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호 둑 높이기 사업과 시가문화권

김 신 중(전남대학교 교수)

1. 광주호변의 누정과 시가문화권의 형성

광주호를 중심으로 한 무등산권인 광주와 담양 일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가문학 유적지로서, 시가문학의 산실인 누정(樓亭)과 원림(園林)이 산재해 있다. 그 중 광주의 환벽당(環碧堂)과 풍암정(楓巖亭)․취가정(醉歌亭), 담양의 독수정(獨守亭)․소쇄원(瀟灑園)․면앙정(俛仰亭)․식영정(息影亭)․송강정(松江亭)․명옥헌(鳴玉軒) 등이 비교적 깊은 유서와 아름다운 풍광으로 그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이러한 누정 가운데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은 조선 초에 건립된 독수정이다. 이후 한동안 보이지 않던 무등산권의 누정 건립 활동은 16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비로소 활발해진다. 이때부터 16세기 말 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간 원림으로 자리매김 된 소쇄원을 비롯하여, 면앙정·환벽당·식영정·송강정 등 주요한 누정의 건립이 줄을 이었다. 또 임진왜란 이후의 것으로는 광주의 풍암정과 취가정, 고서의 명옥헌 등이 눈길을 끈다. 이렇듯 무등산권 누정의 건립은 멀리 조선 초까지 소급되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 조선시대 중기인 중․명종 대를 지나며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일반 누정이 그렇듯이 이 지역 누정 역시 그 성격이 다양하다. 시문의 산실, 강학의 전당, 원림의 중심, 은일 소요처, 선인 추모처 등 여러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이 시문의 산실로서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호남 지역 문인들의 활동이 가장 왕성하였던 16세기에 그들이 펼친 문학 활동의 중심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박상(朴祥)을 비롯하여 송순(宋純), 임억령(林億齡), 양산보(梁山甫), 김인후(金麟厚), 박순(朴淳), 김성원(金成遠), 기대승(奇大升), 고경명(高敬命), 정철(鄭澈), 백광훈(白光勳), 최경창(崔慶昌), 임제(林悌) 등이 이곳을 무대로 시단(俛仰亭詩壇, 息影亭詩壇 등)을 형성하였던 대표적인 문인들이다.

누정을 무대로 산출된 시문들이 누정문학이다. 누정문학은 다시 누정가사, 누정시조, 누정한시, 누정기 등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무등산권의 누정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뛰어난 누정가사 작품들을 산출하였다는 점이다. 면앙정·식영정·송강정이 바로 그러한 산실들로서, 여기에서 제작된 송순의 <면앙정가(俛仰亭歌)>와 정철의 <성산별곡(星山別曲)>·<사미인곡(思美人曲)>·<속미인곡(續美人曲)>은 조선시대 가사문학의 백미로 꼽힌다. 많은 문인들이 유숙하고 출입하였던 환벽당과 소쇄원 역시 주목된다.

이러한 연유에서 광주호를 끼고 있는 이 무등산권을 우리는 흔히 ‘시가문화권’이나 ‘가사문화권’ 또는 ‘정자문화권’ 등으로 부르고 있다. ‘한국가사문학관’이 여기에 자리한 것도 이러한 문화유산을 잘 가꾸고 보존하기 위해서이다. 광주호변의 이 시가문화권이 해남과 보길도 일대의 고산 윤선도 유적지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가문학 유적지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2. 둑 높이기 사업과 시가문화권의 가치

우리 시가문학에서 산수 자연은 매우 중요한 성립 요소이다. 대부분의 작품이 산수 자연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며, 그런 만큼 작품과 자연적 배경과의 관계가 밀접하다. 때문에 작품의 이해나 감상에는 그것을 산출시킨 자연 환경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그것이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작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1991년 2월을 ‘송강 정철의 달’로 삼고 문화부와 전라남도가 식영정 아래에 세운 기념비는 작품의 배경으로서 자연의 소중함을 다음과 같이 새기고 있다.

위대한 시인은 종이가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 위에 시를 쓴다
이 곳 식영정 마루턱에 서면
바람도 옛 운율로 불고
냇물도 푸른 글씨가 되어 흐르나니
우리는 지금 풀 한 포기, 흙 한 줌에서
송강의 가사 성산별곡을 온몸으로 읽는다
하지만 1976년 광주호가 축조되고 1981년 도로확장공사가 이루어지면서, 이 지역 일대의 지형이 크게 변하였다. 가사 <성산별곡>에 나오는 자미탄(紫薇灘)·석병풍(石屛風)·노자암(鸕鶿巖)을 비롯하여 석경(石逕)·조대(釣臺)·용소(龍沼) 등이 지금은 사라졌거나 옛 모습을 상실해버린 배경들이다. 이밖에 임억령의 원운에 김성원·고경명·정철의 성산 사선 및 송순이 화작한 한시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에 나오는 ‘창계백파(蒼溪白波)’·‘조대쌍송(釣臺雙松)’·‘환벽영추(環碧靈湫)’·‘송담범주(松潭泛舟)’·‘평교목적(平郊牧笛)’ 등도 지금은 옛 정취를 느낄 수 없는 풍경들이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식영정 아래 도로변의 ‘자미탄 유지비’는 이렇게 전해 준다.

송강 정철 선생의 유적은 전라남도 지방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문화재로서 영구히 보존되고 있다. 이곳 식영정은 송강 선생이 성산별곡을 지은 산실로서 자미탄 노자암 석병풍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그러나 1976년 광주호가 축조되고 이어서 1981년 4월 영산강농지개량조합에서 시행한 도로확장공사에 따라 자미탄과 석병풍이 매몰되므로 성산별곡에 명기된 이 유적을 길이 기념하고 후대에 그 기록을 남기기 위해 여기에 이 비를 세운다. (1981년 9월 일 전라남도)

그런데 현재 논의 중인 광주댐 둑 높이기 사업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그 결과가 어떨지 정확한 예측은 하기 어렵다. 하지만 광주호의 수위가 일정 부분 높아져 주변 지형에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한 일이다. 특히 상류의 환벽당 아래 충효교의 재가설 문제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 조대와 용소 부근의 지형 및 노자암 등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그 자리에 ‘자미탄 유지비’와 같은 표지석을 두는 것을 생각할 것이다.

전통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관심은 아름다운 풍경이나 인공적인 구조물 등에 대한 단순한 볼거리의 차원을 넘어 거기에 담긴 시대정신이나 문화적 의미까지를 음미하고자 한다. 시가문학의 여운을 찾는 사람이라면 작품의 산실뿐만 아니라, 작품에 구현된 정취까지를 체험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가장 필요한 것이 더 이상의 원형 훼손이 없는 자연 경관의 보존이다. 이에 반하는 훼손은 현재뿐 아니라 후손에 대해서도 매우 무책임한 일이다. 한번 훼손된 유적은 모형 제작이나 재현 등 그 어떤 방법으로도 원래의 상태로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광주호변의 시가문화권은 근대 이전의 역사 유적이 풍부하지 못한 이 지역의 대표적인 명소이다. 우리는 흔히 ‘명작의 고향’이라는 이름으로 인구에 회자되는 외국의 고색창연한 유적지들을 보며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에 필적할 유산들을 지키고 가꾸는 노력을 게을리 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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