쓱 보여준다고 집단 백혈병 의혹 감춰지나

집단 백혈병 발발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삼성전자가 문제가 된 기흥 반도체 공장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들을 제외시킨 데다 취재에 필요한 관련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문제가 된 라인과 이번에 공개되는 라인이 다르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던 언론이 어떤 보도를 쏟아낼 것인지는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삼성전자는 12일 공식 트위터를 통해 "일부에서 반도체 생산라인의 근무환경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어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정확한 사실을 설명하고 모든 것을 밝히기 위해 오는 15일 (경기 용인) 기흥 반도체 사업장에서 언론매체 기자들에게 제조공정과 생산라인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1983년 반도체 생산라인이 설치된 이래 이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최초다.

▲ 삼성반도체 기흥공장. ⓒ월간 말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13일 성명을 내고 "2009년 서울대 보고서와 2008년 노동부 조사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 우선이고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들어가서 현장을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반도체 공장은 전문적이고 복잡한 공정"이라면서 "기자들의 견학 수준이 아닌 진짜 취재가 가능하려면 근무 경험자가 현장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전문가들이 지적한 문제가 뭔지 사전에 공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삼성이 공개하겠다고 밝힌 5라인과 S라인은 자동화된 라인으로 백혈병 발병자들이 일했던 사고라인과 환경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보고서가 사전에 공개돼야 어느 공정과 어느 장비를 확인해야 하는지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노동부가 2008년 산업안전공단과 공동으로 전국 13개 반도체 제조업체 일제조사를 실시한 이 보고서에는 반도체 업체별 주요화학물질 취급현황 등이 담겨있다.

백혈병 피해자들 모임인 반올림은 14일 성명을 내고 "이번 공장 공개는 우리가 요구해 왔던 투명한 정보공개와는 거리가 멀다"면서 "이런 방식으로는 의혹과 불신을 해소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반올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종란 노무사는 "박지연 씨의 사망을 계기로 증폭된 삼성반도체 직업성 암 피해 사실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삼성 내부의 동요를 신속하게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올림에 따르면 백혈병 피해자들이 일했던 1라인과 2라인은 2007년 9월 이전에 폐쇄됐고 3라인은 지난해 3월 LED 공정으로 바뀌었다. 이번에 공개되는 S라인은 가장 최신에 증설된 자동화 라인이다. 사람이 거의 필요 없는 정도로 대부분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고 있다. 백혈병 피해자들이 일했던 환경과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다. 함께 공개되는 5라인은 화학물질을 직접 다루는 공정이 아니다.

반올림은 취재 기자들이 유의할 점을 몇 가지 제시했다. 외부에서 사진을 찍는 경우 우주복처럼 생긴 방진복을 입는데 실제로 그런 방진복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가 됐던 지하 배관 역시 개선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작업이 이뤄지는 서비스 구역은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반올림은 "과거 근무했던 노동자들 경험을 들어보면 외부 견학이 있을 때 유해화학물질을 치워놓고 사전 교육을 시켜 입단속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5라인에서 일했던 정애정씨는 "방진복과 방진화에는 이물질이 많이 묻어 있을 것"이라며 "만약 새 방진복을 걸어놓았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또 "평상시 작업 환경이라면 엔지니어들이 보호도구 없이 비닐장갑 하나만 끼고 화학물질이 묻어있는 챔버를 청소하거나 가스통을 교환하는 걸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 "방독면 같은 호흡기 관련 보호도구가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한 차례 공개로 모든 의혹이 해소될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면서 "다만 반도체 생산 라인이 지저분하고 화학물질이 널려있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어서 이해를 돕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왜 1~2라인을 공개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나마 옛날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게 5라인이라서 그런 거고 자동화된 S라인은 이왕 오신 김에 최신 설비를 보고 가시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왜 피해자들을 참석시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렇잖아도 참가 인원이 너무 많아 하루에 모두 수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면서 "시민단체에서 요구하는 인원을 다 받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는 향후에 또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15일 공장 공개에는 주요 언론사 기자와 홍보 담당자를 포함 70여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공장 앞에서는 반올림 관계자들 집회도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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