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지원의 가을날

텃밭농사는 부부가 함께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일과 놀이다. 그런 일과 놀이에는 성적표가 필요 없다. 많이 심었다고 상도 없고 적게 심었다고 다툴 일도 없는 놀이. 일이 끝났다고 손바닥을 마주치지 않는다. 함께 함으로써 반복되는 일의 지루함을 덜 수 있었다면 그 뿐.

지난 주 토요일(17일)과 일요일(18일), 마늘밭을 만들었다. 그리고 오늘 (25일) 아내와 함께 마늘을 심었다.

▲ 마늘을 심을 고랑에 거름내기. ⓒ홍광석
마늘은 가을에 심어 한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초여름 수확하는 작물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법이 없이 우리 밥상에서 입맛을 살려주는 식품이다. 삽겹살을 구울 때도 육회며 갖가지 생선회를 먹을 때도 빠지지 않는 마늘. 그 마늘의 뛰어난 약성이 알려지면서 서양 사람들도 많이 찾게 되다보니 요즘은 전 세계적으로 마늘의 주가가 오르는 중이라고 한다.

마늘은 심는 일에서부터 수확까지 거의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렇다보니 노령화된 농촌에서 마늘을 심는 농가는 점점 줄게 되었고 국내 생산량도 감소되는 추세라고 한다. 앞으로 마늘 값은 더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행히 마늘은 연작을 인한 피해가 덜한 편이다. 시골 노인들은 “마늘은 시집보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좁은 땅에서도 매년 농사가 가능하다는 뜻일 것이다. 우리도 연 3년째 같은 장소에 마늘을 심는다.

밭을 만드는 일은 내 몫이다. 마늘을 뽑아낸 자리에 참깨를 심어 꼭 1년을 그대로 둔 탓에 지난해 덮어놓은 비닐은 흙에 묻히고 풀에 감겨 쉽게 잡아당겨 벗겨지지 않았다.

풀뿌리에 감긴 비닐을 뜯어내고 또 마늘밭 주변의 풀까지 정리하니 토요일 오후 반나절은 훌쩍이었다.
다시 쇠스랑으로 땅을 뒤집고 두둑을 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잠시 쉬었다가 퇴비를 뿌리고 흙을 고른 후 비닐을 덮는 일을 했는데 그도 쉽지만은 않았다. 운동 삼아서 해보자며 시작했지만 불과 열 평 남짓 마늘밭을 만들면서 일요일 오후를 보낸 셈이다.

아마 마을 분들에게 경운기나 관리기를 빌렸다면 일은 쉽고 빠르게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텃밭 농사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아야한다는 생각으로 쉬엄쉬엄 일을 마쳤다고 하지만 지난 주 중반까지 쇠스랑 휘두른 몸살은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오후, 아내는 2접의 마늘을 심었다. 산술적인 계산으로는 한 접이 100개요, 100개는 보통 6쪽이니 2접이면 1,200개의 씨앗을 심은 셈이 된다. 나는 겨우 일벗이나 해주었을 뿐 손놀림이 날렵한 아내가 거의 심었다. 그래도 오후 3시 조금 못 되어 시작한 일이었는데 5시를 넘겨서야 끝낼 수 있었다.

모든 텃밭 농사가 거저 되는 일이 아니지만 마늘 농사 역시 사람의 손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기에 시간도 많이 걸리고 땀나는 일이다. 아마 농사에 뜻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해야 될 1차적인 일은 끝났다. 이제 두어 번의 김매기와 봄철에 퇴비를 뿌려주는 일이 남았다. 수확하기 까지는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위에 얼거나 병에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모든 텃밭 농사가 그렇듯이 마늘 농사 역시 작은 희망을 심는 일이다. 내년에 높은 마늘 가격을 기대하며 수익을 올리겠다는 희망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틀 동안 마늘밭을 만들기 위해 투입한 시간을 비용으로 따져 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일도 아니다.

농부의 단위시간당 노동가치가 국가 표준으로 정해져 있지 않은 현실에서가 어느 정도 인정받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민망해지기 때문이다. 물가는 오르고 세계 경제는 어렵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의 미래도 밝지 않다는 우려가 높다.

오늘 우리는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 그저 우리 가족이 1년간 먹을 마늘을 거둘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희망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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