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시는 해발 794m의 모악산이 있는 동부산지와 서해연안의 100m 내외의 산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평야부에 해당되는데, 이 평야는 남한지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이 보일만큼 넓은 곳이어서 해마다 지평선 축제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김제시 흥사동 승가산(僧伽山)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흥복사(興福寺)는 650년(백제 의자왕 10) 고구려에서 온 보덕(普德) 스님이 창건했는데 당시의 절 이름은 승가사(僧伽寺)였다고 한다. 이 무렵 이 지역에는 도교(道敎)가 성행하였다고 하는데, 아마도 당시 고구려가 중국으로부터 도교를 도입해 한창 숭상하던 때였으므로 그 영향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은 곧이어 불교 도량으로서의 기반을 닦아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법등을 밝혔다고 전한다. 창건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으며, 다만 1597년(선조 30)의 정유재란으로 절은 폐허가 되었는데, 1625년(인조 3) 김제에 살던 흥복(興福)이라는 사람이 중건하면서 다시 법등을 잇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대웅전에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었는데, 조선후기에 조성된 목조불로서 중앙에는 석가모니불을 안치하고 좌우에 석가상보다 조금 작은 규모의 약사여래불상과 아미타불상이 있었다. 중앙의 석가모니 불상에서는 1676년에 조성하였다는 발원문이 발견되어, 조선후기 불상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기준작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5년 가을 이곳에 화재가 발생하여 대웅전과 그 안에 있던 불상 등이 불에 타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였다. 화재 직후 안타까운 전언에 따라 방문하여, 손상된 문화재 보존의 관점에서 훼손 상태를 관찰하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불상의 전면부는 5~15㎜, 후면부는 3~10㎜ 두께의 탄화층이 확인되나, 내부는 온전한 목질을 유지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외양은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조사결과는 문화재로서의 복원이 가능하다는 진단이었다.

이후 가장 먼저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주제는 지정문화재로서의 존치여부였다. 구체적으로는 역사적 가치의 중요성을 기준으로 국가나 지방정부의 직접관리 대상이 되는 지정문화재의 격을 계속 유지할 것이냐의 여부였다. 서로 맞서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 격을 해지하는 쪽으로 논의에 무게가 실려 가고 있었다.

해지를 주장하는 측의 변은 문화재로서의 격을 이미 잃었다는 것이었고, 또한 복원이 불가할 뿐만 아니라 설령 복원된다 하여도, 원형의 훼손이 심각하다는 소견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존치를 주장하는 측의 주장은 복원이 가능하다는 것과, 역사를 복원하거나 재구성하는 데에 일차적인 가치가 있는 유형의 문화재는 형식미가 우선한다는 논지로 맞섰다.

이 글을 쓰는 이는 존치를 주장 하는 측에, 구체적인 기술적 가능성과 문화재 복원의 경험과 사례를 제공하여 이러한 논의를 복원 후 까지 유보하는 데에 힘을 보탰음은 물론이다.

   

문화재 수리는 문화재를 후세에 전달할 것을 목적으로 문화재가 지니고 있는 성격을 고려하여, 원래의 양식을 변형시키지 않으며, 또한 원래의 사용재료를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그대로 둘 경우 붕괴, 소멸되어 새로운 재료의 사용이 불가피 한 경우 역사적인 사실, 흔적들의 보존을 고려하여 최소한으로 적용하는 보칙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수리는 사전의 상태와 사용한 재료에 대해 상세한 기록을 작성하여야 하고, 그 절차와 방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본격적인 복원에 앞서 정밀조사와 기록을 남기는 과정에서, 배면보다는 정면이, 측면보다는 중앙이, 하체보다는 상체가 상대적으로 더 탄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화재시 불길이 중앙의 천정부에서 아래로 쏟아져 내렸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예로부터 부처님의 몸에 금빛이 난다고 하는 경전적 근거를 따라 불상에 금박을 입혀 장엄해왔으며, 개금은 목재를 미생물이나 곤충으로부터 막는 역할도 한다. 또한 선사시대로 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 나무의 겉을 그을리는 것은 충, 균으로부터 보호하는 주요한 방법이었다.

오래된 절집에서, 고려시대의 목선에서도 발견되었고, 최근에는 ‘숯자기’ 가 상품화되기도 하였으니, 이제 흥복사의 목불상이 문화재로서의 격을 잃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로 지어질 법당에 다시 자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부처님을 되살리고 싶은 스님과 불자들의 염원을 담아 시작된 문화재로서의 복원은, 이제 새 옷을 입히는 방법에 대해 다시 중지를 모으는 수순으로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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