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는 대통령선거가 한창이던 때다. 경제대통령을 표방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그의 주요 공약인 경제가 성장하고 그 성장의 떡고물이 서민들에게 좀이라도 떨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기대는 ‘오륀지’표 인수위원회로부터 ‘불안감’으로 다가왔다. 불안감이 하나하나 구체적인 현실로 바뀌면서 2008년은 몹시도 힘든 한해였다. 앞날이 잘 보이지 않는다. 새해에도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할 지 알 수 없는 한해가 될 것 같다. 올해에는 광우병 쇠고기, 대운하, 촛불, 감세 정책 등 크고 작은 정부정책들이 붉어 질 때마다 갈등들이 있었고 일치감치 예고됐던 경제위기가 다가왔다. 경제위기는 서민들의 시름과 고통을 더하고 그만큼 여성들의 얼굴에도 시름이 쌓여간다.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이 기업과 강남부자 중심이라는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저돌성’을 보면서 ‘얼마나 더 많은 사회갈등이 생기고 깊어갈 것인가?’ 하는 불안감이 존재한다.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던 여성운동은 어느 때보다도 녹록치 않은 한해를 보낸 것 같다. 올 해 초, 여성부 폐지 논란부터 시작해서 크고 작은 여러 문제들에 직면해야 했으며 운동의 변화뿐만 아니라 생존을 함께 고민해야 하는 시기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인수위원회의 행정조직 개편과정의 여성부 폐지논란이다. 여성부는 한국사회에서 뿌리 깊은 가부장적 사회문화를 남성과 여성이 서로 평등한 문화로 바꾸고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돕고자 만들어진, 세계에 유례가 없는 행정부처였다.

또 성폭력이나 성매매 등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들을 국가가 나서서 예방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제도들을 갖추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지원하는 일들을 진행해온 여성부를 폐지하려고 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에게 ‘여성’이라는 화두 자체가 없었다는 반증이다. 실용과 경제중심의 사고를 그대로 드러내주는 상징적인 사안이었다.

여성계의 강한 반발에 여성부는 겨우 폐지를 면하였으나 실무 인원 수 십 명이라는 ‘상징적인 부서’로 껍데기뿐이다. 존재감 역시 다른 부처에 비해 크지 않은 것이 지금의 현실로 남아 있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저출산, 가족변화로 인한 돌봄 노동의 공백, 여성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 빈곤의 여성화, 여성노동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 등 여성전담부처가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

‘군 가산점’ 부활을 위한 법 개정안 상정, 최저임금법 개정안 등 여성들이 처해있는 불리함을 보완하기 위한 각종 법제도들이 대폭 칼질 당할 위기에 있다. 군 가산점제는 이미 지난 99년에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부활시키고자 하는 시도들,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최저임금법 본래의 목적에 어긋나는 최저임금법 개정 시도 등 성 평등 사회로 가기위해 보완되었던 기초 법들이 전체적으로 위협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18대 총선에서 17대에 비해 2명의 여성의원들이 더 늘어났지만 여성의원들이 과연 ‘성인지적 관점’을 지니고 있으며 성인지적 관점을 기반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한 신뢰가 형성되지 않았다. 여성의원들이 여성 사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협력방안을 만들 필요성이 절실한 부분이다.

지역 여성운동 사안으로 ‘성폭력 의혹’ 시의원에 대한 대응 싸움을 빼놓을 수가 없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 중 가장 직접적이고 일반적인 성폭력은 갈수록 그 수가 늘어갈 뿐만 아니라 가해자, 피해자의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다. 그 수법 역시 대담해지고 있다. 혜진이, 예슬이 사건이 상징적으로 말해주듯 성폭력문제는 여성과 아이들에게 무차별로 발생하고 생명까지 앗아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돌아보면 매우 심각한 사회적 범죄로 성폭력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문제이며 성폭력의혹 시의원의 경우도 이런 문제의식의 연결선상에 놓여 있다. 또 다른 측면으로는 주민에 의해 선출된 지방의원의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대한 제기로서 지역의 여성단체가 똘똘 뭉쳐 대응하면서 (비리에 연루된) 지방의원이 의회와 소속 정당으로부터 제명되기도 했고 여성단체 회원들이 오히려 민사소송과 형사고소까지 두루두루 당하는 등 지역사회에 파장이 매우 큰 사안이었다.

이외에도 성폭력의혹 시의원 대응싸움이 남긴 것들은 성폭력을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 시민사회내의 복잡한 정치적 관계와 운동이 구분되지 않는 한계, 운동성에 대한 문제 등 지역 시민사회 운동의 현 주소를 총체적으로 드러냈던 사안이었다. 결과적으로 여성단체회원들은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야 할 처지다.

이 역시 여성운동의 선명성과 투쟁성이 발현되어가는 과정의 일부분이라는 평가를 해본다. 결과는 무엇을 바꾸고 제도로 남길 것인가의 문제는 아직 과제로 남아 있다.

여성과 관련한 각종 지표들이 선진국 진입의 주요 기준으로 사용되어왔으나 이런 지표와 구호들이 경제위기속에 빛이 바랜지 이미 오래다. 어려움 속에서도 새해 지역 여성운동을 바라보면 변화와 희망을 꺼낼 수 있다. 바로 공동체회복을 위한 작지만 다양한 시도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과 나눔을 통한 다양한 사업들을 펼칠 것이다.

‘대안화폐’를 통한 물품과 재능 나눔과 조그마한 정성으로 지역여성들과 만남. 성 평등 교육으로 지역여성들과 직접 대면하는 풀뿌리 운동들이 시도되고 있는 점은 앞으로 여성운동의 중요한 변화의 지점이라 하겠다. 아직은 서툰 첫걸음이지만 여성운동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의 하나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2009년 여성운동은 돌봄의 사회화, 빈곤의 여성화 저지, 일, 가정 양립, 여성폭력에 대한 예방 활동 등 이전부터 계속해왔던 사회 주제들을 여전히 안고 갈 것이다. 한편으로는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문제 해결의 주체, 자기 삶의 주체로 설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풀뿌리 활동과 더불어 여성성을 살린 공동체 운동이 훨씬 탄력 받고 활성화 되는 해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다양한 노력들을 해가고 있는 여성단체 활동가들과 회원들에게 존경을 보내며 이글을 마친다. 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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