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혹은 정통적인 박일우 첫 소설집

『완벽한 방』은 박일우 작가가 ‘다시 소설 쓰기’를 마주면서 오래전 묻어두었던 단편들을 꺼내어 고르고 다듬어 묶은 첫 소설집이다.

계간 《영화가 있는 문학의 오늘》의 추천으로 문단에 발을 들인지 5년 만이다.

한국문단이 잊은 지 오래된 고전주의적 스타일의 소유자’(문학평론가 방민호)라는 평가를 얻었던 작가는 첫 소설집에서 전통적이고 정통적인 단편 소설의 미학을 추구하는 일곱 편의 작품을 골라 실었다. (아래 작가의 말 참조)

박일우 작가의 첫 소설집 '완벽한 방' 표지그림. ⓒ출판사 지식과감성# 제공
박일우 작가의 첫 소설집 '완벽한 방' 표지그림. ⓒ출판사 지식과감성# 제공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은 확실히 작가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출발 지점이 될 것이다.

“이 방에 있는 카메라는 정확히 다섯 대입니다.”

작가 박일우가 첫 소설집 『완벽한 방』을 출간한다. 대학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창작을 전공했으나 소설 쓰기보다는 연구자로, 교육자로 살아왔던 그에게, 다시 원고지 앞으로 돌아와 소설을 쓴다는 것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순간’ 중 하나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소설을 쓰겠다고 첫 마음을 먹었던, 한없이 가벼웠던 스무 살의 어느 날도, 그런 순간 중에 하나다. 그날의 선택 이후 나는 늘 빚을 진 기분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삼십 년이 훌쩍 흘렀다. 마흔을 넘어서까지 문단의 근처만 어슬렁거리다 간신히 말단에 자리를 잡고 받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낙인은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막아 주기도 했고, 마음을 초라하게 만들어 고립시키기도 했다.”
 

‘예민한 루저’들에 대한 이야기

『완벽한 방』은 박일우 작가가 ‘다시 소설 쓰기’를 마주면서 오래전 묻어두었던 단편 일곱 편을 꺼내어 묶은 첫 소설집으로, 청춘에서 중년, 노년으로 흘러가는 삶의 흔적과 기억들이 방, 집, 산장, 유치원, 작업실 같은 공간을 통해 재구성되고 있다.

공간의 기억을 재구축하는 인물들을 두고 단국대 최수웅 교수는 ‘예민한 루저’들에 대한 이야기로 규정한다. 박일우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미 어른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아직 아이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몸은 늙었으나 ‘여전히 세상은 두렵고, 살아가는 일은 버거’운 미성숙의 상태, ‘덩그러니 혼자 버려진 채 진흙탕을 헤쳐 나가야 하는 상태’ 말이다.

회사원은 “발가락 사이사이에서 쩍쩍 소리를 내며 얼음판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으면서 직장생활을 이어가고(<투승>), 고시원 생활자는 “빛도 안 드는 음습한 방”에서 “유폐의 시간”을 견디며(<완벽한 방>), 떠나간 아내와 딸을 그리워하는 사내는 “한없이 처량하고 쓸쓸해” 보이는 동네로 찾아와 폐업한 유치원 교실에 기거한다(<고양이, 쿨라인>). 영국에서 유학했던 남자는 귀국 후 자리를 잡지 못했고(<귀향의 조건>), 가수는 “어느 순간부터 곡을 쓰고도 열기가 부풀지 않았고, 잠도 오지 않는” 증세를 토로하며(<수리산장에서의 일주일>), 남편의 죽음을 납득하지 못하는 여자는 “내 의지를, 매번, 너무 쉽게, 단번에 무너”트리는 몸을 감내하며 홀로 시간을 견디고(<마르 K>), 젊은 시절 세상을 바꾸려 했던 사내는 변화에서 밀려나 찾아오지 않는 옛 동료를 기다리고만 있다(<자영사>). - 해설 중에서
 

치욕을 견디며 역전의 기회를 노리거나, 아니면 포기하고 패배자로 게임을 끝내거나.

