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사고를 보는 시각②] 해군은 왜 ‘동문서답’을 했을까 <뉴스 검색 제공 제외>

지난 달 30일 백령도 사고 현장을 찾은 이명박 대통령이 물었다.
“기뢰가 터졌더라도 흔적이 남는가?”
김성찬 해군 참모총장(대장)이 대답했다.
“어뢰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해군은 왜 ‘동문서답’을 했을까

언론은 이 문답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 해군은 어뢰 쪽에 좀 더 가능성을 두고 있다는 분석 정도였다. 그러나 대통령은 야당 대표가 아니다. 해군의 ‘판단’이 있다면 당연히 이를 사전에 보고받았어야 할 위치다. 더구나 이 동문서답은 며칠 뒤 다시 반복되었다.

▲ 김태영 국방부장관이 천안함 침몰 현장을 보여주는 그림판을 들어 설명을 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4월 2일 국회에 출석한 김태영 국방장관은 의원들의 질문에 “어뢰와 기뢰 두 가능성이 다 있지만, 어뢰 가능성이 좀 더 실질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날 국방부 장관의 답변 전체를 살펴보면 북 잠수정의 침투 정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으며, 생존 승조원 중 소나(음파탐지)병이 어뢰가 접근하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즉 어뢰 공격의 정황은 전혀 없으나, 어뢰인 것 같다는 모순적인 답변을 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청와대와 정부의 반응이었다. 김 장관의 국회 발언을 지켜보고 있던 김병기 청와대 국방비서관은 이른바 ‘VIP메모’를 보내 발언 수위 조절을 요청했고, 같은 날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나 “국방 장관이 의원들의 ‘낚시’에 걸린 것 같다”, “회의나 보고에서 기뢰 이야기는 많이 나왔지만, 어뢰 이야기는 없었다”고 즉각적인 해명에 나섰다.

김 장관의 ‘어뢰가 실질적’이라는 발언에 대한 총리실이나 한나라당 의원들의 평가도 비슷했다. 장관이 실언을 했다는 것이다. 결국 김 장관은 이튿날인 3일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 “의원들이 이지선다로 몰고 가다보니...”, “사실은 모든 가능성을 열고 가는 것”이라고 모호한 해명을 내놓았다.

무기로서의 효과는 비슷하지만...

그러나 이 두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볼 수 없다. 어뢰와 기뢰는 무기의 효과 면에서는 유사할지 모르지만, 정치적 후폭풍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NLL 근방에서 벌어진 천안함의 침몰이 만약 어뢰 공격 때문이라면 북이 그 행위자로 지목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남과 북은 이 해역에서 이미 3차례 교전을 벌인 적이 있다. 더구나 사고 시기는 북이 ‘전쟁연습’이라고 비난하는 키리졸브-독수리연습(KR/FE)이 벌어지고 있었던 때다. 어뢰를 쏜 주체를 밝히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북으로 지목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군으로서는 ‘사고’보다는 ‘교전’이 나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세계일보>는 6일자 신문에서 “군이 생각하는 최선은 어뢰나 기뢰 공격 등 북한의 계산된 ‘은밀한’ 도발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허술한 경계에 초점이 맞춰져 일시적으로 정치권과 여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을 수 있지만 사건의 모든 책임을 북에 전가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 경우 군 수뇌부 문책도 최소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청와대로서는 이 경우 남북관계의 전면 중단은 물론, ‘보복’ 공격 여론에 휘둘릴 수 있다. 사고 당일 금값이 출렁했던 것처럼 한국 경제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점도 문제다.

반면, 기뢰의 경우 정치적 후폭풍은 크게 줄어든다. 북에 책임을 떠넘기기도 어렵고, 내부 사고로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이 경우 ‘영구미제(永久未濟)’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최소한 청와대로서는 선체 인양 전에 어뢰를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피하고 싶을 것이다.

군의 단독 조사는 믿을 수 없다?

군과 청와대의 갈등은 민군합동조사단의 구성을 놓고 결국 불거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두 차례의 ‘어뢰’ 해프닝을 경과한 6일 “현재 군이 맡고 있는 민군합동조사단의 책임자도 누구나 신뢰할 수 있는 민간 전문 인사가 맡도록 해야 한다”고 국방부에 지시했다.

역으로 풀면 ‘군이 조사하는 것만으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는 의미다. 군으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민군합동조사단은 최종적으로 민군의 공동 단장 체계로 마무리되었다. 군으로서는 다행히 조사의 주도권은 놓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안함 사고를 보는 시각③-끝] 안보 중심 보수와 시장 중심 보수, 그리고 천안함의 정치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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