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국제관계 회고와 전망-1]

개발도상국들로 구성된 지역협력기구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는 아세안(ASEAN)이 2007년 8월 8일로 창립 40주년을 맞이했다.

1967년 태국 방콕에서 창립선언문인 <방콕선언>을 발표하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 5개국을 회원국으로 하여 출발한 아세안은 현재 동남아지역에 위치한 10개국 5억 7,000만 인구와 연간 GDP 1조 달러의 경제권을 포괄하는 명실상부한 동남아지역 국가들의 지역 대표체로 자리 잡았다. 특히, 탈냉전 이후 동남아를 포함한 동아시아지역의 다자간 지역협력의 추진과정에서 아세안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와 역할의 신장은 괄목할 만하다.

지난 40년 동안 아세안은 초보적인 지역협력의 방향과 방안을 모색하는 단계로부터 조직운영의 제도화와 정치․안보․경제․사회․문화 분야에서의 포괄적인 지역협력을 추진하는 단계로 발전해왔다. 탈냉전 이후 급변하는 국제정세 하에서 1992년에 개최된 제4차 아세안정상회의는 아세안의 역내 위상 강화와 국제적 영향력 확대를 모색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 회의에서는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 건설을 통한 회원국간 경제통합의 추진과 인도차이나반도 국가들로의 회원국 확대 및 역내 다자간 안보대화제도의 구축 등이 아세안의 발전을 위한 3대 전략으로 제시되었다. 이후 아세안은 이러한 3대 발전전략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들을 추진해 왔다.

아세안자유무역지대(AFTA) 구상은 1992년에 제기되어 기존 회원국들에게는 2003년도부터 역내 시장 개방이 이루어졌으며, 1995년 이후 가입한 인도차이나반도 회원국들에게는 2008년도부터 시장 개방 계획이 적용될 예정이다. 현재, 기존 회원국들의 ‘공동유효특혜관세’(CEPT) 대상품목 중 99%의 상품에 부과되는 관세가 0-5%로 인하되었으며, 평균관세는 1.51%에 불과하다.

아세안은 AFTA의 출범을 기반으로 2015년까지 아세안 경제공동체․안보공동체․사회문화공동체를 3대 축으로 하는 ‘아세안공동체’를 출범시킬 계획이다. 또한, 아세안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1994),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1996), 아세안+한․중․일정상회의(아세안+3, 1997) 등의 창립을 주도하면서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특히,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작된 아세안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의 지역협력은 점진적이지만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아세안의 성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행사가 매년 연말 아세안 회원국에서 순환 개최되는 동아시아 국가 정상들의 릴레이 정상회의이다. 2007년 11월 18일부터 22일까지 싱가포르에서 아세안 10개 회원국을 포함해 한국,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뉴질랜드 등 16개국 정상들이 제13차 아세안정상회의와 출범 10주년을 맞이한 아세안+3 정상회의, 제8차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그리고 제3차 동아시아정상회의(EAS)를 잇달아 개최했다.

지난해 열린 회의의 캐치프레이즈는 “역동적인 아시아의 심장에 위치한 하나의 아세안”(One ASEAN at the Heart of Dynamic Asia)이었으며, <아세안헌장>, <아세안 경제발전 청사진>,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공고화와 통합의 촉진, 기후변화와 환경 및 에너지 등이 개별회의의 주요 의제로 논의되었다. 각 정상회의별로 주요 성과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제13차 아세안정상회의의 주요 의제는 <아세안헌장>과 <아세안 경제발전 청사진>의 채택이었다. 2005년에 개최된 제11차 아세안정상회의에서 회원국들에게 법률적 구속력을 갖는 헌장을 제정하기로 합의한 이후 2년 동안에 걸친 수차례의 논의와 협상과정을 거쳐 이번에 통과된 <아세안헌장>은 아세안의 기본목표와 원칙 및 조직운영 등에 대한 규정을 담고 있다.

특히 아세안의 독자적인 인권기구를 설치하기로 한 것이 눈에 띤다. 이 헌장은 강제규정이나 회원국들에 대한 제재방법 등을 담고 있지 않아 그 시행의 효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지만, 2015년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는 ‘아세안공동체’의 전략적 목표를 제시하고 조직운영의 법률적 근거를 확보했다는데 의의가 있다.

