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아이러니로 버무린 소설"
지은이/ 주제 사라마구/해냄/ 1만2천5백원

▲ ⓒ '해냄' 출판사 제공
‘다음 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한번 쯤 해 본 적이 있는가. 단 한사람 죽는 이 없이 치명적인 사고를 당하더라도, 불치병에 걸리더라도 죽지 않고 그 상태로 멈춰버리는 아이러니한 경우를 말이다.

운명의 여신 아트로포스가 파업을 벌여 모든 일을 거부하는 것처럼, 노화는 여전히 진행되고 불의의 사고는 벌어지지만 죽음이라는 최후의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죽음 없이는 고통을 끝낼 수 없는 환자를 둔 가족들과 죽은 자로써 먹고사는 사업가들, 영생의 삶이 종교 종말임을 불안해하는 사제들, 자기 나라에만 찾아온 ‘축복’이라며 기현상을 관망하는 정부 관리들이 벌이는 ‘죽음의 부재’라는 사건을 통해 인간의 극단을 실감케 한다.

<죽음의 중지>(주제 사라마구. 해냄. 1만2천 5백 원)은 새해 새 아침부터 시작된 ‘불사(不死)의 상황’이 일으키는 혼란과 갈등 속에서 사회구성원의 개인적 선택이 빚어내는 결과를 아이러니와 유머로 맛깔나게 버무린 작품이다.

“만약 이 세상 모두가 눈이 멀어 단 한 사람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극한의 가정을 써내려간 <눈먼 자들의 도시>부터 “세상 눈뜬 자들이여,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라는 신랄한 깨달음을 준 <눈뜬 자들의 도시>까지, 여든일곱의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세상 모든 이들에게 존재에 관한 메시지를 던지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신작 장편소설 <죽음의 중지>가 드디어 한국어로 번역되어 독자들을 찾는다.

절체절명의 운명적 사건을 화두로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이 소설에는 지은이 특유의 아이러니컬한 내레이션과 은유가 풍부히 담겨 있다. 전체 15장으로 나뉘었지만 장제목이 없으며, 마침표와 쉼표 외에는 문장부호를 아끼는 것 또한 여전하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 소설을 “철학적인 비유가 돋보이는, 깊고 감미롭고 매력적인 작품”이라 칭찬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지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상황을 뛰어넘은 결말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지은이의 전작 <눈먼 자들의 도시>, <눈뜬 자들의 도시>처럼 불특정 다수가 호응할 만한 세계적 보편성을 담보하는 이 소설은, 손에 땀을 쥐는 긴박한 상황을 뛰어넘은 후 마침내 찾아오는 삶에 대한 깨달음으로 고통과 갈등을 가로질러 국내 독자들에게도 인생의 의미를 선사할 것이다.
/자료도움: 해냄출판사

지은이 소개

주제사라마구

1922년 포르투갈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용접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라마구는 1947년 『죄악의 땅』을 발표하면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후 19년간 단 한 편의 소설도 쓰지 않고 공산당 활동에만 전념하다가, 1968년 시집 『가능한 시』를 펴낸 후에야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사라마구 문학의 전성기를 연 작품은 1982년 작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그는 이 작품으로 유럽 최고의 작가로 떠올랐으며 1998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함께 20세기 세계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사라마구는 환상적 리얼리즘 안에서도 개인과 역사,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며 우화적 비유와 신랄한 풍자, 경계 없는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 왔다. 여든일곱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왕성한 그의 창작 활동은 세계의 수많은 작가를 고무하고 독자를 매료시키며 작가정신의 살아 있는 표본으로 불리고 있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