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부터 빛고을시민문화관 음유시인 한보리 ‘노래전시회’
초고 악보 전시․즉흥 음악 퍼포먼스 어우러지는 예술실험 

노래를 전시한다? 시인이자 작곡가, 가수 한보리 씨가 평소 그의 예술세계 만큼이나 자유롭고 아날로그적이고 실험적인 전시회를 연다. 오는 12일부터 20일까지 빛고을시민문화관 1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음유시인 한보리의 ‘노래 전시회’.

담뱃갑 속 은박종이에 나뭇가지로 스케치하거나 빈 종이 위에 펜으로 오선지와 음표를 그려 넣은 악보 등 처음 악상이 떠올랐을 때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손악보들이 전시된다. 한 곡에 하나 밖에 없는 초고 악보는 그가 곡을 쓸 때 느꼈던 감정을 관람객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시각 창작물이자 미술 작품으로서 벽에 걸린다.

▲ 가수 한보리. ⓒ광주문화재단 제공
전시회 기간 동안 매일 음악 퍼포먼스도 이어진다. 전시장 안에 그가 평소 창작 작업을 하는 네 평 남짓한 공간을 재현해 놓고, 곡이 쓰여지는 환경과 과정을 그대로 보여줄 예정이다. 이 곳에서는 음악 수업이 열릴 수도, 즉흥 연주회가 열릴 수도 있고 혹은 관람객과 함께 시에 노래를 붙여 볼 수도 있다. 누구라도 일상에서 창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포퍼먼스가 관람객들에게 예측불가능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16일 오후 4시에는 특별 미니콘서트 ‘달팽이의 노래’를 연다. 한보리, 박양희, 오영묵, 이진진 이외에 시인들을 초청, 시낭송과 시에 노래 붙여 부르기 등 관객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한보리 씨는 광주의 대표적인 포크음악 단체 ‘꼬두메’를 창단한 주역으로서 ‘내 아내는 우동을 좋아해’ ‘소를 찾아서’ ‘한보리의 헐렁한 포엠송’ 등의 음반을 발표했다.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들의 포엠콘서트’ ‘시 하나 노래 하나’ 등 시인들과 함께 시를 노래로 만드는 일을 오랫동안 펼쳐왔다. 이번 전시회는 광주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문화재능 기부 ‘문화나무 예술단’ 특별전시로서 7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지는 행사 중 첫 번째 전시회다.

문의: (062)670-7463.

한보리가 말하는 ‘노래 전시회’

오선지, 오선지.... 그러니까 말을 하자면, 음악노트를 늘 옆구리에 끼고 살았다. 언제 노래가 내 안에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기타도 있고 음악노트에 펜... 다 갖춰져 있을 땐 좀처럼 떠오르지 않던 악상이 -그 뺀질거리던 악상이- 펜도 종이도 없을 때 갑자기 떠오르곤 했을까? 그럴때면 호주머니, 늘 가벼웠던 그 호주머니 속, 멀쩡한 담배들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은박종이를 꺼내 나뭇가지로 악상을 스케치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좀처럼 인쇄된 오선지를 쓰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거니, 한 면을 가득 채운 빈 오선, 그것은 마치 내가 해야 할 일이란 비어있는 그 오선보를 마저 가득 채워야할 강박으로나 내게 다가왔을 것이었다.

‘그랬었다. 가난하게 살아왔고 지금도 가난하고, 앞으로도 가난하게 살아지겠지.’

빈 종이에 필요한 만큼의 오선을 스스로 그리면서 곡을 쓰는 것이 훨씬 자유롭고 편했었다. 지금은 악보를 만드는 프로그램을 쉽게 구할 수 있을뿐더러 입력도 아주 쉽고 한번 만들어 놓으면 분실할 위험도 없으며 언제든 꺼내어 쓰기 편한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작곡할 때, 펜으로 종이 위에 오선을 그려가면서 작업을 한다. 그러므로 한 개의 곡마다 딱! 한 개의 손으로 그린 초고 악보가 존재한다는 얘기다.
세상은 같은 시간 안에 묶이고 더욱 간편하고 안락해졌으며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 평화로워 보인다.

깔끔하고 보기 편한 악보가 있는데 굳이 손으로 그린 악보가 필요있나 싶어 컴퓨터로 악보를 만들고 나면 손으로 그린 악보는 버리곤 했다. 그렇게 버려졌던 노래들이 가끔 느닷없이 돌아와서는 나를 놀래키기도 했다. 그 오래 전의 이미지를 다시 만나는 일이라니! 삶이란, 삶의 흔적들이란 얼마나 놀랍고 집요한가! 사실 이 일은 순수했던 나의 어린 시절과 지금의 내가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나를 만나고 싶은 거다!

