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꿈을 꾼다.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간절히 그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그러기에 우리는 때때로 기적을 찾는다.

한참 지나간 드라마에서 이런 내레이션(narration)을 했다. “사람이 간절히 바라고 바랄 때, 자기에게 어떤 기적이 일어났을 때,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어떤 일이 이루어졌을 때, 이때 잠시 잠깐 이 세상에서 머물다간 어느 신이 그 간절함을 듣고 들어준 거라고.

간절히 바라고 바라면 잠시 잠깐 머물다 간 그 어느 신이 들어줄지 모르니까 간절히 빌라고! ”. 그러기에 간절히 바라는 꿈의 기적은 어느 신이 들어주지 않는 이상, 우리의 꿈은 꿈속에서, 또는 명상에서, 환상에서만 이루어진다.

독일어에서 꿈, 환상, 명상, 공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가 ‘트로이메라이’이다.

독일의 낭만파 음악가 슈만(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 1810~1856)이 한 여인을 사랑하면서 행복에 빠져 감정 충만한 아름다운 정서를 그리는 작품을 만들었다.

‘어린이 정경(Kinderszenen Op.15)’으로 ‘트로이메라이’는 이 작품의 일곱 번째 곡으로 장식하고 있다.
 

슈만의 ‘어린이 정경’

80대 자신의 고국에서 60여년만에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는 호로비츠.
80대 자신의 고국에서 60여년만에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하는 호로비츠.

슈만은 자신과 9살 차이가 나는 클라라가 그저 귀엽고 이쁘게만 보였다.

슈만에게 있어서 클라라의 사랑스러운 자태는 아름다운 여인이기 이전에 깨질까 봐 아깝고 두려운 하얀 백자와 같은 여린 존재였다.

슈만의 이런 마음을 클라라는 당연히 알았고 그녀가 슈만을 향해 쓴 편지에 그 마음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난 당신에게 아이처럼 보여질 때가 많은 것 같아요.”라는 클라라의 한 마디에 슈만은 그녀를 향한 행복한 감정 충만한 곡들을 멈추지 않고 무리 없이 만들어 냈다.

작품의 제목은 ‘어린이 정경’이지만, 결코 어린이를 위한 곡은 아니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즐겁고 재미있게 행복한 동심의 세계를 동경하고 그 기억들을 들여다보는 어른들의 생각과 추억을 위해 만들어진 곡들이다.

총 13곡으로 이루어진 ‘어린이 정경’은 3번째 곡 〈술래잡기〉와 9번째 곡인 〈목마의 기사〉에서는 어린이의 놀이를 들여다볼 수 있고 2번째 곡 〈신비한 이야기〉, 8번째 곡 〈난롯가에서〉, 13번째 곡 〈시인의 이야기〉 등에서는 상상력 풍부하며 넓은 환상의 세계를 엿보는 어른을 위한 어린이의 동심 세계를 그리고 있다.

그러기에 선율적으로나 리듬의 기교적으로는 전혀 어려운 연주 기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 마음 가볍게 우아하게 듣거나 연주할 수 있는 곡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용과 형식적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린이 정경’은 가볍고 작은 소품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연주자가 표현하는 연주 감성은 예술적으로 높은 감성과 자태를 연출한다.
 

7번째 곡 ‘트로이메라이’

‘어린이 정경’ 작품 13개 중에서 가장 서정적이며 달콤하고, 따뜻하며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환상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곡이다.

단순하게 A 프레이즈(phrase:악절을 이루는 한 부분)에서 B로 발전하여 점차 확대되는가 싶더니 어둡게 잠시 분위기를 바꾸어 바로 원래의 장조= (A')로 돌아와 곡을 마무리한다.

이 곡은 특히 주제에 대한 반복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끼는 것은 미세하게 선율에 변화를 주고 있으며 화성의 진행을 더디게 하지 않는 세련미에 그때 그때의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바꾸기 때문이다.

많은 드라마에서, 그리고 CF에서, 영화에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들어서 모르는 사람은 없을듯하다.

단순하고 순수한 선율로 구성되어 있지만, 연주자가 표현하는 감성의 기교는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자태로 남는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피아니스트들에게마저 무한한 존경과 찬사를 받았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우크라이나, 1903~1989)가 생의 마지막 시기에 자신의 고국에서 연주했던 ‘트로이메라이’는 80대 노신사의 최고의 순간이었다.

미국으로 망명하여 60여 년 동안 자신의 고국에서 연주하지 못했던 ‘꿈’을 80이 넘은 그때서야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꿈을 이뤘다.

잠시 잠깐 이 세상에 머물다간 어느 신에 의해 이루게 된 꿈을, 호로비츠는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에 실은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1호(2023년 4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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