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 필요조건 6.15는 반드시 살려야" 뉴스검색 제공제외

한상렬 목사는 단독으로 평양을 방문하면서 고 문익환 목사가 입던 흰색 두루마기를 입었다. 이 두루마기는 문 목사의 부인인 박용길 장로가 문 목사의 수감시절 손으로 지은 것으로, 문 목사 서거 이후 10년을 간직하고 있었던 유품이기도 하다. 박 장로는 2003년 한 목사에게 이 두루마기를 건넸다. 뜻을 이어달라는 의미였다. 

한 목사가 이번에 방북한 것은 여러모로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과 비교된다.

▲ 12일 방북 사실이 전해진 한국진보연대 상임고문 한상렬 목사.ⓒ자료사진= 통일뉴스 발췌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 분단 이후 사상 처음으로 통일을 위해 휴전선을 넘었던 역사적인 사건이라면 한 목사의 방북은 천안함 사건 이후 급격히 고조되는 한반도 긴장을 인식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천안함 사건은 여전히 사실 관계에서 국내외적 논란 위에 있지만, 동북아 정세에서 규정적 역할을 해 온 미국 정부의 인식은 오직 북을 압박하는 데로 집중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가 앞장을 서고, 미국 정부가 뒤를 받치는 꼴이다.

한미 당국은 유엔에서의 대북제재 논의가 끝나는 대로 ‘행동전’에 들어갈 계획이다. 남쪽 단독으로 추진되는 대북 심리전 재개나, 6월 하순으로 예고된 서해상의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그것이다. 만약 서해상에 미 항공모함이 출현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북한은 ‘준전시상태’ 선포 등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대북 심리전 재개는 자칫 휴전선에서의 대규모 충돌을 낳는 불씨가 될 가능성도 다분하다.

한상렬 목사 방북의 메시지

한 목사의 고백은 ‘평화’와 ‘6.15’를 그 화두로 하고 있다. “지금 여기 한몸평화!, 우리 민족 한몸평화!”로 시작한 서두나, “6.15는 반드시 살려야 합니다”는 마무리가 그러하다. 6.15공동선언을 한반도 평화의 필요조건으로 본다는 의미다.

지금 한반도의 가장 위험한 현안이 되어버린 대북 심리전의 경우, 6.15 공동선언에 뒤 이은 2004년의 남북장성급회담에서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실제의 대북방송이 중단된 시점도 2004년 6월 15일이었다.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는 대북 전단 살포의 경우에는 이보다 빠른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4월부터 중단되었다.

그렇기에 이명박 정부가 대북 심리전을 재개한다고 발표한 것은 6.15 공동선언에서의 합의를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고 공표하는 셈이 된다. 나아가 남북이 ‘심리전’ 문제를 놓고 발언 수위를 연일 높이고 있는 것도 문제다.

북한은 남한측의 대북 심리전 재개가 발표되자 ‘심리전 수단에 대한 조준사격’을 거론하면서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남한도 ‘비례성’과 ‘충분성’이라는 개념 하에 새로운 교전규칙을 마련해 북한이 1발을 쏘면 3발 이상 대응 사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북한이 12일 내놓은 ‘서울 불바다’ 발언은 남한의 ‘충분성’ 교전 수칙에 대한 대응이라고 볼 수 있다. 자칫 휴전선에서의 우발적 총격이 상당한 규모의 국지전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충분해 진 것이다.

북한의 ‘서울 불바다’ 발언은 1994년에 이어 16년 만에 다시 나온 표현이다. 1994년은 미국의 영변 핵시설 폭격 가능성을 놓고 첨예한 긴장을 빚었던 시기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전쟁위기를 겪었던 시기였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자국민을 한반도에서 소개하려던) 클린턴 미 대통령과 전화로 2시간을 싸웠다”고 할 정도였다.

한 목사의 방북은 1989년의 문익환 목사 방북에 비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주지는 않을 전망이다. 6.15선언 이후 남북을 오간 행사가 많았고, 지금도 개성공단에서 남북 협력 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당국 역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을 거론할 뿐, 국가보안법 처벌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한 목사의 방북이 던지는 메시지는 오히려 더 절박하게 느껴진다.
오늘의 한반도가 10년 전 6.15공동선언을 뒤로 돌린 것은 물론, 자칫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전쟁위기로 휩쓸리고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