 맘대로 하지 않으면 성이 차질 않는 것이다. 장안에 회자된 말이 ‘해 봤어? 가 봤어?’ 이다. 독선이다. 그리고 누가 이러구 저러구 하는 것이 싫고 미덥지 않고 맘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청와대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비장한 각오를 했을 것이다. 할 말 하고 충고도 하고 비판도 하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 몇 번은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다. 지친다. 다음에는 에라 ‘모르겠다’다. 미움받으면서 미쳤다고 찍히는 소리 하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진심인지 뭔지 잘 모르겠으나 정두언이 ‘이제 나도 지쳤다’ 하는 말이 실감으로 들린다. 정두언 같은 인물이 왜 하나 둘이겠는가.

작년 6.2 지방선거와 이번 10·26선거에서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는 분명히 나타났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은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대통령이야 그만둘 수 없다지만 당의 대표나 청와대의 핵심 참모는 마땅히 책임을 지고 떠나야 한다.

결과는 어떤가. 당 대표 홍준표는 이 핑계 저 핑계 ‘무승부’라는 궤변이나 늘어놓고 사실 여부는 차치하고 임태희 대통령실장의 사표는 없던 것으로 되었다. 거기에다 대통령의 말이 국민의 머리를 때린다. ‘인적 쇄신은 나중이고 우선은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란다. 민심 수습은 누가 하는가. 사람이 한다. 어떤 사람이 하는가. 민심을 헝클어트린 장본인이 무슨 민심 수습을 한단 말인가. 말도 안 되는 꼼수며 국민의 소리에 귀를 막은 것이다.

결국 대통령의 ‘민심을 무겁게 받아 드린다’는 것은 ‘민심을 가볍게 받아 드린 것’으로 결론이 났다. 또한 민심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민심과 맞서서 얻는 것은 무엇일까. 6.2 지방선거와 10.26 서울시장 선거에서 보았듯이 정치적 불구가 되는 수밖에 없다.

▲ ⓒ<서프라이즈> 갈무리
한나라당을 보자. 홍준표가 무슨 소리를 해도 통하지 않는다. 홍준표가 말하는 ‘무승부’라는 말은 정신병자의 말로 규정한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물러나면 동정이라도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관련 책임을 물어 경호처장을 바꿨다. 몰랐다는 것이다. 누가 이 말을 믿는가. 내곡동 땅은 취소를 했으니 해결된 것일까.

“도둑이 훔친 물건 돌려준다고 절도죄 없어지는가.” 중앙대 이상돈 교수의 말이 무겁다. 대통령이 퇴임 후 자기가 살 집인데 몰랐다는 말을 부끄러워 어디에서 몰랐다는 물을 수 한단 말인가.

도올 김용욱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한 말이다.

“단군 이래 이런 사람은 없었다” “전 국토가 파헤쳐졌다. 연산군도 이렇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이어 “(고전에서도)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을 찾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과거 군주들도)그런 방식으로 야비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유사 이래 혼군으로 비유되는 이런 불명예는 왜 왔는가. 바로 소통과 대화의 부재다. 왜 못하는가. 왜 안 하는가. 대통령이 수많은 참모들 거느리고 근엄한 표정으로 국민의 말을 듣는 것은 대화가 아니고 소통이 아니다.

언제까지 그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이번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하철이나 시장에서 메모지를 펴들고 메모를 하면서 시민들과 눈을 마주치며 나누는 대화, 반쯤 무릎을 꿇고 듣는 이것이 바로 진정한 소통이다. 왜 이걸 못하는가. 시장에서 어묵이나 떡볶이를 사먹고 목도리나 풀어 감겨주는 것이 소통이 아니다. 손목 한 번을 잡아도 체온이 따스하게 전달되는 그런 것이 바로 소통임을 왜 모르는가.

대통령에 입후보했을 때 했던 공약이 하나라도 이루어 진 것이 무엇인가 말해 보라. 천정부지로 오른 물가와 실업난, 자살증가, 쪽방으로 쫓겨난 노인복지, 등록금 못내 자살하는 대학생들, 시장에 가서 강도당한 기분이라는 주부들의 말.

수백 수천억 탈세를 하고도 당당한 재벌들, 고위검찰의 비리, 이제 국민들은 이명박 정권에 대해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입이 터졌다. 생존을 위한 더없이 비겁한 행위지만 서울에서 전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은 험한 말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진즉에 해야 할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아직도 소통과 대화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가. 옛날 왕들은 미복을 하고 민심을 들었다. 왕인 줄 모르는 백성들은 온갖 말을 다 쏟아 놓는다.

이명박 대통령도 아무도 못 알아보게 변장을 하고 시장통에 나가보라. 무슨 말을 들을 수 있는가. 아마 기절을 할 것이다.

비렁뱅이도 자존심은 있다. 비록 밥을 빌어먹어도 조롱은 못 견딘다. 지금 대통령에 대한 조롱은 극에 달해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라. 대통령이 없으면 트윗을 못할 지경이다. 가지고 논다.

이명박 정권의 몰락이 바로 야당에 희망으로 갈 것 같은가. 이번 선거에서 왜 민주당은 서울시장 후보도 내지 못하고 전국에서 전멸하는 참변을 겪었는가. 반성해 봤는가. 고질적인 계파 싸움과 기득권 고수, 과감하게 이를 떨쳐 버려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다.

분열하면 희망이 없다. 부자가 망해도 3년 간다는 말이 있다. 한나라당은 절치부심하고 있다. 유유자적 낙관론에 매몰되어 있다가는 몽둥이로 뒤통수를 맞을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우리에게 준 교훈은 사리사욕으로써 배임한 권력에 대한 심판은 국민이 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다.

정치는 소통이다. 대화다. 왜 신이 눈을 만들고 귀를 만들고 입을 만들어 주었는가. 소통을 지엄한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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