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태도로 삶을 살아내려는 한 부부의 이야기
감독-프로듀서 부부이자 극 중 부부로도 출연한 박홍열-원향라의 주목할만한 독립영화

한 해의 시작이 언제는 평온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하루가 멀다 하게 어수선하고 시끌벅적한 일들로 가득하다.

새해 벽두부터 들려오는 구직난, 얼어붙은 노동 시장, 구조조정, 고물가의 엄습 앞에서 각자 허리띠를 졸라매는 정도로는 고단한 살림살이를 벗어나기 어렵다.

척박한 삶을 살아가는 서민 다수의 현실은 고금리나 인플레이션 같은 각종 경제 지표나 통계로 드러나기 이전에, 각자 내던져진 생의 한복판에서 피부로 즉각 체감하는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는 물질적으로 쪼들리는 현실과 맞닿은 듯한, 지지부진한 삶의 편린을 담아내는 영화를 마주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삶의 질이 보장될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며 나아질 가능성은 없어 보일지언정, 더 나빠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평범한 부부의 삶을 낮은 온도로 찬찬히 들여다본다.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영화의 주인공이자 부부인 영태(박송열)과 정희(원향라)는 일정한 직업 없이 간간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한다.

영화가 시작하면 좁은 부엌의 바닥에 나란히 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는 한 부부를 마주하게 된다.

부부는 재계약 때 집주인이 전세금을 올릴까 봐 걱정한다. 영태는 주로 영상을 작업해왔고, 정희는 학교 강사 등으로 근근이 일해 왔으나 자신들의 경력을 살려 일하기란 쉽지 않다.

이들은 공사장, 택배, 대리운전, 마트, 식당 등 각종 직종, 직군을 가리지 않고 불안정한 노동을 경험해왔다. 이들 부부가 삶을 함께 통과하며 겪는 문제들은 차곡차곡 쌓여가며 하나의 일상을 구성한다.

특정한 이야기를 다루고 대상들을 포착하는 영화는 평범한 우리 주변의 사람들과 가까워 보이는 것을 무대로 설정으로 삼아 일상을 담아오곤 했다.

영화가 이러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담아낼 때, 이른바 일상성이라는 표현을 빌려 이를 설명하곤 한다.

그런데 영화에서 일상 또는 일상성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가공된 픽션과는 다르게 날 것 그대로의 우리 일상과 닮아있는 이야기를 펼쳐 보이는 듯한 영화들이 있다.
 

그런데 일상을 다루는 영화로 곧잘 분류할 수 있는 것일까.

영화에서 일상이란 가공된 허구적 이야기와는 다른 무언가를 단순히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일상이라는 추상적인 명제 혹은 주제를 앞세운다는 명목으로 평범한 방식으로 일화를, 장면을 단순 나열하거나 전시하는 영화를 일상성을 다룬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구질구질한 일상을 카메라로 담고 편집하고 후반 작업에 이르는 과정도 가공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어떤 예술 분야를 막론하고 자본에서 자유롭기란 어렵지만, 그중에서도 영화는 특히나 돈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예술이기도 할 것이다.

특히 다큐멘터리, 1인 작업 방식을 실행하거나 고수하는 이들이 물론 존재한다.

그러나 상당수의 경우에 집단적 작업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는 배우든, 스태프든 작업에 투입되는 인력(노동력)부터 고려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그리고 돈의 문제란 비단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상업영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언뜻 고상해 보이는 ‘예술영화’라는 것들도 영화제 등의 각종 장터에서 시연을 거쳐 대다수의 경우 배급과 유통의 과정에서 시장의 선택에 놓인다.

그래서 ‘장터’의 예술이라는 말은 어떤 분야보다도 영화에 적절히 부합할지 모른다. 

독립영화는 태생적으로 프로덕션과 인력의 규모를 위시한 전 측면에서 고예산의 작업을 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 또한 매우 한정되어 보인다.

많은 독립영화 창작자들은 일단 제한된 예산 속에서 접근성이 수월한 로케이션을 물색하고, 자신의 일상에서 조금 더 친숙하거나 흥미를 끌었던 소재를 가져오곤 한다.

그리고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 가운데서는 자신의 작업을 주류 영화 산업에서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포석이자 주춧돌로 삼는 경우가 많다.
 

압도적인 시각 효과와 스펙터클로 무장한 영화들이 각광받으며 규모의 산업으로 영화가 성장하면서,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는 어느새 예산의 양적 규모로 구분되곤 한다.
 

하지만 독립(independent)라는 본연의 의미로 돌아간다면, 대자본에 상대적으로 덜 구애받고 자신만의 독자적 비전과 영역을 개척하고 작업 방식을 관철하는 이들 또한 소수이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같은 독립영화 군으로 분류되는 작품들 간에도 상당 부분 차이를 자아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천만 원 가량의 제작비로 완성된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는 수공업 방식에 가까운 자체제작품이다.

