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진출 외국기업 문화유산에 지원

(이즈밀=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주말인 12일, 국내선 항공기를 통해 이스탄불을 출발해 안착한 에게해 연안 이즈밀 시내는 온통 붉은 깃발로 펄럭였다. 현지 사정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답사반은 시민운동회라도 열리는 게 아닌지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알고 보니 200만명 동원을 호언한 정치집회가 다름 아닌 이즈밀에서 개최되고 있었던 것이다.

터키가 자칫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로 회귀하지 않을까 우려한 시민들이 이슬람 세속주의의 터전을 닦은 터키 공화국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투르크의 초상을 새긴 깃발을 펄럭이며 집회장소인 이즈밀 항구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이즈밀박물관을 관람한 답사반은 1시간 가량 버스편을 이용해 달려 에페스(Ephes) 유적지를 찾았다. 우선 이곳을 지칭하는 용어가 매우 혼란스러운데, '에베소'라고도 하고, '에페수스'(Ephesus. ph는 f로 표기하기도 한다)라고도 한다.

터키 이스탄불대학 출신이자 이번 답사단 강사인 신양섭 박사는 "에베소는 기독교 신자들이 성경에 나오는 지명 표기를 따라 그대로 부르는 것이지만 정확하다 할 수 없으며 '에페수스'나 '에페스'라고 불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에페스 유적은 터키의 다른 어떤 지역보다 한국 관람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사도 바울이 2ㆍ3차 전도 여행 때 방문하거나 그 과정에서 전도활동을 편 곳이라 해서 기독교 신자들이 자주 찾곤 하는 성소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찾는지, 유적지 입구에는 터키한인회 이름으로 건립한 한글 안내판이 섰는가 하면, 한국어판 에페스 유적 안내 도록도 곳곳에서 판매 중이었다.

도시 역사가 기원전 3천년경 무렵까지 올라간다는 이 에페소 유적은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정확한 면적은 알 수 없으나 계곡을 따라 길게 형성된 이 고대도시는 어림잡아 수십만 평은 될 듯했다. 현재 장엄하게 복원된 건축물은 대부분 로마제국의 유산이다. 이곳을 대표하는 셀수스도서관이나 원형극장도 예외는 아니다.

   
 
이곳에서 조금은 이채롭게 다가온 유적이 로마시대 화장실이었다. 대리석 돌을 이용해 축조한 화장실을 보니 로마시대만 해도 수세식이 없었는지, 재료가 돌이라는 점만을 제외하고는 우리의 재래식 화장실과 크게 다른 점은 없었다. 나아가 여러 명이 한꺼번에 생리를 해결할 수 있도록 1열로 만들어 놓은 공중화장실을 보니, 완전히 '열린 공간'이었다. 이런 '개가식' 화장실은 지금도 중국의 전통 도시 같은 데서 발견할 수 있다.

토지박물관 답사반이 찾았을 때, 이 에페소 유적지에서 특히 관심을 끈 곳은 셀수스도서관에서 인접한 곳에 자리잡은 발굴현장이었다. 참새는 방앗간을 지나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발굴현장이라면 거의 동물적 감각이라고 할 만큼 냄새를 잘 맡는 사람들이 있다. 고고학도가 그들이다.

에페소 유적지 한 켠에는 거대한 임시건물을 설치한 구역이 있다. 외부와는 폐쇄돼 있다. 모양새를 보니 볼짝없는 발굴현장이다. 여타 답사반원들이 외부에 노출된 다른 유적들을 관람하느라 정신이 팔린 사이에, 발굴 냄새를 맡은 몇몇 사람이 이 임시건물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서기 시작했다.

조유전 관장을 필두로 심광주 팀장, 최형균 대리, 임보경 학예연구사 등이 그들이다. 모두가 토지박물관에서 일하는 고고학도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데 이들이 그냥 발굴장으로 들어설 수는 없었다. 현지인이 막아서면서 미화 9달러를 내라고 요구한다. 이 돈이 아까워 물러날 사람들은 아니기에 1인당 9달러씩을 내고 마침내 현장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별천지가 펼쳐졌다. 지하에서 2천년을 잠자다가 막 깨어나기 시작한 고대도시 에페스가 출현한 것이다.

안내판에 의하면 이 일대는 고대로마시대 이곳 귀족들이 거주하던 일상공간이었다. 각 건축물은 원형 대리석 기둥을 중심으로 벽돌로 벽체를 만들었다. 바닥은 요즘의 타일(전돌)을 깐 것과 다름이 없다. 마름모꼴 무늬가 유행한 듯 이런 모양의 전돌들을 촘촘히 깔아 놓았다.

바닥 곳곳에는 모자이크를 넣었다. 벽체에는 벽체대로 각종 문양을 프레스코화로 장식했다. 개중 어떤 곳에서는 선명한 물고기 문양도 발견된다. 기독교에서는 물고기가 흔히 예수를 상징한다 하는데, 아마도 그와 무관치는 않을 것이다. 그 외에도 각종 신상이나 일상생활을 표현한 벽화가 수두룩하다.

가만히 보면 현장은 발굴작업 중은 아니었다. 발굴은 이미 끝난 듯, 복원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프레스코화를 원래 있던 벽체에 붙여 나가는 과정도 목격됐다. 울퉁불퉁할 수 밖에 없는 벽체에 발굴에서 수습한 프레스코화를 붙이기 위해 이곳에서는 일단 스티로폼 재료를 벽체에 대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이같은 일련의 복원작업이 끝나고 나면 일반공개를 시작할 것이다.

   
 
대충 안내판을 훑어보니, 발굴작업은 오스트리아 어떤 재단이 예산 지원을 한 듯했다. 그 외에도 이 현장에는 유적 복원을 지원하고 있는 외국기업들의 로고가 가득 걸려 있었다. 오스트리아은행을 필두로, 독일 지멘스 등의 이름이 발견된다. 그 어디를 봐도 한국기업은 찾을 길이 없다.

이 에페소 유적지 전체를 통틀어 한국기업은 터키한인회 이름으로 건립한 한글안내판에 붙은 '삼성물산' 외에는 없었다. 조유전 관장이 현지 사정에 밝은 신 박사에게 물었다. "어떻게 일본기업이 없죠?"

신 박사가 말했다. "일본기업들은 문화사업도 돈 되는 곳에만 투자한다는 소문이 이곳에서도 파다합니다. 일본이야 그렇다 치고, 우리 기업들도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나 몹시도 우려스럽습니다.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터키와 한국은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고, 그에 따라 경제교류 또한 매우 활발해지고 있는데, 우리 기업도 이젠 이런 문화유산에도 눈길을 돌려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신 박사의 말은 일리가 있는 듯했다. 터키 도로 어디에서도 현대자동차를 쉽사리 만날 수 있었으며 그 외 다른 기업의 전자제품도 심심찮게 발견됐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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