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백성을 시민으로 훈련 시키다

우리의 고정관념으론 기차는 인간에게 이동의 자유를 안겨준 단순 교통수단일 뿐이다.

그러나 사고를 조금 확장해 기차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 기차야말로 문화와 예술, 역사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기차의 등장은 그동안 자연에 속박돼 있던 인간의 시간과 공간 개념을 일거에 뒤흔든 일대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증기의 힘으로 달리는 기차를 바라보며 동력이란 개념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생면부지의 사람들 틈에 섞여 장시간 이동하는 과정에서 근대 시민으로서의 생활문화를 익힐 수 있었다.

예민한 감성과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예술가들도 기차의 혜택을 많이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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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등열차' - 오노레 도미에(1863-65) 캔바스에 유채. 65.4 x 90.2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그들은 여행으로 얻어진 견문의 확대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으며 과감한 예술적 시도를 감행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과거와 다른 형식과 주제를 가진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대표적으로 인상주의 미술을 꼽을 수 있다.

기차를 통해 공간의 제약을 떨쳐낸 인간의 활동은 점점 과감해졌다.

특히 정치적 수세에 몰린 사람들에게 기차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기차를 타고 손쉽게 국경 밖으로 망명해 신변을 지킬 수 있었고,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자 재빨리 귀국해 혁명을 승리로 이끌었다.

무엇보다도 근대의 대중은 기차를 타면서 알게 모르게 근대적 질서와 규칙을 배우기 시작했다.

뒤에 말할 몇 개의 단어에 그 단서가 들어있다.

그 속에 들어있는 기원과 역사를 살피면서 근대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추동한 기차가 우리의 생활문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보자.
 

■트레이닝(training)은 기차(train)에 ing를 붙인 단어

언어는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는 그릇이다.

특정 단어 속에는 그 시대의 관심사는 물론 가치나 이념을 추론할 수 있는 단서가 들어있다.

예컨대 지금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는 최신 유행어를 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관심사는 무엇이고 또 환부와 열망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언어는 역사적이다. 탄생한 배경에 역사와 시대가 있다.

이런 까닭에 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외래어 트레이닝(training)에 대해 주목한다.

트레이닝은 기차 트레인(train)에 ing를 붙인 낱말이며 훈련과 교습을 의미한다.

이 말은 지도자가 정해진 목적지까지 사람들을 인도한다는 뜻이 함축돼 있다.

같은 유의어로 마차를 뜻하는 코칭(coaching)이 있는데 이는 헝가리어 코치(coach)가 어원으로, 손님이 원하는 목적지까지 편안하게 모신다는 뜻이다.

두 단어는 비슷하면서도 약간 차이가 난다.

트레이닝란 말에는 엄격하고 기계적이며 일방적이라는 의미가, 코칭이란 말에는 유연하고 개인적이며 헌신적인 서비스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의 이동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해준 마차나 기차가 훈련이나 교습, 코치를 의미하는 스포츠 용어가 되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기차의 등장은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킨 나비효과의 시작이었다.

인간의 일상생활과 언어생활에까지 영향을 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으며, 지역과 역사를 지우고 백성을 시민으로 트레이닝 시킨 강압적인 근대의 트레이너였다. 
 

기차의 등장은 생활 혁명의 시작, 기차를 타면서 근대의 질서를 배우고 익히다

기차역(The Railway Station.1862)- 윌리엄 파웰 프리스.
기차역(The Railway Station.1862)- 윌리엄 파웰 프리스.

문명이 발달한다고 시대가 바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발달한 문명에 대중이 적응하고 이를 누림으로써 문화가 바뀌어야 시대가 바뀌는 것이다.

우리에게 다가온 근대라는 새 시대가 그랬다. 산업혁명으로 모든 분야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지만, 대중이 달라진 환경에 맞추어 적응하지 못했다면 근대라는 새 시대는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변화를 이끄는 주체는 언제나 사람이며, 대중이 달라진 시대의 질서와 규칙을 따르고 지킴으로써 시대의 변화가 완결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새 시대가 필요로 한 질서와 규칙을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을까.

그 답을 훈련과 교습을 뜻하는 트레이닝이 기차 트레인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에서 찾아보자.

그리하면 당시 가장 절대적인 교통수단이었던 기차가 대중의 훈련과 학습에 대단히 유용하게 활용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시대는 그동안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시간에 대해서도 혁명적 사고의 전환을 요구했다.

철도와 각종 제조회사가 생김으로써 시간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측정과 활용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부분 농경사회 구성원들이었던 당시 대중의 시간 관념은 지금처럼 논리적이거나 구체적이지 않았다.

농사는 하루보다 계절 혹은 연 단위의 주기성에 의존한 산업이었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이해가 없어도 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못했다. 

자연히 옛사람들의 시간 기준은 시간 자체보다 ‘식전’이나 ‘식후’처럼 특히 먹는 행위의 시점이 기준이었다.

하지만 허술한 시간 개념으로는 기차를 탈 수 없었다.

기차는 마차와 달리 엄밀하고 정확한 시간에 맞춰 운행했으므로 이를 이용하려면 적어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시간 관념을 가져야 했다.

결국 대중들은 기차를 이용하면서 시간 관념을 습득하고 과거와 달라진 사회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중이 익히고 학습한 시간 개념은 사회가 점점 조직화, 체계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기차에서의 에티켓 프라이버시

기차는 승차를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동등한 자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유로운 교통수단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부자가 타는 1등 칸과 서민이 타는 3등 칸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요금에 따른 구별이지 신분에 따른 차별이 아니었다.

서민도 비싼 삯을 지불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1등 칸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교류가 드물던 옛날 사람들이 기차 안에서 난생 처음 만난 사람들과 오랜 시간 마주 앉아 서로 눈이 마주치는 고통이 만만치 않았다.

여기서 ‘프라이버시’(privacy)란 개념이 생겼다. ‘프라이버시’란 ‘사람의 눈을 피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프리바툰(privatun)에서 유래한 말로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혼자 있을 권리라는 뜻이다.
 

철도 건설 현장의 고된 노동에서 유래한 ‘노가다’

철도의 건설은 고된 노동이 필요한 힘들고 어려운 작업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지금처럼 기술이나 장비가 발달하지 못했던 초창기 철도 건설 현장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세계철도사에는 수많은 철도건설사업장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는 기록이 많다.

노반을 다지고 터널을 뚫고 철교를 놓으면서 무거운 침목과 레일을 운반하는 일은 모두 사람의 힘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이때 일본인이 주도하는 공사장에서 ‘노가다’란 말이 생겼다.

이 말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 건설 현장에서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 사고를 막고 인부들 사이에 호흡을 맞추기 위해 만든 구령 ‘도가타’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가타(かた, 形)는 모양과 덩치를, 도(ど,都)는 거느린다는 뜻으로 우두머리 또는 으뜸을 의미한다.

작업 중 반장이 도(으뜸)라고 구령을 붙이면 일꾼들이 가타(덩치)라고 후렴을 붙이면서 침목과 레일을 날랐다고 한다.

‘도가타’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덩치 좋다’라는 뜻과 통하는데 우스꽝스럽고 모멸적인 구령이 ‘노가다’로 전와(傳訛)되어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자리 잡았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우리를 태우고 근대의 시간을 달려온 기차는 수천 년 동안 뿌리박힌 시간과 공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고 대중을 훈련 시킨 훌륭한 트레이너였다.

대중이 기차를 학습 도구로 삼아 기계문명에 적응하고 의식체계와 행동양식을 바꿔가면서 우리에게 근대라는 새 시대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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