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0만 년의 신비를 간직한 무등산

돌도 윤회한다.

아무리 크고 단단한 바위도 풍화와 침식으로 잘게 부서지면 흙이 된다.

흙은 침식과 퇴적을 반복하며 하나의 지층을 형성하는데, 지층이 지각운동에 따라 땅속 깊은 곳에서 높은 열과 압력을 받으면 마그마로 녹는다.

이때 마그마가 지표면에 용암으로 분출한 다음 굳으면 다시 돌이 되면서 암석의 순환고리가 완성된다.

돌의 윤회는 지구가 태어나 45억 년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수없이 되풀이되었다. 

영겁을 향해 도도히 흐르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 찰나의 시간을 사는 인간이 체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 보면 지금 우리 발에 채이는 작은 돌멩이도 실은 부서졌다 쌓이고 녹았다 분출한 지각운동을 수십억 년이나 반복한 끝에 탄생한 경이로운 존재다.


공룡이 활보하던 중생대 백악기 무렵 무등산은 뜨거운 용암이 분출하던 화산

지난 3월 4일 정상 개방의 날을 맞아 무등산 정상을 찾은 등산객들ⓒ손민두
지난 3월 4일 정상 개방의 날을 맞아 무등산 정상을 찾은 등산객들. ⓒ손민두

지난 3월 4일 국립공원 지정 10주년을 기념해 올해 처음 정상을 개방하던 날, 또다시 무등산을 찾았다.

매번 무등산을 오를 때마다 이곳이 지금부터 8천 3백만 년 전, 용암이 불을 뿜던 화산이었던 사실을 상상하기 힘들다.

그러나 점점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해발 700미터 부근에 이르면 서서히 화산의 풍모가 나타난다.

등산로 주변에 널브러진 암석이 예사롭지 않은데 모두 각이 지거나 날카로운 정으로 쪼갠 듯, 오각형 혹은 육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예전에 이 바위들은 모두 하늘을 향해 돌탑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그 후 풍화와 침식으로 부서져 도미노처럼 나동그라지고 중력에 의해 산사면으로 흘러내렸다.

지질학자들은 무등산 정상 천황봉을 비롯해 서석대와 입석대, 그리고 곳곳에 펼쳐진 너덜겅을 그 옛날 격렬했던 화산활동의 흔적으로 규명했다.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선이 풀려난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눈길을 잡아챈 산 아래 도시는 숨죽인 듯 적요하나 봄안개를 풀어내며 산자락을 차분히 어루만진다.

무등산을 밑에서 바라보면 봉우리를 이어주는 곡선이 너울거리는 춤사위 같다.

그러므로 길게 엎드려 누운 소의 등허리 곡선처럼 보드라운 능선을 음미하며 공룡이 활보하던 그 옛날을 상상하며 걷는 것이 무등산을 정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마른 숲 사이로 난 길을 힘들게 오르니 금세 몸이 더워진다. 모처럼 땀을 쏟자 모질지 못한 무등산이 얼마 안 가 서석대 앞을 내주고 만다.

오각과 육각의 바위기둥이 기하학적 형상을 하고서 병풍처럼 우뚝 서 있는 서석대는 아무 치장 없이도 그대로 작품이다.

지난 겨울 입석대 풍경ⓒ손민두
지난 겨울 입석대 풍경ⓒ손민두

'과연 누가 이토록 경이로운 조각을 해 놓았을까'라고 의문을 품어 본다.

비단 이러한 궁금증은 현재를 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니었다.

서석대에 올라 온 옛날 선비들은 목수가 먹줄을 튀겨 그 줄을 따라 다듬어 놓았다고 여길 만큼 바위의 정교함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자연의 바위가 인공의 모양을 하고 있는 이유는 목수나 석공의 재주가 아니다.

격렬한 화산 폭발이 일어난 다음 비와 바람과 세월이 지구의 몸을 조각했다.  

무등산 일대가 분화하던 지금부터 약 8천3백만 년 전 엄청난 화산 폭발로 수백 미터의 화산재가 쌓였다.

켜켜이 쌓인 화산재가 서서히 식으면서 수축하고 갈라졌다.

이때 5각에서 7각에 이르는 다양한 형태를 가진 절리로 이루어진 돌기둥이 만들어졌다.

이를 지질학적 용어로 주상절리대(柱狀節理帶)라고 부른다.

세월이 흐르자 주상절리는 차츰 풍화와 침식을 받아 서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모양을 갖췄다.