감독 박송열과 프로듀서인 원향라는 각각 먹고 사는 문제로 시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루는 영화의 주인공 부부인 영태와 정희로 출연했다.

박송열 감독은 촬영, 조명, 사운드, 편집까지 맡았다. 여기까지만 말한다면 통상의 저예산 독립영화의 열악한 작업 방식을 고스란히 대변하는 것 같다.

그런데 외부의 제작지원사업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 이목을 끈다. 이보다 영화를 차별화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영화를 작업하는 이들의 태도일 것이다. 자신의 영화는 일상적이고 미니멀한 작은 영화이며, 그러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구가 있다는 박송열 감독의 인터뷰에서 그러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한편 빈곤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삼는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기생충>(2019)은 귀감이 되는 영화로 남을 것이다. 가난한 젊은 부부나 연인, 가족에 관한 영화도 얼마든 거론할 수 있다.

장건재의 <잠 못 드는 밤>(2013)이나, 김대환의 <초행>(2017)처럼 불안한 조건 속에 살아가는 부부 또는 오랜 연인들이 맞닥뜨려야 할 현실적 삶을 들추며 비평적으로 주목받았던 작품들도 있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가 다루는 가난은 조금 다른 것 같다.

현실적 굴레를 소재로 삼지만, 불행하거나 불온한 삶을 자극적으로 과장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정교한 서사적 장치들을 동원하지 않는다.

비참한 현실이 만들어내는 불의에 맞서 저항하거나 혹은 투쟁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또는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상을 그리지 않는다.

영화에서 가난은 어느새 부부에 자연스레 침윤한 나머지 너무도 당연한 상태로까지 비치기도 한다.

그리고 부부에게 가난이란 일종의 통과의례이거나 혹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 것 같다.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영화는 무엇보다 ‘함께’한다는 감각을 천천히 조명해나간다.

오프닝에서 나란히 실직 상태로 일터에도 잘 나가지 못하던 이들은 어쩌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지만 그날 서로 술잔을 기울이며 따뜻한 밥을 챙겨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삶을 영위해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부부를 둘러싼 뚜렷한 갈등, 지독한 사랑, 성애적 묘사 등은 곧잘 드러나지 않는다.

부부는 마냥 슬프지도, 행복하지도 않아 보인다. 악수하는 것으로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는 장면은 이들 부부의 성격과 영화의 정서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불안정한 환경에 놓인 사람들치곤 사뭇 무던해 보이는 부부의 일상에도 슬슬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당장에 삶을 유지할 만큼의 잔고가 화수분 같은 존재일 리 없다.

그리고 극 중에서 영태가 말하듯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회적 관계를 포기하고 살아갈 수만은 없다.

더군다나 자생적으로 살아갈 물적 토대가 없는 부부가 외부의 세계와 단절한 채 자신들의 생활 반경에서만 안온한 생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편 종종 인맥이나 연줄로 불리곤 하는 사회적 관계란 의지나 보탬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들 간에 형성되는 물질적 이해관계는 서로를 구속하고 되레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영태는 친한 형에게 빌려준 카메라를 돌려받지 못한다.

정희는 친한 동생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사채를 쓴다. 정희의 모친 생일날에 저마다 선물을 준비해온 형제들과 달리 빈손으로 온 부부는 전전긍긍한다.

이 대목에서 드물게 서로에게 날을 세우기도 한다. 영태가 대리운전을 하고, 사채를 갚지 못해 난처해진 정희가 배달하며 어느덧 생활 루틴이 달라진 이들은 끼니도 따로 해결한다.

식사를 매개로 서로와 오붓하게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도 어려워졌다.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과연 함께하는 부부의 일상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을까.

극 중에서 부부는 삶의 질은 지켜야 할 필요성을 피력한다. 

상시로 들이닥치는 가난에 대응하고, 삶의 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삶의 존속을 위협하거나 파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물질적 기반이 보장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생활을 조금이라도 더 평탄하게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 

그러나 저절로 그리 되지 않는다.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 속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당장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을 모면하거나 적어도 악화만은 막고 현상을 유지하기 위한 부부의 몸부림은 더 좋지 않은 결과를 낳기도 한다.

종국에는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천천히 좀먹기도 한다.

티끌모아 태산보다는 티끌모아 파산이라는 말이 왠지 적법할 상황에 이르는 수많은 현실의 사람들 또한 이러한 과정을 밟기도 한다.

어쩌면 ‘낮에도 덥고 밤에도 덥고’ 혹은 ‘낮에도 춥고 밤에도 춥고’가 영태-정희 부부의 삶 혹은 우리의 인생은 아닐까.

덥기만 하거나 춥기만 해서 힘든 것이 우리의 삶은 아닐까.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 지극히 당연해보이는 명제이지만 성취하기 힘든 평범한 일상을 언제쯤 완만히 통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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