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송기숙 교수 추모시] 곧고 깨끗한 문장 한 줄
[고 송기숙 교수 추모시] 곧고 깨끗한 문장 한 줄
  • 박몽구 시인
  • 승인 2022.12.06 2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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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고 깨끗한 문장 한 줄
-고 송기숙 교수님 1주기에

박 몽 구(시인•교육지표동지회 회원)
 

한 사람의 손아귀에 모든 것 움켜쥐기 위해
삼천리가 거친 군홧발에 짓눌려 있을 때
그는 단 한 줄 곧은 글로
우리들의 잠든 자유혼을 깨웠다
입에 물린 재갈을 단숨에 풀었다
닫힌 교실 활짝 열어
하고 싶은 말 마음껏 쏟아내게 했다

일제의 손아귀에서 해방된 지 33년
여전히 국민들의 요구를 묵살한 채
한 사람만을 위한 성을 쌓아 올려서는 안 된다고
강의실 밖 거리에 서서 말했다
자유를 빼앗고 국민을 볼모로 삼은
일왕의 교육칙어를 모범답안 삼아서 베낀
국민교육헌장은 폐기되어 마땅하다고
그는 맑고 곧은 문장을 써 내려갔다
국민 스스로 내일을 설계하는 자유 빼앗은 채
영원히 끌고 가고픈 독재의 욕망 가리키는 대로
앵무새처럼 따라 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말했다

자유를 빼앗고 국민에게 굴종을 강요하는
제국의 망령 은근히 되살아나고
한 사람을 위한 헌법 폐기되어야 한다고
온몸을 실어 외치는 사람들
차고 비좁은 감옥으로 밀어 넣던 시절

그는 침묵이 강요된 강의실을 박차고 나와
온 거리에 살아 있는 말들을 풀어놓았다
일신의 안녕 돌보지 않은 채
굽히지 않는 혀로
독재의 어두운 그늘이 사라져야 한다고
단호하게 외쳤다
오체투지의 정신으로 거리에 서서
한 사람만을 지키는 긴 사슬 끊고
자유로운 세상을 앞당기고자 일어선
5·18광주민중항쟁의 밑거름이 되었다
총과 칼로 막아서는 군대에 맞서서
시민들을 구하는 데 온몸을 던졌다

이제 또다시 침묵이 강요되고
국민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드는 모리배들
부끄러움 모르고 고개 드는 때
삼엄한 군홧발 앞에 맨손으로 맞선
송기숙을 다시 호명한다
그가 묵묵히 걸어간 가시밭길을 따라
살아 있는 정신을 지닌 자라면
강요된 침묵을 깨고 알 권리를 외쳐야 한다
사위 막힌 안락한 자리 버리고 일어나
교실에 밝은 등을 걸어야 한다

그가 일신의 안녕 버리고
묵묵히 헤쳐간 가시밭길
이어서 지치지 말고 꼬박 걸어가
깨끗한 새벽을 열어야 한다
제 생각대로 말하고 글 쓰는 세상 향해
자유의 날개 활짝 펴야 한다
삼천리의 주인들에게는 묻지도 않은 채
남의 손으로 그어진 분단의 장벽 걷어내고
흰옷 입은 겨레붙이들 다 함께 춤추는 대동세상
손에 손 잡고 활짝 펼쳐야 한다

 

ⓒ광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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