박일우 작가. ⓒ출판사 지식과감성# 제공
박일우 작가. ⓒ출판사 지식과감성# 제공

이러한 인물들은 자기 ‘분열’ 상태를 통해 세상으로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인물의 분열을 활용한 창작방법은 소설집에 실린 일곱 작품에서 두루 확인된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시점을 혼용하고, 시간 순서를 헝클며, 서사 주체를 복수로 내세우면서 독자의 이해를 지연시킨다.

이는 방해가 아니라 간청에 가깝다. 익숙한 방식으로 손쉽게 판단하지 말고, 각 인물이 전달하는 사연에 더 주목하라는 의도다.

지연이 무의식적 분열을 통해 드러난다면, 주목은 의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결합을 통해서 구현된다.

박일우 작가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소설 창작을 공부했으며,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만주표상문학’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편 「투승」과 「귀향의 조건」이 『문학의 오늘』 2018년 여름호, 가을호에 추천되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현재 광주대학교 기초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학생들과 문학을 공부하며 소설 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박일우 작가 전자우편: piw73@gwangju.ac.kr
 

              박일우 작가의 말

나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했던 순간들이 있다.

고집과 타협, 성공과 실패 같은 세상의 이분법으로는 도저히 감싸 안을 수 없는 순간들, 살다가 문득문득 일상을 뚫고 올라오는 순간들, 그 어이없는 선택을 되돌아보며 주체할 수 없는 부끄러움으로 낯이 뜨거웠던 순간들, 그래서 기어이 잊을 수 없는 순간들……

소설을 쓰겠다고 첫 마음을 먹었던, 한없이 가벼웠던 스무 살의 어느 날도, 그런 순간 중에 하나다.

쓰는 것에 대한 욕심도 맹렬한 집중도 고만고만 이었으나, 그날의 선택 이후 나는 늘 빚을 진 기분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삼십 년이 훌쩍 흘렀다.

문단의 근처에 어슬렁거리다 간신히 말단에 자리를 잡고 받은, 소설을 쓰는 사람이라는 낙인은 번잡한 세상으로부터 나를 막아주기도 했고, 마음을 초라하게 만들어 고립시키기도 했다.

여기, 이제야 세상에 내놓는 이야기들로 그 빚을 조금이나마 정산할 수는 있을까?

내게 남은 날들 중 이런 순간이 또 올 수 있을까?

어쩌면 첫 소설집을 내겠다고, 작가의 말을 쓰고 있는 지금이 가장 부끄럽고 끝도 없이 작아지는, 두고두고 소환될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은 소설 쓰는 일을 멈추고, 소설을 읽고 분석하는 일로만 시간을 보냈다.

소설 쓰는 것에 대한 도피는 분명 아니었다.

그래 이쯤이면, 고만하면 되었다는 나의 빠른 인정 때문이리라.

그래도 그 시간 동안 나는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었다.

늘어놓았던 생각과 관계들이 정리되었고, 도시를 떠나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선배 작가들의 작업에 스며든 글을 쓰는 숙명을 목도하기도 했다.

소설을 쓰는 것이 피를 돌게 하는 호흡이 되고, 일용할 양식이 되는 그런 숙명들 말이다.

소설 쓰기에 대한 욕심도, 집중도 그만하면 된 나에게 그들의 호흡은 부러움을 넘어 좌절에 닿았다.

좌절을 애써 감추고, 내가 다시 소설을 쓰겠다고 컴퓨터 앞에 앉았을 때, 지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병상에서 물은 적이 있다.

고단한 생의 마지막 질문, 아들, 왜 소설을 쓰겠다고 그 고생이니? 나는 아직 그 질문에 답을 찾는 중이다.

세상에 내놓겠다고 골라낸 습작들은 하나같이 생의 전환점에서 길잡이를 했던 나의 고백들이다.

많은 이들에게 미뤄둔 감사를 전하며, 누구보다 이 책이 내가 가진 어느 것, 아낄 것 하나 없는 나의 영과 현과 수에게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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