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이씨 왕족 공신관련 문화재 기증

국립광주박물관(관장 조현종)은 2009년 7월 16일 전주이씨 양도공파종중(襄度公派宗中)으로부터 이천우영정(李天禑影幀)을 비롯한 8건 20점의 유물을 기증받았다.

▲ 이응도 탁본모습.
기증된 주요 유물은 이성계 형 원계(元桂)의 둘째 아들인 이천우의 영정과, 태종이 아낀 송골매를 새긴 이응도목판(二鷹圖木版), 군신이 모여 충성을 맹세한 문서를 새긴 회맹축목판(會盟軸木版) 등으로 조선 초기 왕족공신과 관련된 유물이다.

태종대왕은 정난(靖難) 정사(定社) 좌명(佐命) 공신(功臣)인 완산군 이천우를 총애하였다. 1416년에 이천우가 관직을 사직할 때, 사냥을 좋아한 태종이 매에 빠져 정사를 그르칠까 염려하여 아끼는 노화송골과 백송골을 달라고 청하였다.

▲ 이응도 탁본 모습.
이에 태종은 친히 이천우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였으며 화폭 좌우에 사완산부원군이천우(賜完山府院君李天祐)라 쓰고, 두 마리 매를 그리게 하여 하사하였다. 또한 포총교지(襃寵敎旨)와 회맹축(回盟軸)를 내렸는데, 축 위에 태종의 어압이 있었다고 한다.

기증 유물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관련된 유물이다. 이와 함께 이천우를 모시는 영광 묘장서원(影堂祠) 운영과 관련된 완문(完文), 심원록(瀋院錄) 등이 함께 기증되어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이천우영정
이 초상화는 태종 16년(1416)에 3명의 화공을 바꾸어 가며 그렸지만, 태종의 마음에 들지 않아 사신을 따라 오는 중국 화공에게 그리게 하였다. 1682년 화재로 영정의 발 아래 부분이 불에 타 영조 50년(1774)에 당시 유명한 도화서 화원이었던 한종유(韓宗裕)가 옮겨 그리고, 1936년 이종원이란 화가가 다시 손질한 것이다.

▲ 이천우 영정.
이천우영정은 약간 왼쪽을 바라보고(右顔九分面), 양 손을 소매 속에 넣는 손 모양拱手을 하고, 의자에 앉은 모습(全身交椅坐像)을 그린 공신도상(功臣圖像)이다. 옷은 단령(團領)을 입고 머리에 사모(紗帽)를 쓰고, 허리에 그의 직급을 나타내는 삽화금대(鈒花金帶)를 두르고 있다.

단령의 좌우가 트여 있으며, 사모는 높이가 평편하고 좁고 긴 뿔(兩角)이 아래로 처져 있는 모습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의 복식을 보여준다. 이 영정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공신초상화 형식을 알려 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응도목판 이응도는 초상화와 함께 태종이 하사한 것으로 1616년 영광의 묘장서원에 이천우 영정과 함께 동서 벽에 비단 폭의 매 그림을 각각 모셨다. 1682년 화재로 백송골 그림이 불에 타자 노화송골 그림을 모사하여 흰색을 칠하였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매 그림은 이규헌(李奎憲)이 갑술(1814년?) 계춘에 그린 그림이다.

▲ 이응도 목판1.
기증유물은 유최기(兪㝡基)가 1747년에 쓴 찬문贊文이 새겨진 목각판木刻版이다. 목판의 앞면에는‘태종대왕어사노화골도(太宗大王御賜蘆花鶻謹’)이라는 글자와 함께 노화송골매가 새겨져 있다. 목판의 뒷면에는 ‘태종대왕어사백송골화도 (太宗大王御賜白松鶻畵謹’)라는 글자와 함께 백송골이 새겨져 있다.

이 목판에 있는 백송골은 송골매 가운데 가장 큰 매로 귀송골(貴松鶻), 옥송골(玉松鶻), 옥해청(玉海靑)로 부르며, 해동청과 함께 황제에게 바치는 귀한 매로 주로 러시아와 일본의 북해도에 서식한다. 노화송골은 흰 매이면서도 푸른 깃털이 갈대꽃과 같아 부른 이름이다.

매 그림의 대부분은 조선 후기 이후의 그림으로 조선 초기의 그림은 매우 귀하다. 이 목판은 조선 초기의 매 그림을 반영한 것으로 조선 초기 매 그림을 보여주는 중요 자료이다. 또한 매는 화사한 시치미를 달고 화려한 받침대에 위에 묶여져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왕실의 매 사냥문화를 보여준다.

▲ 회맹축 목판1.
▲ 회맹축 목판2.
맹축목판 회맹축은 1404년 태종 이방원이 여러 공신을 거느리고 종묘 사직에 나아가 충성과 신의를 굳게 맺은 기고문祈告文을 기록한 두루마리이다. 이 회맹에는 개국(開國) ․ 정사(定社) 좌명(佐命) 공신(功臣) 등 66명의 공신이 참여하였다.

이 가운데 이천우는 정난(靖難) 정사(定社) 좌명(佐命) 공신(功臣) 숭록대부(崇祿大夫) 판사평부사(判司平府事)로 기록되어 있다.

이 회맹축 목판은 정조 15년(1791)에 이르러 회맹축이 퇴락하자, 이를 영구히 보존할 방안으로 판각되었다. 목판에는 공신의 성 아래에 단지 수결만 있던 회맹축의 내용을 보완하여 모두 이름을 찾아 보완하여 새겼다.

▲ 이응도 목판2.
국립박물관은 한국 박물관 개관100주년을 기념하여 국민 참여 박물관으로 거듭나기 위해 기증문화 확산운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국립광주박물관은 울산 김씨, 전의 이씨, 탐진 최씨 등 남도의 종가로부터 소중한 유물을 기증받았다.

이들 종가는 공명정대한 철학과 신념으로 가풍을 이어오며, 가문의 역사를 간직한 애장품을 국가에 기증하여 그 뜻이 남 다르다. 이번 전주 이씨 양도공파종중의 기증유물은 왕족인 이천우 가문의 역사와 함께 조선 초기 왕실문화를 살필 수 있는 자료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글: 국립광주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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