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글이 되기를 바라면서

여지껏 살아오면서 보란 듯이 잘 한 것도 별로 없지만 그렇다고 손가락질 당할 정도로 못된 짓도 하지 않았다.

내가 원한 것은 내 땅 내 나라 내 민족끼리 싸우지 않고 평화스럽게 사는 것이었고 그렇게 노력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 내 인생을 거짓없이 고백하고 싶었다. 이것이 바로 그 기록이다.

고통을 느끼지 않고 잠을 자듯 편하게 세상을 떠나고 싶다.

2022년 12월 25일 아침이다. 성탄절이란다.

위에 글은 오늘 새벽에 처음으로 쓴 글이다.

인간이 자기 의사로 태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낳아주니까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고생문을 나섰다는 험구도 하지만 사실 태어난다는 것이 행복만은 아닌 것이다.

심지어 어느 험구가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행복이고 그 다음은 태어나자 바로 죽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

각자 판단할 문제다.

1936년 12월9일. (양력) 10월26(음력)이 내 생일이다. ‘쥐’띠라고 한다.

살 만큼 산 나이라고 할 것이다.

언제 죽어도 아쉬울 것이 없을만큼 살았다.

장수하는 집안이 아닌 집안에서 내 나이 정도면 오래 산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욕심이 한이 있으랴. 하루에 피죽 한끼를 먹어도 오래 살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욕심이라고 한다.

그 역시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서울(한성)에 명문가라는 곳(종로)에서 태어나 별 고생없이 자랐지만 그런 얘긴 그만 두자.

6.25란 민족의 비극도 더 거론하기 싫다.

집안이 망했다는 것은 그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군대생활도 사고없이 마쳤지만 소년시절 꿈이었던 축구선수는 6.25로 접었고 대신 럭비선수가 됐다.

그 얘기도 그만 두자. 인간은 평생을 살면서 수도 없이 변한다.
 

■인간의 변화

피난살이 전쟁에서 고생도 지지리 했고 운동을 하면서 주먹도 키웠다. 허나 깡패는 아니었다.

옛날 양반댁이라 필사본이 많았다.

사랑방 서재에는 필사본이 꽉 차 있었다.

거기서 나는 삼국지 필사본을 다 읽었다.

삼국지 10번 읽은 사람과는 말도 하지 말라고 했다지만 나는 스무 번도 더 읽었을 것이다.

삼국지에 나오는 똘마니 장수들 이름을 지금도 좔좔 외우는 이유가 거기 있다.

책읽는 버릇은 그 때 들였고 고등학교 때도 책 많이 읽은 것으로 소문이 났다.

한번은 수학시간에 ‘여학생의 정조’라는 금서를 몰래 읽다가 걸려서 교무실에 끌려간 적도 있다.

악서건 양서건 많은 책을 읽은건 글을 쓰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믿는다.

더구나 학교 신문에 수필을 썼는데 후에 동국대학교 대학원장을 하신 이동림 교수께서 내게 ‘넌 작가가 되야겠다’고 하셨다.

큰 영향을 받았다.

난 노래를 잘했다. 초등학교시절에는 늘 학예회에 뽑혀 나갔다.

그 때 노래를 잘 하던 예쁜 여학생이 있었다.

줄넘기를 하던 여학생의 예쁜 얼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내가 조숙했나보다.

경기여고를 나와 이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가서 결혼을 했는데 미인박명인가 홀몸이 됐다.

내 고모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40살이 넘어서 귀국해 교수도 하고 글도 썼지만 보수적 생각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 함께 부르던 노래가 기억난다.

‘밤 한톨’이란 노래다 가사가 틀려도 이해를 해 달라.

‘땍대굴 굴러나왔다. 밤 한톨 굴러나왔다.

어디서 굴러나왔나.

낮잠 주무시던 할아버지 주머니 속에서 굴러나왔다.

무엇할까.

구워 먹지 어디다 굴까. 숯불에 굽지

설설 끓거던호호 불어서

너하고 나하고 달궁달궁 아무도 모르게 달궁달궁.

호호 참말 밤한톨 호리호리 밤한톨.

쉬이, 떠들지 마라. 할아버지 낮잠 깨실라.

80년 전에 기억이다.

얼마 전 그를 만났을 때 그도 이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 초등학교 때 나를(?) 괜한 생각을 하면서 잠시 즐거움에 빠진다.
 

■과거는 아름다운가

내 평생 잊지 못할 기억들이 기록될 것이다.

’허공에 그린 마지막 낙서‘라고 했다.

그러나 죽어서도 잊지 못할 낙서들이다.

이 글을 읽을 동무(친구)들은 거의 세상에 없다. 슬프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