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온도는 아직까지도 쌀쌀해서 겨울이 쉽게 떠나지 않은 듯하지만, 논과 밭은 파릇파릇 슬그머니 조금씩 올라오는 새싹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거칠고 매서운 눈보라가 휘날리는 강하고 시린 추위의 겨울을 지나 부드럽고 상쾌하게 속삭이는 봄이 오기 시작함을 숨죽이며 조금씩 올라오는 새싹들이 알리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은 많은 이들에게 통상적으로 ‘강함, 웅장함, 고도의 감정을 전달하는 무겁고 장엄한 선율’ 등의 표현으로 단정되어 언급된다.
 

20대의 베토벤.
20대의 베토벤.

반대로 ‘우아하거나 감미롭다, 상쾌하다, 깔끔하다, 재미있다.’로 언급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베토벤의 음악은 항상 매서운 눈보라가 휘날리는 강하고 시린 겨울의 극한 절정을 표현하여 전달하는 작품이 많은 것 같은 착각을 할 때가 많다.

실제로 많은 작품들에게서 강하고 웅장하며 장엄한 분위기의 선율이 절정에 다다르며 환희의 끝을 보이기에 많은 이들이 오해를 하는 게 당연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베토벤도 세상에 둘도 없이 부드럽고 깔끔하며 상큼하고 살랑살랑 상쾌하게 봄바람을 일으키는 듯한 선율의 감성을 일으키는 곡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전혀 ‘베토벤 같지 않은 베토벤’을 경험하는 곡이라고 해야 할까?

겨울의 베토벤과 봄의 베토벤을 경험하는 ‘피아노 소나타(피아노 독주를 위한 소나타)’의 세계로 들어간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번(Op.2-3) vs 32번(Op.111)

베토벤은 25살이 되는 1795년부터 52살이 되는 1822년까지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한다. 청력이 상실되기 시작할 때도, 청력을 잃었을 때도 쉬지 않고 꾸준히 무려 27년간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하여 발표했다.

초기 소나타라고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3번’은 베토벤 최초의 ‘걸작 피아노 소나타’로 일컬어진다.

이 곡은 재미있는 테크닉으로 시작을 알린다.

이어지는 선율은 깔끔하기 그지없고 부드러우며 가끔가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마릴린 먼로(미국 배우)의 치마를 가볍게 스치며 지나가는 듯한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하는 상쾌한 봄바람을 느끼는 듯하다.

‘피아노 소나타 3번’은 베토벤이 고전파 시대를 대표하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이다.

그렇기 때문에 깔끔하다. 재미있다. 상쾌하다. 부드럽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감각이 정확하다.

그 감각이 때때로 톡톡 튀며 정겹고 부드럽게 찰랑거린다.

‘전혀 베토벤 같지 않은 깔끔한 베토벤의 곡’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곡이다.
 

50대의 베토벤.
50대의 베토벤.

하지만 역시나 1악장과 4악장 끝에서는 베토벤이 여느 때처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음량이 절정을 이루며 화려하게 막을 내리고 있다.

청력을 상실했던 시기에 작곡한 작품 중에 하나인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그야말로 겨울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곡이다.

마지막 소나타로 알려진 ‘32번’은 곡의 난이도 또한 높아 피아니스트들이 어려워하는 소나타이다.

이 곡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많은 이들이 난해한 곡으로 평가했다.

또한 완성되어 나온 악보가 오기 투성이였던 점도 더해져 이 곡은 출판된 지 30년 넘게 연주 불가능이라는 오명하에 방치되었던 곡이기도 하다.

사색적이면서 초절기교를 사용하는 ‘피아노 소나타 32번’은 매서운 추위와 바람을 거세게 몰아 일으키며 투쟁하는 듯한 절정의 순간에서 모든 것을 잠잠케 하는 강한 겨울의 내면을 느끼게 한다.

초월적인 선율의 깊이가 더해져 나타나는 순간은 베토벤의 마지막 절명의 창작 열기를 느낄 수 있다.

베토벤의 음악은 역시나 웅장하고 장엄하다는 표현에 걸맞은 곡이다.

선율 속에서 끝없이 투쟁과 평화를 갈구하며 극과 극의 양면성을 보여준 베토벤. 그가 선율로 느끼는 봄과 겨울은 어떤 것이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피아노 소나타 3번과 32번의 차이’라고 과감히 언급하고 싶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60호(2023년 3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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