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농부가 밭을 갈면서 화를 쏟아낸다.

“세상을 잘 만나야지. 백날 이렇게 고생을 해봤자 뭔 소용이 있는가 싶네. 농부가 땅으로 먹고 살아야 한디, 일궈봤자 고생만 하고 돈도 안되고.”

지켜보는 아낙네가 수긍하면서도 대꾸를 한다.

“아니, 그래도 이렇게 나라가 발전되니까 편리하고 좋은 농기구나 기계가 만들어져서 농부들이 고생을 덜하지. 아이고, 우리네 할아버지들 일제강점기 때를 생각해보세요. 다들 몸으로 땜빵하느라 얼마나 고생하면서 살았는지.” “그건 그려. 우리 아버지도 그때 아무것도 없이 몸으로만 농사짓느라 성한 데가 없었제”

그저 지나가는 말이 아닌 듯 느껴진다.

사람이 어느 시대, 어느 환경, 어느 배경에서 일하는가에 따라 자신이 쌓아가는 결과물과 후손에게 남기는 것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쇼스타코비치가 협상한 결과물

쇼스타코비치 음악으로 러시아 현대사를 반추하다. ⓒ광주아트가이드
쇼스타코비치 음악으로 러시아 현대사를 반추하다. ⓒ광주아트가이드

쇼스타코비치(1906~1975)는 당시 소련의 현대 음악가(작곡가)를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물론 이 업적은 20세기 서양음악사를 이끈 대표적인 음악가라는 평가로 이어진다.

20세기의 서양음악사에서는 조성(調聲)의 완전한 해체가 유행처럼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알반 베르크, 힌데미트 등의 음악가들에 의해 수많은 무조음악(無調音樂)의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쇼스타코비치는 공산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활동을 하는 음악가였기에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자유스럽고 환상적인 작풍을 쏟아내며 현대시대의 유행에 맞게 작품을 발표하여 청중에게 인기를 얻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실제로 1934년 레닌그라드 말리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되었던 그의 2번째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살인을 부르는 치정의 사랑, 그로 인한 에로틱한 장면, 공산주의가 반대하는 부르주아적 발상이 난무하다는 이유로 당시 소련의 총리였던 스탈린에 의해 거세게 미움을 받으며 공연 금지가 된다.

공개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후 쇼스타코비치의 삶은 무서움과 절망으로 변했다.

쇼스타코비치의 인근 사람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자신도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맞게 될지 모른다는 무서움에 하루하루가 절망이었다.

막다른 곳에 이르면 두 가지 중에 하나이다. ‘포기하고 항복할 것인지, 그래도 끝까지 나아갈 것인지’.

당시 쇼스타코비치가 내린 결론은 ‘사회와 타협하며 나아간 길’이었다.

막다른 곳에서 내린 두 가지의 방법을 하나로 포섭한 길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듯하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탄생한 작품이 바로 ‘교향곡 5번’이다.

비판을 받으며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의지로 4개월이 채 안 되는 시간에 완성한 ‘교향곡 5번’은 베토벤의 ‘운명/영웅/합창 교향곡’의 웅장한 배경을 고스란히 인용한다.

고난의 역경을 승리로 이끄는 혁명의 웅장함과 장엄함을 담아 표현하여 고전 클래식 음악의 전통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잘 버무려서 만들어낸 작품이다.

성공했다. 그 어느 누구도 반기를 들 수 없는 베토벤적인 절대적인 구성의 작품이었기에 모든 사람이 쇼스타코비치를 동정했고 응원했으며 환영했다.

가장 혁명적이며 러시아적인 지휘자로 알려져 있던 므라빈스키(1903~1988)가 지휘를 맡으며 초연이 이루어졌던 1937년 11월 당시, 연주가 끝나도 박수갈채가 무려 40분에 이르렀다는 보고는 쇼스타코비치의 목숨이 고비를 넘겼다는 소식과 같은 희망의 울림이었다.

더 이상 압박을 받지 않았고 죽음에서의 두려움도 없어진 시간을 살게 된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5번’에 붙인 부제는 “당국의 정당한 비판에 대한 소비에트 예술가의 답변”이다.

쇼스타코비치의 답변은 조국을 위하며 당시 시대를 대변하는 정당한 답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죽음의 위기에서 조국과 시대의 배경을 인지하고 따라야만 했던, 어찌 보면 슬픈 대답같이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감성일까.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유명 지휘자에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은 어떤 작품인가”라는 질문에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은 그들이 답변하는 작품에 반드시 들어가는 위대한 교향곡으로 평가된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2호(2023년 5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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