그 후 오랜 시간 빙하에 덮여 있다가 약 10만 년 전 빙하가 녹으면서 지표면에 드러났다.

무등산에 형성된 대규모 주상절리대는 영국의 자이언트 코즈웨이, 제주도 지삿개의 주상절리와 달리 바다가 아닌 높은 산의 정상부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드문 지질 경관이다.

게다가 그 생성이나 전개 과정이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독특하고 고유해 경관적 가치는 물론 학술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무등산이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라진 천왕봉 주상절리

서석대 정상 표지판 속 훼손되기 전 천왕봉 사진.ⓒ손민두
서석대 정상 표지판 속 훼손되기 전 천왕봉 사진.ⓒ손민두

서석대 정상에 오르니 봄볕을 받아낸 능선이 한껏 부풀어 있다.

서석대서부터 다시 시작된 능선은 천왕봉을 향해 부지런히 흘러가며 봄바람 한줄기를 얼굴에 쏟는다.

올해 첫 개방일을 맞아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로 등산로가 가득찼다.

사람들 틈에 끼어 발걸음을 옮기자 계절의 변화가 온몸에 닿는다.

할 수만 있다면 두 팔에 가득 담아 집에 가져가고 싶은 사방의 조망이 압권이다.

군부대 안으로 들어서 처음 만나는 봉우리가 지왕봉이다.

이곳도 서석대 입석대와 같은 주상절리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암봉인데 마치 불교 국가의 사원처럼 웅장한 모습을 뽐내는 암괴가 온 산을 호령하듯 위엄이 넘친다.

그러나 해발 1,187미터 높이의 무등산 최고봉 천왕봉은 이날도 군사시설물 때문에 접근이 불가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천왕봉 주상절리가 사라지고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네 군사정부는 1967년 천왕봉 정상부를 허물고 그 자리에 방공포대를 설치했다.

아무리 국가안보가 중요하기로서니 명산의 꼭대기를 허물어뜨리다니.

일제가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해 명산의 정수리에 쇠말뚝을 박고 경복궁 전각을 허물어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세운 것과 얼마나 다를까.

요즘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과거 우리나라에선 국가안보를 내세우면 산마루에 솟은 바위 따위를 깎아 없애버리는 일도 가능했다. 

올 9월이면 무등산 정상이 상시 개방 된다고 하지만 사라져버린 천왕봉 주상절리를 되찾을 길이 없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서석대의 미래 서석대, 입석대의 과거 서석대

지난 겨울 내린 눈으로 눈꽃이 핀 서석대ⓒ손민두
지난 겨울 내린 눈으로 눈꽃이 핀 서석대. ⓒ손민두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길에서 입석대를 마주했다.

이집트 신전의 오벨리스크처럼 우뚝 솟은 입석대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 고목처럼 중후하지만, 곧 승천할 듯 가볍기도 하다.

입석대도 서석대 등 다른 주상절리와 더불어 무등산의 대표적 명소다.

다만 서석대보다 풍화 정도가 심해 곧 쓰러질 듯 위태롭다.

짐작건대 입석대도 과거 서석대와 비슷한 형태였으나 지금의 모양으로 변모했을 것이다. 

그리 보면 입석대의 과거가 서석대고 서석대의 미래가 입석대라고 할 수 있겠다.

입석대 주변에 집채만 한 돌기둥이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나뒹굴고 있는데 이 일대에 얼마나 많은 입석(立石)이 분포했는지 짐작케 한다.

결국 이 바위들도 지금까지는 용케 돌의 형상을 유지하고 있지만 언젠가 깨지고 부서져 다시 암석의 순환과정에 동참할 것이다.

무등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광주 시가지를 이루는 평야와 굽이쳐 흐르는 영산강의 모습이 일망무제로 펼쳐져 산행의 피로를 잊게 해준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발아래 보이는 풍경은 지구가 태어나서부터 쓰기 시작한 장엄한 일기장 중 한 페이지일 뿐이다. 

ⓒ광주인
ⓒ광주인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어떤 모습으로 변모할지 아무도 모른다.

우주 만물은 생사와 인과가 끊임없이 변모하는 제행무상의 진리를 그 무엇도 거스르지 못한다. 

하산길을 채촉하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방금 눈앞에 마주한 수많은 바위들은 도도히 흐르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 인생이란 한낱 작은 포말에 지나지 않음을 가르쳐주는 말없는 스승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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