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전문]

주권 포기에 남는 것은 머저리 신세밖에 없다.
-얼치기 ‘제3자 변제’ 당장 걷어 치워라!-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하 재단)이 최근 2018년 대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받은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 2명에게 배상금 명목의 ‘판결금’ 지급업무를 시작했다.

정부가 지난 달 강제동원 해법이라고 밝힌 소위 ‘제3자 변제’ 방식으로, 2018년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한 일본 피고 기업 대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국내 기업들로부터 뜯어낸 기부금을 재원으로, 소송 원고들에게 배상금에 해당하는 금전을 대신 지급하는 것이다.

양금덕(94) 일제강제동원 피해 할머니가 지난 3월 6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광주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해 "굶어 죽어도 이런 식으로 안 받겠다"며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광주인
양금덕(94) 일제강제동원 피해 할머니가 지난 3월 6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광주시민사회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정부의 '제3자 변제' 해법에 대해 "굶어 죽어도 이런 식으로 안 받겠다"며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고 있다. ⓒ광주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과정에 재단과 외교부는 수령을 원하는 피해자 측으로부터 "판결과 관련한 금전을 한국 정부에게 대신 지급 받는다"는 취지의 수령 신청서를 받고 있다.

아울러 외교부 당국자는 “이번 해법은 대법원 판결에 따른 피해자·유가족분들의 법적 권리를 실현하는 것으로서, 채권 소멸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당연하다. 

재단이 지급하는 판결금 명목의 금전이 원고들의 채권 소멸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다.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같이 우리 민법 469조는 채무의 변제는 제삼자도 할 수 있지만, 이해관계없는 제삼자는 채무자의 의사에 반하여 변제하지 못한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단은 "판결과 관련한 금전을 한국 정부에게 대신 지급 받는다"고 하고 있지만, 문제는 정작 ‘대신’의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즉 재단이 ‘누구’를 대신해 판결금을 지급하느냐는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대법원 판결에서 패소한 일본제철‧미쓰비시 등 일본 기업들은 한국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며, 줄곧 배상책임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법정에서 다툴 때는 언제고, 재판에 지고 나서는 그 결과를 못 따르겠다는 일본 기업들도 낯짝이 두꺼운 일이지만, 정작 일본 피고 기업들은 책임을 인정조차 하지 않고 있는데 굳이 피해국 재단이 먼저 나서서 그 책임을 대신 지겠다고 하는 모양새도 차마 눈 뜨고는 못 볼 지경이다.

주접을 떨어도 정도껏 떨어야지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한일정상회담이 끝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일본은 벌써부터 “강제동원 문제는 끝났으니 독도를 내놓을 차례”라며 설쳐 대고 있다. 

지난 날 잘못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한쪽 뺨을 내줬으니 나머지 한쪽 뺨도 마저 내놓으라는 것이 과연 일본의 ‘성의’와 ‘호응’인가?

정부는 "이번 해법은 대법원 판결에 따른 피해자·유가족 분들의 법적 권리를 실현시켜 드리는 것“이라며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강조하지만 이것은 법적 권리를 실현시키는 것이 아니라 법적 권리를 짓밟는 것이며, 어렵게 싸워 성취한 사법 주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는 것은 우매한 짓이다. 

윤석열 정권은 일반 상식에도 반하고, 법적으로도 허용될 수 없는 얼치기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지금의 사태를 적당히 무마해 보려는 허튼 수작을 당장 거둬야 한다.

강조하지만, 주권 포기에 남는 것은 국제적 웃음거리와 머저리 신세밖에 없다.

2023년 4월 13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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