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독은 어떻게 사랑 이야기를 가능하게 하는가

조지 밀러의 신작이 올해 초 국내 개봉했다.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이후 7년 만이다.

그의 작품을 기다려온 이들에게는 여전히 뜨거운 소식이다.

제목은 <3000년의 기다림>. <설국열차>로 국내 영화 팬에게 익숙한 틸다 스윈튼과 <토르>에서 수문장 헤일담 역할로 깊은 인상을 남긴 이드리스 엘바가 주연을 맡았다.
 

이야기의 매혹

3000년의 기다림 스틸이미지 ⓒ네이버영화
3000년의 기다림 스틸이미지 ⓒ네이버영화

튀르키예로 강연을 떠난 서사학자 알리테아(틸다 스윈튼). 알리테아는 서사학자답게 언제든 이야기에 매혹당할 채비가 되어 있다.

게다가 알리테아의 삶은 이미 환상적인 이야기와 맞물려 있다. 강연 현장에 나타난 환상의 공격으로 기절하지만 깨어난 후에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다.

알리테아는 담담히 환상을 보는 상태를 받아들인다. 어릴 적에는 혼자만 볼 수 있는 상상의 친구를 창조하기도 했었다. 

알리테아는 현실의 구체적 감각보다는 이야기의 생경한 환상이 생의 지분을 더 많이 차지하게 내버려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일까.

튀르키예의 한 상점에서 다른 이들 눈에 띄지 않는 오래된 병에  매력을 느끼고, 호텔 방에서 그 병 속에 갇힌 이슬람의 정령 ‘진’(이드리스 엘바)을 불러내는 사건까지, 그것은 알리테아에게 우연이라기보다는 운명처럼 여겨진다. 
 

정령의 등장

영화의 전개는 병 속에 갇힌 정령 진과 알리테아가 만난 시점에서 돌변한다.

이 영화의 장르가 ‘로맨스’라는 점에 다시금 의문이 드는 지점이기도 하다. 도대체 누가 누구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란 말인가.

스크린 속에는 알리테아와 진, 이렇게 둘 뿐인데도 로맨스의 주인공을 쉽게 예측할 수가 없다.

단서가 없기 때문이다.

두 주인공의 애정을 촉발시킬만한 클리셰나 장치는 깔끔하게 배제되어 있다.

특히 진이 등장할 때, 영화는 과도하게 의도적으로 관객의 흥미를 진의 외형으로 돌려놓는다.

스크린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진의 전체상을 관객의 눈으로는 조감할 수 없다.

3000년의 기다림 스틸이미지 ⓒ네이버영화
3000년의 기다림 스틸이미지 ⓒ네이버영화

현실 세계에 속하지 않는 환상의 존재는 보통 사람의 시야를 벗어난 사이즈로 등장한다.

호텔 방을 가득 채우는 정령의 실물 크기를 극복하지 않고서는, 알리테아도 관객도 쉽사리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불편하지만 기이한 끌림이 스크린을 채운다.

환상과 현실 사이 조율되지 못한 정령의 몸은 알리테아에게 신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 전, 인간의 크기로 조정된다.

알리테아가 고개를 들어 올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줄어든 정령은 마치 인간처럼 보이고, 그런 후에야 정령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처럼 보이게 된다.


소원 없음의 상태

자유를 얻기 위해 진은 자신이 갇혀 있던 병을 열어준 사람의 세 가지 소원을 들어줘야 한다.

그 과업은 3000년 동안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마음이 급한 진은 알리테아에게 어서 소원을 빌라고 다그친다.

하지만 알리테아에게는 소원이 없다. 그 말은 자신의 삶에 만족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 채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삶에 대한 ‘만족’과 ‘무지’가 똑같이 ‘소원 없음’의 상태를 불러온다. 

처음에 알리테아는 자신의 소원 없음이 ‘만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진의 숙제는 알리테아를 소원 없음 상태에서 소원 있음 상태로 전환하는 것이고, 이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은 3000년 동안 자신이 겪은 일을 풀어놓는다.

서사학자 알리테아는 그 이야기에 흥미를 보이며 경청한다.
 

사랑과 고독

3000년의 기다림 스틸 이미지 ⓒ네이버영화
3000년의 기다림 스틸 이미지 ⓒ네이버영화

조지 밀러가 만든 영화 속 진의 특징이라면, 정령이지만 인간처럼 사랑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병에 갇히게 된 까닭도 사랑 때문이고, 번번히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데 실패하게 된 까닭도 사랑 때문이다.

진은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보다는 사랑의 정령에 다름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사랑은 이루어진 적이 없다. 

그것은 알리테아도 마찬가지다. 3000년이나 이어져 온 진의 이야기에 빠져있던 알리테아는 자신의 결핍을 알아차린다.

삶이 너무 고독하다는 것을. 결국 알리테아는 진에게 사랑해달라는 소원을 빈다. 그 말은 자신의 고독을 타인의 고독으로 채우기를 희망하는 일처럼 들린다.

알리테아는 진에게 튀르키예에서 런던으로 함께 떠나자고 한다.

환상을 떼어놓고 다녀야 하는 자기 삶의 근거지인 도시로 떠날 때, 환상인 그와 함께 가기를 바란다. 진은 알리테아와 함께 떠난다.

이 영화는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정령이 나오지만 소원 판타지로 흐르지 않는다.

알리테아의 첫번째 소원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20분 전 말해진다.

앞으로 두 가지 소원을 더 말하기에는 남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3000년의 기다림 스틸 이미지 ⓒ네이버영화
3000년의 기다림 스틸 이미지 ⓒ네이버 영화

만약 소원 판타지를 완수해야 하는 영화였다면 이러한 러닝 타임은 잘못된 계산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가 타인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자신의 고독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이 또 다시 가능하게 되는 과정을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관객이 어떤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경로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탁월한 영상미와 깔끔한 구성이 돋보이는 조지 밀러의 <3000년의 기다림>이 그런 영화 중 하나가 되리라는 가능성을 열어두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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