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봉 등 '5월 광주정신 아시아문화중심도시에 담을 것' 제안

5.18 27주년을 맞아 5.18정신의 계승과 현재 광주에서 논란이 한창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지향점을 고민하는 자리가 최근 잇따라 열렸다.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진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국책사업을 앞두고 각계각층으로 분열된 현재의 광주상황을 되짚어보며, 5월 광주정신의 뜻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지난 12일 광주 MBC 공개홀에서 열린 5.18특별좌담에는 진중권(시사문화평론가), 황지우(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도정일(문화개혁시민연대 공동대표), 김상봉(전남대 철학과 교수), 정기용(건축가)씨가 참석, ‘5.18에서 문화도시까지’라는 주제 아래 과거와 현재, 미래의 광주를 이야기했다.

이어 17일에 열린 5.18민중항쟁 27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도 류재한 교수(전남대)가 ‘아시아문화중심도서조성과 5.18’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5월 정신을 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서 이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공통적으로 5.18 광주정신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아시아적 가치로 승화시킬 수 있는가를 피력했으며,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랜드마크와 전시공연장 등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명확히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 가운데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쟁점사항을 정리해 본다.

△ 5.18과 광주정신

김상봉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국가 권력은 상당히 폭력적으로 나타났다. 조선후기부터 국가라는 것은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합법적인 수탈기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에 저항하는 민중항쟁이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성격으로 굳어졌다. 특히 비옥했던 호남은 다른 지역보다 더욱 수탈의 대상이 됐기 때문에 폭력적인 국가에 저항하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과거의 민중은 늘 패배하는 것으로 끝났지만 5.18을 기점으로 민중적인 주체성이 승리했으며, 그 결실이 6월 항쟁과 민주화로 나타났다. 100년~200년에 달하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5월 항쟁은 민중이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핀 하나의 꽃이었다”고 덧붙였다.

황지우 총장은 “작년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캄보디아 등 아시아의 젊은 작가들을 만났는데 영어로 번역된 내 작품을 정말 절감하면서 받아들이는 그들의 고백을 들었다. 내 문학에 잔영으로 남아있는 광주경험이 아시아적 보편성을 갖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근현대사에서 광주항쟁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반식민, 반독재 투쟁인데 이런 것이 아시아적 보편적 가치로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황 총장은 “광주 5.18정신, 특히 마지막 10일간 도청에서 보여준 절대공동체의 아름다운 이상이라는 것은 문화중심도시에서 문화로 승화되어야 하는 이념의 연장선상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기용 건축가는 “5.18의 가장 핵심은 자율적인 저항정신이다. 그러나 현재 기념사업은 자율성이 타율성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항과 자율, 평화의 정신을 5.18 기념사업에서 담아내야 한다. 주체는 설정되어 있으나 담아내는 작업이 지지부진하다”고 지적했다.

△ 공연장과 랜드마크 논란

도정일 대표는 “문화도시는 이에 걸맞은 기본적인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국 자치단체들은 앞 다퉈 수천억을 퍼부어 거대한 문예회관을 만들어 놓지만 1년에 2~3번 사용할까 말까 한 실정이다”라고 밝혔다.

도 대표는 “거대하고 화려한 공연시설을 추구하는 것은 그동안 한국사회가 지향해온 물질적인 면을 우리사회가 벗어나지 못함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모습”이라며 “광주의 경우 광주시민들의 인프라인 동시에 전국과 아시아의 문화적 자원이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황지우 총장은 “세계의 랜드마크들은 수직상승의 남근숭배적인 전근대적인 발상에서 비롯됐다. 이에 비해 180도 발상 전환한 우규승 설계작은 탁월하다. 또 5.18 역사유물을 훼손하지 않은 채 다른 나라의 랜드마크와 현전히 차별화되는 랜드마크라고 생각한다”면서 “전문가, 예술가들에게 일임하는 광주적인 관용과 믿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기용 건축가는 “랜드마크를 희구하는 시민의 욕망은 납득한다. 그러나 이것은 시민투표로 할 일이 아니라 전문가에게 일임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이라고 확신한다”며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며 심사 기준에 대해 하루 종일 논의했다. 전문가들의 고뇌의 결과에 따라 선정한 작품을 수용하는 것이 결코 반 랜드마크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전시대의 수많은 랜드마크와 비교해 광주만의 정체성을 살리고 차별화하는 한편, 오래 지속되어도 싫증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전당 설계 당선작을 보면 지상이 전부 녹색 생명으로 가꿔지는데 녹색의 생명위해 시설을 지하화한 것은 5.18정신에도 맞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상봉 교수는 반면 엘리트주의를 경계하며 “광주시민의 지향과 삶의 이상을 잘 형상화하는 것이 예술가와 기획자의 책무이다. 동시에 광주시민들은 랜드마크 논쟁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자기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김 교수는 자신의 대학시절을 예로 들며 “대학가서 친구들 집에 놀러가니까 전주, 광주에서 올라온 친구는 반드시 벽에 그림을 붙여놓고 있더라. 대단한 그림이 아니라 달력에서 그림을 오려 단정히 벽에 붙여놓은 것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못하던 시절이었다”면서 “지난한 삶을 살아도 나의 공간을 꾸미고 가꾸는 것은 경제를 넘어선 의지의 표현이다. 주변상권의 이익을 두고 광주를 논하는 일은 굉장히 불행한 일”이라고 단정했다.

정기용 건축가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라는 그릇을 놓고 봤을 때 랜드마크 논쟁은 하찮은 논쟁에 불과하다. 공간의 내용과 콘텐츠를 보면 어떤 세상에서도 볼 수 없는 창조적 삶을 만들어내는 인프라가 있다. 광주시민도 예측하지 못한 문화창조의 발신지가 될 수 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기 때문에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핵심적인 것을 벗어나는 가짜 논쟁에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정 건축가는 “아시아문화전당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주위 상권만 중요한 것도 아니다. 소외지역, 시외지역, 광주천 주변 등 미래에 대한 도시구상은 서랍에 집어넣고 랜드마크가 있냐 없냐만 논의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 광주시민에게 고함

정지용 건축가는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기도 전에 논란이 불거져 지지부진해진 조성사업에 대해 “자꾸 솥뚜꼉 열지 말고 밥이 익도록 내버려 둬라. 문화중심도시사업을 위해 광주가 협치의 전형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피력했다.

황지우 총장은 “광주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는 정치적 선물로 시작된 것이다. 특별법이 통과됐지만 사업에 대한 지속적 지원이 가능하려면 관료주의를 경계하는 시민적 의지가 대단히 중요하다. 광주시민이 계속 관심갖고 여론을 형성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김상봉 교수는 “문화중심도시를 만든다면 지금 이 시대 5.18정신을 새롭게 이어가기 위한 도약대, 디딤돌이 되어야 한다”면서 “외부에서는 과연 지금의 광주가 5.18의 도시가 맞나 의아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처음에서 끝까지 5.18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진행되는 사업이라는 인식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도정일 대표는 “광주에서는 문화건, 예술이건 만들어낼 수 있는 창조의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의 삶 속으로 예술을 끌고 가는 쌍방향 소통으로 창조와 문화적 향수 누리는 광주가 되어야 하고, 계획의 중심에 문화적 가치가 제 1의 원칙이 됐으면 좋겠다”고 충고했다.

진중권 평론가는 “광주시민이 독재정권 끌어내리고 전 국민을 민주주체로 만든 것처럼 미적 감성을 끌어올려 미적 주체, 문화적 주체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역할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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