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발랄 새로운 시위문화… 난감한 경찰 <뉴스 검색 제공 제외>

아이폰 촛불이 새로운 집회 트렌드가 될까. 31일 저녁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 광장에서 열렸던 촛불집회에서는 아이폰 촛불이 등장했다. 천안함 사고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이날 촛불집회에서 경찰은 촛불을 입으로 불어 끄거나 빼앗는 등 강경한 태도로 나왔다. 집회 참석자는 10명 안팎이었지만 경찰은 참석자가 늘어나기 전에 원천 봉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촛불을 끄려는 경찰과 다시 켜려는 참석자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촛불을 빼앗긴 일부 참석자들이 아이폰을 꺼내들고 촛불 어플리케이션을 실행시켜 흔들기 시작했다. 경찰은 당황했다. 휴대전화 단말기를 시위용품으로 보기 애매한데다 거의 100만원에 육박하는 만만치 않은 가격이라 이를 빼앗게 되면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킬 게 뻔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휴대전화 화면에 촛불을 띄웠다는 이유로 빼앗기에는 명분이 부족하기도 했다. 아이폰은 배터리 탈착도 안 돼서 경찰을 더욱 당혹하게 만들었다.

애플 앱스토어에는 촛불 관련 어플리케이션이 여러 개 올라와 있다. 대부분 무료거나 1달러 정도면 구매할 수 있는데 진짜 촛불처럼 시간이 지나면 녹아내리고 아이폰을 흔들면 촛불도 따라서 흔들린다. 일부는 바람을 불어 끌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도 있다. 만약 경찰이 이를 알았다면 아이폰 촛불도 불어서 끄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날 집회 참석자들에 따르면 경찰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

▲ 애플 앱스토어에는 수십여종의 촛불 어플리케이션이 올라와 있다. 대부분 무료거나 1달러 안팎의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ilounge.com

앱스토어에는 촛불 뿐만 아니라 라이터 어플리케이션도 다양하다. 지포 라이터처럼 생겨서 찰칵하고 뚜껑을 열면 불이 붙는 어플리케이션도 있고 흔히 쓰는 1회용 라이터처럼 마찰 롤러를 굴려서 불을 붙이는 어플리케이션도 있다. 어느 것이나 밤에 보면 진짜 라이터처럼 환한 불빛을 내뿜는다. 보통은 호기심 차원에서 한번 실행시켜 보고 내버려 두는데 이게 집회에 사용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우리나라에서 촛불집회의 기원은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2002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군 장갑차에 깔려 무참하게 숨진 미선․효순양의 넋을 위로하자는 한 누리꾼의 제안으로 시작된 촛불은 한미FTA 반대 집회와 미국산 쇠고기 반대 집회,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집회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촛불은 미선․효순양의 영혼을 의미하는 동시에 어두운 현실에 불을 밝힌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 촛불 어플리케이션 가운데 하나인 캔들 프레임. 입으로 바람을 불면 꺼진다. 가격은 무료.

앞으로 촛불집회 때는 수많은 아이폰 촛불이 등장할지도 모른다. 아이폰 뿐만이 아니다.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에도 촛불 어플리케이션이 많다. 진짜 촛불과 달리 따뜻한 온기는 없지만 불을 밝힌다는 건 다를 바 없다. 비용도 들지 않는다. 과거 일부 보수 언론이 비난했던 것처럼 촛농을 떨어뜨려 거리를 어지럽힐 일도 없다. 물론 그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는 양초업계는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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