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탈랴ㆍ이스탄불=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이스탄불에 기착해 지중해와 에게해 연안을 따라 주요 유적들을 탐방한 답사반은 아나톨리아 반도 중앙부에 위치한 수도 앙카라를 거쳐 항공편으로 다시금 이스탄불로 돌아와서는 귀국을 준비했다.

귀국에 앞서 들른 곳 중 성소피아 성당과 인접한 '예레바탄 지하저수지'(Yerebatan Sarnici)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그곳으로 통하는 입구 간판에는 'Yerebatan Sarnici'라는 터키 현지어 안내 간판과 '바실리카 시스턴 532 A.D.'(The Basicilica Cistern 532 A.D.')란 영문 안내문이 아래위로 걸려있다. 같은 곳을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예레바탄(Yerebatan)과 바실리카로 다른 점이 수상하다.

   
 
이 지하저수지가 처음 건립된 532년이면 지금의 이스탄불은 비잔틴제국의 수도로서 콘스탄티노플이라 불리고 있었다. 1천500년이나 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지금은 완벽한 상태로 복원된 물창고는 거대한 지하벙크를 연상케 한다.

답사반 '강사'로 초빙된 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신양섭(50) 박사는 터키어로 '예레 바탄'(yere batan)이란 "땅으로 꺼진"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비잔틴 시대에 인구 50만에 도달한 콘스탄티노플은 비상시의 식수난 해결을 위해 수십㎞ 떨어진 벨그라드 숲에서 수로를 통해 물을 끌어와 저장했으니 예레바탄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예레바탄 저장고는 길이 140m에 폭 70m이며, 깊이는 8m라 한다. 지붕(지표면)을 떠받치기 위해 336개에 이르는 대리석 기둥을 촘촘히 세웠다. 바닥 물에 손을 담궜더니 얼음물 같다.

관람통로 정도만을 따라 희미한 조명등을 설치한 내부는 찬바람까지 돌아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고인 물에서는 잉어들까지 꿈틀댄다. 1994년, 이곳을 정비하면서 물고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런 곳에 소규모 가게 1곳이 영업 중이다.

관람로가 막다른 곳에선 연신 사진기 플래시가 터진다. 이곳 두 석주의 주초를 차지한 인물 두상(頭像)이 누리는 유명세를 말해주는 현상이다. 이 조각상엔 푸른 물이끼가 잔뜩 묻어있다.

이들 두상(頭像) 중 하나는 머리를 거꾸로 박은 데 비해, 다른 하나는 가로로 누운 상태다. 두상 주인공은 이곳에 오기 전에 들른 유적지에서도 자주 마주친 메두사였다. 지상에서 만난 메두사를 지하 물창고에서 또 만난 셈이다.

   
 
어찌하여 이곳 물창고 기둥 336개 중 유독 2군데만 메두사가 있으며, 더욱이 그 중 하나는 머리를 거꾸로 한 데 비해 다른 하나는 가로 누웠을까? 모종의 주술성이 있지 않을까?
이에 대한 신 박사의 답변은 싱겁기만 하다.

"별 뜻 없어요. 물창고를 건설하면서 다른 건축물 부재를 뜯어다가 재활용했을 뿐이지요."
사실 메두사상은 로마시대 유적지면 으레 만날 수 있다. 거대한 고대도시 유적인 에페소에서도 서기 138년에 건립되었다는 하드리안 신전 정문 위가 메두사 차지가 되어 있다.

하지만 메두사가 가장 널리 사용된 곳은 석관(石棺)이라 할 수 있다.
아나톨리아 반도 중남부 지중해(에게해)와 인접한 도시 안탈랴(Antalya). 58명이나 되는 한국 답사반이 이곳 안탈랴박물관으로 몰려들자, 이곳 위날 데미레르 부관장이 박물관 구석구석을 직접 안내하며 유물들을 설명했다. 대머리에 훤칠한 인상은 율 브린너를 연상케 했다.

그를 따라 전시실 중간쯤에 이르자 죽음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어른 키를 훌쩍 뛰어넘는 로마제국 시대 거대한 석관들이 온통 들어차 있다. 그 한 구석에는 묘지명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석관은 대체로 신전을 본떴다. 그래서 지붕도, 기둥도 있다. 네 벽체 겉에는 각종 장식을 화려하게 넣었다. 신전 지붕에서 모티브를 딴 지붕에는 사람 모습을 조각해 넣기도 하는데, 석관 주인공이다.

이런 석관 장식에서 메두사가 자주 발견되는 것이다.  왜 로마인들은 이처럼 메두사를 자주 불러냈을까? 신화에 의하면 애초에는 아름다운 소녀였던 메두사는 아테나 신전에서 해신인 포세이돈과 정을 통했다 해서 아테나의 저주에 괴물로 변했다. 인간에게 갖은 해악을 끼치던 메두사는 마침내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려 생을 마감한다.

그런 메두사가 막상 죽음의 세계나 신전과 같은 곳에서는 이들 지역으로 침범하려는 악귀를 막아서는 일종의 선신(善神)으로 부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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