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의 묘법에 미적 즐거움에는 동시대적 감각이 필요치 않다"
"명예와 ‘현대미술가’라는 명찰은 돈으로 살 수 있어서는 안 된다"
"박서보 예술상 제정은 박서보가 현대미술가라는 혼란을 초래할 것"

한국미술계는 현대미술이 무엇인지 정의내리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최대 현대미술 비엔날레’라고 소개된 광주비엔날레는 모더니스트의 이름을 건 상을 제정하고, 한국 현대미술계를 상징하는국가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은 현대미술에 대한 미술사적 용어 정립을 생략한 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모던아트(Modern Art)와 현대미술(Contemporary Art)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예술을 위한 예술인 모더니즘 미술과 사회를 위한 예술인 현대미술은 서로 상반되는 양식이다.

지난 12일 김병택 작가가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박서보 예술상 폐지 시민모임 제공
지난 12일 김병택 작가가 1인 시위를 펼치고 있다. ⓒ박서보 예술상 폐지 시민모임 제공

모더니즘은 역사화된 양식이지만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는 것처럼, 현대미술이라고 해서 동시대의모든 미술가들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으로 올해 광주비엔날레 네덜란드 파빌리온에서 전시했던<CICC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라는 작업과 박서보의 묘법을 예로 들어 보자.

<CICC>는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국가와 기업이 저지른 일들이 모든 살아있는 세계를 소유물이나 상품으로 변화시켰고, 이것이 곧 기후위기, 멸종, 생명 공동체 절멸 등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이다.

이와 같은 개념주의 작품은 오늘날 우리 삶에 밀접하고도 시급한 자본주의, 식민주의, 민주주의, 생태환경 등 다양한 동시대 사회, 정치 문제를 다룬다.

반면 모던아트는 형식을 중시하고 시대를 초월한다.

박서보의 묘법에 미적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는 그 어떤 동시대적 감각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박서보와 같은 모던 아티스트는 현대미술관과 현대미술을 다루는 비엔날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당연하게 전시되어서도 안 되지만 놀랍게도 올해 '박서보 예술상'이 무려 광주비엔날레에서 제정되었다.

20년에 걸처 100만 달러(약 10억 3천)이라는 금액을 기부하고 매년 상을 받는 작가들에게 1억이 넘는액수(10만달러)를 주는 상이다.

4.19 정신에 침묵하고, 5.16 군부정권에 순응하고, 유신정권과 민주화운동을 외면하며 개인의 출세만을 위해 살아온 자가 ‘저항’의 힘을 내세우는 광주비엔날레를 돈으로 사 버린 것이다.

광주비엔날레가 말하는 ‘저항’은 권력 앞에 비겁하게 침묵하며 화실 안에 숨어 묵묵히 선을 긋고 고상함을 지키는 일을 말하는가?

ⓒ광주인
ⓒ광주인

그렇다면 비엔날레는 더 이상 현대미술 축제가 아니다.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는 공간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상을 제정한다는 것은 모더니스트들이 돈과 권위를 가지고 박서보를 현대미술에 편입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모던 아트를 ‘현대미술’로, 모더니스트를 ‘현대미술가’로 지칭하는 것은 카셀 도큐멘타나 광주비엔날레에서 활동해 온 진정한 현대미술가를 능멸하는 것이고, 미술학도들과 시민들을 오도하며 교육적으로 매우 위험하다.

또 비엔날레에서 박서보 예술상 제정은 박서보가 현대미술가라는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광주비엔날레 박서보 예술상'은 즉각 폐기되어야 한다.

한국미술계 내의 견고하고 거대한 모더니즘 권력이 현대미술에 대한 힘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진짜 현대미술가들이 설 자리를 빼앗고 있다.

모더니스트들이 아무리 권위를 가지고 사람들을 오도하고 억압하려 해도 나와 같은 현대미술가들은 그들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존의 관행과 제도의 문제를 끊임없이 지적할 것이다.

박소현 작가.
박소현 작가.

현대미술관과 비엔날레가 그들의 놀이터가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현대미술의 공간과 모더니즘의 공간은 철저하게 분리되어야 하며 모더니스트들을 현대미술가로 둔갑시켜 현대미술 전시에 난입시키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명예와 ‘현대미술가’라는 명찰은 돈으로 살 수 있어서는 안 된다.

나는 ‘무엇이든지 미술이 될 수 있’는 다원성의 이름으로 허용되는 나르시스적 자유 대신 어떠한 부당한 권위에도 맞설 수 있는 비판적 자유를 택하겠다.

더 나은 사회와 더 자유로운 예술은 강자의 그림자 속에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너무 늦지 않게 각자 제자리를 찾아가야 할 때이다.

나와, 나의 동료들과, 미래 세대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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