악보는 음악이 아니다 음악을 하기 위한 기호에 불과할 뿐, 악보가 저절로 음악을 해주는 건 아니니까! 종종 콘서트를 위해 연습하다보면 내가 만든 곡임에도 낯선 경우가 있다. 처음 곡을 쓸 때의 그 감상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억지로 만들어내는 음악이 신통할 리가 없다.

그런 경우 처음 그렸던 손악보를 찾아서 들여다보면, 신비롭게도 처음 그 곡을 만들때의 감정이 되살아오는 것이었다. 아주 빠르게 갈겨 쓴 오선이며 해독 불능의 글씨이지만 분명하게 거기에는 컴퓨터로는 옮겨 적을 수 없는 이미지가 남아 있는 것이었다. 악보는 음악 그 자체는 아니다! 겨우 기호에 불과하다. 하지만 악보는 엄연한 시각적 창작물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하기에 음악과 미술은 여러 장르의 예술 중에서도 서로 상반된 가장 멀리 떨어져있는 예술이다. 너무 구체적이거나 혹은 너무 추상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인지 이 두 개의 장르는 서로 연모한다. 모든 예술의 기본 원리가 서로 닮아있고 뿌리가 닿아있긴 하지만, 음악은 가락적인 표현을 통해 미술을 닮으려하고 미술은 리듬을 통해 음악적이고자 한다.

내가 지금 하려고 하는 작업은 어쩌면 이러한 닮고자하는 마음의 구체적인 표출에 다름아닌지도 모른다. 21세기 예술은 각 장르의 통합을 거쳐 다시 분화하게 되는, 다시 말하면 새로운 방식의 예술이 시작되는 무렵이다. 새로운 모색을 통해 조금 더 진보적이어야 하고, 이제까지의 위선적이며 권위적인 태도를 버리고 대중과 교감 소통하는 어떤 방식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이번 전시회의 목적이며 나의 태도이기도 하다.

앞서 얘기했듯이 악보는 표정을 가진다고 했는데,
첫 번째, 내가 직접 손으로 그린 악보를 보여줌으로 사람들이 내가 곡을 쓸 때 느꼈던 감정을 나는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두 번째, 사람들의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오해
‘창작이란, 오래고 많은 교육과 타고난 재능을 가진 특별한 사람들만의 것’이라는 생각의 오류를 바로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실제로 나는 도서지역을 돌며 어린 학생들과 창작수업을 해보았는데 훌륭한 노래들을 곧잘 쏟아내곤 했다.- 창작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며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일상에 속한 영역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리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창의적인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고 싶다.

하여 이번 전시공간 안에 내가 체험했으며 겪어왔던 -내 어린 시절의 방과 같은- 창작의 공간을 재현해 놓고, 곡이 쓰여지는 환경과 과정을 고스란이 보여줄 예정이다. 물론 이 네 평 남짓한 공간에서 창작과 예술에 관한 담론이 벌어질 수도, 음악 수업이 열릴 수도, 혹은 퍼포먼스가 벌어질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

예술이란 별 거 아니다! 이미 오래전 우리가 문화를 가지기 이전부터 늘 살아 숨쉬고 있었던 것이 예술이고, 공간과 시간을 넘어 존재하고 있는 이것이 예술이며, 지금 우리들이 살아내고 있는 삶, 그 비린내 나는 이것이 바로 예술의 진짜 몸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예술
가끔 나는 창작에 관한 설명을 하면서 피아노와 고양이 얘기를 꺼내곤 한다. 조금 억지, 아니 사실은 상당히 억지스러운 얘기긴 하지만, ‘고양이도 작곡을 한다’. 어느 나른한 오후, 뚜껑이 열려있는 피아노, 그때 마침 나타난 고양이가 피아노 위로 올라와서는 천천히 걷고, 고양이 발걸음에 따라 울리는 현, 리드미컬한 가락, 라르고... 라르고.... 레가토 흡!! 스타카토!!! 공간을 울리는 그 소리에 깨어난 피아노의 주인, 깨어서는 버럭 소리를 질러댄다면... 쏜살같이 고양이는 건반을 가로질러 질주하겠지. 고양이 발자국이 만들어 내는, 건반의 아래 음에서부터 높은 음까지 연결되는 빠른 속주!

우리가 들은 이 아름다운, 봄 어느 날의 음향, 이것을 창작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아니긴 하지만, 꼭 이는 아니라고 또 핏대를 올릴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번 전시가 벌어지는 공간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한 예술적 표현이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우연성에 기댄 음악이라든지 관객과 함께 만들어보는 시노래라든지, 등등의 여러 실험적인, 시각적 음악적 퍼포먼스를 펼쳐 보일 예정이다. 이것은 악보 혹은 텍스트 혹은 그림을 액자틀에 넣어서 보여주기만 하는, 일반적인, 그리고 일방적인 전시가 아니라 관객과 함께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예술의 체험을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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