또한, 제11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는 지난 10년간의 역내 협력을 높이 평가하고, 향후 동아시아 공동체의 형성에 있어서 아세안+3이 주된 추진체(main vehicle)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재차 확인하였다. 이번 회의에서는 향후 아세안+3의 발전 방향을 담은 ‘제2차 동아시아 협력에 관한 공동성명’과 이의 이행을 위한 ‘아세안+3 2007-2017 사업계획’을 채택했다.

그리고 제8차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서는 그 동안 아세안+3 정상회의의 틀 안에서 개최되어 온 3국 정상회의를 향후 별도로 한국, 중국, 일본에서 순환 개최하는 것에 합의하고, 3국간 협력을 위한 행동계획의 제정과 온라인 사무국 개설, 3국간 투자협정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 촉진, 3국간 자유무역지대 창설을 위한 민간부문의 연구 진행, 금융부문의 협력 강화, 비전통적 안보분야에서의 협력 강화 등이 합의되었다. 또한 세 번째 개최된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는 기후변화, 환경, 에너지 및 지속가능한 발전 등 네 가지 중점 의제에 대해 논의하고 ‘기후변화, 에너지 및 환경에 관한 싱가포르 선언’을 채택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아시아 역내 국가들간의 지역협력은 이제 탐색과 논의의 과정을 지나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추진하는 안정적인 궤도로 진입하고 있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지역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면서 시작된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짧은 시간에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적극적인 이니셔티브를 취하면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 온 아세안의 공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도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아세안의 주도적 역할을 재차 확인한 것은 이러한 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데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추진과정에서 또 하나 언급되어야 할 것은 중국의 대아세안 접근과 중국-아세안의 협력 관계 발전이 역내 협력을 가속화하는 촉진제가 되어 왔다는 점이다. 중국과 아세안이 자유무역지대를 출범시키기 위한 <기본협정>을 체결한 이후 일본과 한국, 인도, 미국 등이 잇달아 아세안과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개시하였던 점이나, 중국이 <동남아우호협력조약>에 가입한 이후 인도, 일본, 한국, 러시아, 뉴질랜드, 호주, 파키스탄, 파푸아뉴기니, 몽고, 프랑스, 동티모르가 연이어 이 조약에 가입한 사실 등은 동아시아 지역협력에서 중국-아세안 관계가 갖는 의미를 짐작케 해준다.

1991년에 공식적인 관계를 설정한 중국과 아세안은 대화관계의 수립-선린우호와 상호신뢰관계 구축-전략적 동반자관계 구축이라는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정치, 경제, 안보 등의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관계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경제분야에서는 1991년 당시 80억 달러도 못 미치던 양자간 교역액이 2006년 말을 기준으로 1,608억 달러에 달했으며, 2007년도에는 1,900억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중국과 아세안은 작년 1월에 중국-아세안 자유무역지대(CAFTA)의 <서비스무역협정>을 체결함으로써 2010년 CAFTA의 출범에 한 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지난해 개최된 제11차 중국-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양자간 협력을 확대․심화시키기 위한 의견들이 교환되었다.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향후 “정치적 상호신뢰의 증진과 정책 협조, 경제무역관계와 협력 수준의 제고, 비전통적 안보분야에서의 실제적 협력 추진, 아세안공동체 건설 적극 지지, 사회문화교류의 확대” 등을 중심으로 아세안과의 협력을 보다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화와 지역화가 가속도를 내고 있는 추세에서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역내 협력을 위한 점진적이고 발전적인 노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아세안+3이 주된 추진체로서의 역할을 당분간 지속할 것이다. 따라서 이 틀을 주도하고 있는 아세안의 역할이 주목되며, 아세안과의 적극적인 관계 발전을 통해서 역내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하는 중국의 행보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아세안과 중국의 지역전략 및 중국-아세안 관계의 동향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개최된 제11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제2차 동아시아 협력에 관한 공동성명’에서 밝히고 있듯이 “동아시아 통합을 목적으로 역내 공동번영을 위한 개방적․포괄적․미래지향적 체제를 지향”해 나갈 동아시아 지역협력의 문제는 한국의 미래 발전전략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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