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백 소설 <갈보 콩>... "해학적인 농촌소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제 밭의 콩들은 죄다 을석네 미제 콩과 붙어먹어 어디 씨도 모를 화냥질 콩이 된셈이 아닌가. 인간이구 콩이구, 밖에서 굴러온 것들이 문제여.”(239쪽).

▲ 소설 <갈보 콩> 표지.
해학적인 소설의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이시백 소설 <갈보 콩> (실천문학사/1만1천원)은 우선 재미가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재치와 유머 넘치는 소설 읽기에 푹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단숨에 소설을 읽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

간만에 보는 농촌 소설이 반가움을 넘어서 보물처럼 소중하게 느껴진다. 도시를 소재로 쓴 그간의 소설들이 무미건조하게 대중을 옭아매는 사이 우리들은 획일화된 소설의 모티브에 식상해 있었다 마치 공장에서 마구 구어 낸 빵을 선택의 여지없이 먹어야 하는 저녁 식탁의 빈곤 같은.....

“아무리 남녀가 벌어서 먹구사는 시상이라구 혀두, 여전히 여자는 남자 만나기 나름이여. 돈 주구 배냇병신 반건달 맨드는 먹구 대핵버덤 가만히 집 안서 반찬 맨드는 거나 배우문서 근신허다가 배필 만나 살림 채리는 게 수여.”

그러면서도 딸을 골프장에 내돌리는 데는 진구 나름대로 의견이 있었다. 촌에서 암만 눈 크게 뜨고 뒤져봐야 나라에서도 내버린 농사 천하지그지나 만나 땀 반 흙 반 섞인 세끼 겨우 먹고사느니, 아무래도 넉넉한 이들이 드나드는 골프장에 낯을 내놓으면 그럴듯한 중신 자리라도 나서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었다.(89쪽).


민중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줄 아는 그런 미덕을 담은 소설들을 기대하는 것이 지나친 오판 이였을까? 여타의 문학들이 예술과 자유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을 기만하는 사이, 문학은 대중과는 거리가 먼 어떤 신기루 같은, 혹은 예술지상주의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기만한 소설들이 민중들을 더욱 현혹시킬 기세였다. 그래서 권력을 갖은 자들은, 이른바 침묵의 무리들과 또 암묵적으로 한 패거리가 된다.

이시백의 소설 <갈보 콩>이 농촌의 가슴 아픈 현실을 담아내고도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파계되고 해체되어가는 농촌의 현실을 해학과 유머 윗트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의 건강성을 담보한 강건한 문체의 작품이 현실을 강하게 대변해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시백의 소설 <갈보 콩>은 민중의 역동성이 가장 깊은 뿌리를 두고 뻗어 나아가고 있다. 농촌의 현실을 질타한 우수한 문학 작품에서 역사와 사회, 그리고 경제와 문화, 전통 그 모든 것들을 발견 할 수 있는 것은 새삼 뿌리 깊은 한국 문학사의 어제와 오늘의 일이 아닐 진데 그래도 또 한 번 축하해 주고 싶다.

촐랑거리는 딸의 손에 이끌린 재구는 바깥마당에 맹꽁이처럼 엎드린 빨간 차를 보는 순간 대뜸 소리부터 질렀다. "하필이면 빨갱이여! 딴색으로 당장 바꿔와." 밭가운데 꽃힌 도로공사 빨간 깃발만 봐도 우선 가슴부터 덜 컥거리던 재구는 영문도 모른 채 서서 우물거리는 다 큰 딸의 등가죽을 한대 후려갈겼다.(57쪽)

▲ 소설 <갈보 콩> 저자 이시백.
4대강 살기기다 뭐다 국민의 소리에 귀막은 이명박 정부에 대고 일갈을 가하듯 책을 덮으려는데 작가의 소리가 들려오는듯 하다.

 "안정감꺼정은 모르겠구, 평화 찾는 댐이래구 성금 떼 처먹은 거 허구, 나라 잘 지키라구 세금으루 입히구 먹인 군인덜 시켜 제 백성 도륙 낸 건 모르지 않지. 그도 안정감이라믄 헐 말은 웂는 일이구"(41쪽).
지발 애국 좀 허질 말아달라 이 말씀여.(44쪽)


작가는 진실과 정의를 말하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라면, 이시백작가가 소설집 갈보콩에서의 작가적 책무 또는 무게가 독자들에게 나름대로의 행복을 주었다는 것은, 꼭 소설이 해피엔딩이 아니도 그 행복의 무게는 그가 고민한 영혼의 깊이 만큼 독자의 몫으로 온전히 와닿아 있다.
<갈보 콩> (실천문학사/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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