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벗어날 수 없는 숙명에도 가능한 작은 변화들

다큐멘터리 ‘시간을 꿈꾸는 소녀’(박혁지 감독)는 무녀가 되어야 하는 운명 앞에 선 소녀 수진의 이야기다.

고등학생으로 수능시험을 준비하던 모습부터 무속인의 삶을 받아들이게 된 현재의 모습까지 7년이라는 세월을 담았다.

꿈에서 다른 사람의 운명을 보는 수진은 벌써 20년 차 무속인이다.

4살이 되던 해에 다른 사람의 앞날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미지. ⓒ (주)영화사 진진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미지. ⓒ (주)영화사 진진

수진의 할머니는 손녀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에게 묻지 말라'는 경고문까지 붙였지만, 수진은 가슴이 너무 답답하다며 그 종이 좀 떼어달라고 빌었고 그렇게 무녀의 길을 걷게 된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밸런스 게임처럼 그렇게 운명도 선택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수진에게 무녀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강요된 숙명이었다.

수진이 태어나고 수진의 아버지는 작명가에게 수진의 이름을 부탁했다.

작명가가 처음에 주었던 이름이 남자 이름 같아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수진의 아버지는 예쁜 이름을 원했고, 작명가는 수진이라는 이름을 가지면 아이가 무당이 될지도 모른다며 말렸다고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말을 믿지 않았고 수진은 정말로 무당이 되었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근심을 해결해줘야 했던 수진.

사람들은 애기보살 수진에게 자신의 앞날, 외도하는 배우자, 망한 주식, 팔리지 않는 아파트에 대해서 물어댔다.

하고 싶은 것 많았던 수진에게 자신의 운명은 너무 버겁고 벗어나고 싶은 굴레였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꼭 내가 하고 싶은 게 될 거야. 그래서 다른 걸로 내 인생을 돌려서 이걸(무당 일) 하지 않을 거야. 늘 그렇게 생각했어요.(영화 속 수진의 말)"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운명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았다.

수진은 대학에 가면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대학에 진학한다.

무당이 아닌 광고기획자를 꿈꾸며 과대표까지 맡아 열심히 대학생활을 시작한 수진은 좌절하고 만다.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미지 ⓒ (주)영화사 진진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미지 ⓒ (주)영화사 진진

주중에는 대학생으로 지내다가 주말이 되면 홍성 신당으로 돌아가 무녀로서 모시는 신을 섬겨야 하는 두 정체성을 살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학교생활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신당과 학교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는 할머니의 꾸지람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결국 캠퍼스에서 자신을 촬영하는 카메라마저 부담스러워진 수진은 다큐 촬영 중단을 요청했고, 영화에도 공백으로 남았다.

그리고 3년 뒤, 수진은 대학 졸업생이 되어 다시 화면에 등장한다.

수진은 주어진 운명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는 대신 그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선택한다.

스물다섯 살 평범한 대학원생이라는 삶 앞에서 잠시 고민하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제대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수진은 이제 국가무형문화재 104호 서울 새남굿의 전수자가 되었고 3년 뒤에 있을 이수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을 찾아와 무녀라는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흐느끼는 여인에게 수진은 “싫어, 안 해 해도 어쩔 수 없어. 나도 그랬어. 얼마나 울었는지 알아요? 도대체 홰 하필 나야? 그러면서 맨날 울었어요”라며 자신 역시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지금이 좋아요?”라는 물음에 “나쁘지 않아요. 난 너무 감사해요. 나아지는 사람들이 보이니까”라고 대답하며, “분명히 좋은 사람이 될 거야. 많은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될 거야”며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사실 이는 수진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 위로이기도 하다.

그녀가 나간 후 수진은 한동안 생각에 잠긴다.

아마도 그 여인과 자신이 살아가야 할 운명을 생각했을 수진은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에게 “들어오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말은 자신의 운명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북유럽 신화의 토르는 거인들과 술잔에 담긴 술을 비우는 내기를 한다.

그러나 술잔의 술은 아무리 들이켜도 줄어들지 않았다.

사실 그 술잔은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한 모금이면 바닥날 것 같았던 술이 아무리 열심히 마셔도 그대로였던 것처럼, 우리의 운명 역시 아무리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망망대해일까?

과연 우리는 운명의 법칙 앞에서 아무 결정권도, 아무런 저항의 힘도 가지지 못하는 것일까?

하지만 토르는 열심히 줄어들지 않는 술을 들이켰고, 비록 바다를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지만 썰물이라는 변화는 만들어냈다.

우리 역시 주어진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다고 해도 그 운명 속에서 작은 썰물은 만들 수는 있으리라.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미지 ⓒ (주)영화사 진진
영화 '시간을 꿈꾸는 소녀' 스틸 이미지 ⓒ (주)영화사 진진

세상에는 자신의 운명에 절망하지 않고 부지런히 바닷물을 마시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썰물의 시간에 드러난 모래 위에 모래성이라는 꿈을 쌓는다.

비록 밀물의 시간 앞에서 허물어질 꿈일지라도 그 꿈을 위해 기꺼이 짜디짠 바닷물을 마시는 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이라는 시간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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