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감독/각본/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개봉 한 달 만에 N차 관람 열풍을 이끌며 230만명을 동원,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3위에 기록됐다.

그때 그 시절, 남녀불문 뭇 청춘들의 심장을 요동치게 만든 만화가 한층 더 생생한 극장판으로 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이 작품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슬램덩크와 한때 청춘을 보냈던 이들이 어느덧 3040이 되었다는 점에 집중해보자. 제각기 바쁜 현실에 치여 제 심장 소리 한 번 제대로 느껴볼 여유가 없는 세대. 흔히 말하는 MZ세대의 ‘M’(밀레니얼 세대)에 속하는 이들에게 이번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와 같은 작품일 것이다. 가슴 웅장하게 만들었던 그 옛날의 이야기를 2시간 남짓한 극장판을 통해 짧지만 굵게 경험토록 하는 이 작품이 과연 반갑지 않은 이가 있을까?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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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판에는 가슴 뛰는 원작의 감흥을 그대로 녹여내면서 동시에 원작과 다른 부분도 일부 존재한다. 강백호의 관점에서 펼쳐졌던 이야기가 키 작은 포인트가드 송태섭의 관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극장판에 담긴 태섭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의 친형은 최고의 농구선수를 꿈꿨고 그의 영향으로 태섭 또한 농구의 길에 발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형이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자 형용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이게 되면서 그 자리를 태섭이 대신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겨나고 아픈 과거는 현재 펼쳐지는 경기에 영향을 미친다. 마치 농구에서 모든 공격이 포인트가드로부터 만들어지듯, 극장판에서의 이야기 역시 송태섭의 숨겨진 과거의 영향을 끊임없이 받는 것이다.

전국대회에서 산왕고와의 대결이라는 커다란 서사적 흐름에 더해진 태섭의 아픈 과거는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새로운 층위의 것이기 때문에 슬램덩크를 처음 접하는 관객은 물론이고 기존 팬들의 몰입력까지 깊게 끌어낸다. 영화는 태섭이 과거로 인한 심리적 한계를 기꺼이 극복하고 죽은 형의 그늘에서 벗어나 하나의 개별적인 선수로서 코트 위에 우뚝 서가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세밀하고도 정성스럽게 담아낸다. 관객들은 강백호와 또 다른 결을 지닌 성장캐릭터의 등장에 어색해하는 것도 잠시 그에게 기꺼이 감정을 이입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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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해서 남은 북산고 농구팀 4인의 이야기를 제쳐 놓지는 않는다. 원작에서 만큼의 밀도는 아니지만 각각의 캐릭터들을 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전사를 극장판에서도 다시 한번 펼쳐놓으며 서사의 폭을 확장시킨다. 마치 농구 경기에서 선수 모두에게 득점의 기회가 있고 그때마다 주인공이 된 느낌을 만끽할 수 있듯이 슬램덩크의 서사구조 또한 캐릭터들이 돌아가며 주인공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구성이다. 그중에서도 원작에서 유독 큰 빛을 발휘하지 못했던 송태섭이 극장판의 중심에 선 것은 매우 상징적일 수밖에 없는 일. 누구든 주인공이 될 기회를 언젠가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농구의 미덕은 현실 속 우리에게 크나큰 위로가 된다.

뿐만 아니라 슬램덩크는 원작이든, 새로운 극장판이든 북산고 뿐만 아니라 그와 대결을 펼치는 상대팀 선수들의 개성이나 숨겨진 전사를 그리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물론 주인공은 무조건 승리한다는 공식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못하지만(원작에서는 패배하는 경기도 더러 있다) 상대팀의 활약을 주인공만큼 극적이고 두드러지게 그려내는 것은 원작에서부터 이어져온 특징이다. 격렬한 대결 구도에 있으면서도 서로의 훌륭한 플레이에 대해서는 감탄하고 쿨하게 인정하는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쉽의 면모는 스포츠 세계에서 절대적인 ‘적’은 없다는 정신을 보여준다. 이는 경쟁심으로 인해 서로에게 결코 패스하지 않던 강백호와 서태웅이 마지막, 감동의 패스플레이를 보여준 것도 모자라 자신들도 모르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대목에서 또 한 번 증명된다. 여기에서 바로 원작은 물론이고 극장판의 성공을 이끄는 주요한 정서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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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간의 환상적인 팀워크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영화적 요소 간의 앙상블은 극장판에서만 느껴볼 수 있는 매력 포인트다. 우선 송태섭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정대만, 채치수, 강백호, 서태웅의 케미는 원작에서 느낄 수 있는 뭉클함을 그대로 재현한다. 이는 시종일관 자신 앞을 가로막았던 수비수들 사이를 힘차게 뚫고 시작되는 송태섭의 공격이 다른 4명의 선수들이 각자의 한계를 뚫는 기회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생동감 넘치는 영화적 연출과 록 스타일 OST의 조화로 인해 더 각별하게 그려지는데 만화책의 컷과 컷 사이에서 뿜어져 나왔던 역동성은 이제 쇼트와 쇼트 사이에서 공감각적인 생동으로 변환되어 종잇장에 느꼈던 것보다 몇 배나 더 강렬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특히 메인곡인 ‘Double crutch ZERO’을 필두로 구성된 OST에는 각 장면마다의 정서와 흐름이 적절히 녹아 있어 흥미롭다. 둔탁한 드리블 소리, 운동화 소리, 경쾌하게 골망을 흔드는 소리 등과 조화를 이루면서 완성해낸 흥겨운 박자감은 보는 이들에게 뭔지 모를 쾌감을 선사한다. 환상적인 호흡의 패스플레이와 그 속도감에 맞춰 자유자재로 완급 조절되는 곡의 리듬감에 점차 익숙해질 무렵에는 모든 사운드가 음소거 되는 순간도 등장한다. 바로 마지막 단 1점의 승부를 펼치는 하이라이트에서다. 정적을 활용한 극적 효과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인물이 아닌 자기 자신의 심장박동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잠깐의 시간을 제공한다. 그 옛날 만화책을 보며 분명 느꼈을 그때 그 소리, 그 느낌, 그 감정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있음을 깨닫게 하는 귀중한 정적의 순간이다.

슬램덩크는 타성에 젖은 채 무기력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 누구의 심장이든 빠르게 뛰게 만드는 건강한 각성제와 같다. 강백호, 서태웅이 되고 싶었던 청춘들의 낭만적인 꿈은 비단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심장이 있는 자, 그 누구에게나 유효한 것이었다. 바쁜 일상에 치여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 영화가 전하는 감동은 현실에 돌아와서도 삶의 동력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N차 관람의 열풍까지 일으키며 역대 흥행 애니메이션 3위에 기록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저력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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