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 청년이 스러졌다. 삶 자체가 청년이었던 분이다. 단출한 옷차림에 늘 모자를 착용했다.

전직 국회의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늘 근사한 모습이었다.

모든 인연들은 동지였다. 이 동지, 김 동지, 정 동지, 한 동지, 장 동지, 채 동지 등. 동지의 중심에는 흔들림 없는 친일청산이 굳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기에 생면부지의 초연들도 자연스럽게 동지가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큰 나무는 뜻으로 큰 그늘을 만들었다.

지난 2016년 12월 당시 김원웅 전 의원(21대 광복회장)이 5일 전남대학교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주연
지난 2016년 12월 당시 김원웅 전 의원(21대 광복회장)이 5일 전남대학교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이주연

그리고 그 그늘에는 어김없이 기회주의에 분노하는 시절인연들로 북적였다.

그 중심에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의 허준약초학교가 있었다.

“이 동지, 허준약초학교를 설립한 이유를 말해줄게요. 나는 부모님(부친 조선의열단 무정 김근수 지사, 모친 조선광복군 전월순 여사) 덕분에 조국으로부터 과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비교적 순탄한 정치여정도 부모님 덕분이었고 조국의 은혜였습니다."

"그런데 정계은퇴를 한 이후에 보은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결과가 허준약초학교랍니다. 이곳에 있는 야생화는 내가 특사로 워싱턴과 평양을 다닐 때 백두산을 비롯하여 북녘에서 가져온 것과 남녘의 한라산을 비롯한 산지사방에서 자생하는 것들입니다."

"북녘에서 온 것은 명명을 해놓았으니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허준약초학교의 강좌 중에 두 강좌는 필수과정입니다. 하나는 수강생들이 직접 이곳에 오셔서 야생화를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현대사 강의를 듣는 것입니다. 우리 현대사는 너무 많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허준약초학교는 세상에서 가장 허름한 학교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뜻은 우주를 덮을 만큼 굉유했다. 그래서였을까? 폭발적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야생화가 인도하는 우리 역사 톺아보기에 열광했다. 더욱 다행인 것은 수강생들이 수도권에 거주했다는 것이다. 반향은 작지 않았다.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이 두터워졌다는 것이 그 반증이었다.

진실의 힘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창출했다. 마음이 사무치면 꽃이 피고, 시절인연 닿으면 열매 맺는다 했던가.

노정객의 불멸의 열정이 꽃을 피워냈던 것이다. 시절인연의 거대한 산맥에 이르기까지는 짧지 않은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지만 말이다.

2016년 12월, 광화문 빌딩숲 사이로 질주하는 손돌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던 날들이었지만, 민중의 용광로는 그 어느 때보다 활활 끓어오르고 있을 무렵이었다.

국정농단에 대한 역류하는 민심의 파도가 솟구치고 있었다. 그 아래에는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물결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 동지, 전남대학교 강연하러 광주에 갑니다.”

기쁜 마음에 버선발로 마중했다. 한마디 마디마디가 필생의 호흡으로 뚝뚝 떨어지는 듯했다.

날이 잘 선 벼린 칼날처럼 예리하게 가슴 깊이 각인되었다.

지구촌을 누비며 걸음으로 체득한 민족의 미래를 위한 혜안이자 경험의 산지식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만이 아닌 박근혜 정권을 태동시킨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은 친일과 냉전에 편승하여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는 세력이 핵심이다.”

“단죄 받았어야 할 친일반민족 세력에게는 미국이 은인이었겠지만, 자주적 해방을 염원했던 국민에게는 미국은 은혜국이 아니다.”

“한국의 이익을 우선하며 미국을 비판하면 빨갱이 또는 진보로 매도당했다. 세계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나는 보수에 가깝다.”

“트럼프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치면, 한국은 더 강한 의지로 코리아 퍼스트를 주창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애국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또 다시 박근혜 정권 같은 불의한 정권이 탄생된다면 대한민국은 망해야 한다. 그것이 역사정의다.”

“버니 샌더스는 20년 전 이야기를 10년 전에도 했고 오늘날에도 했다. 버니 샌더스는 달라진 것이 없지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미국 국민의 환호와 열광이다. 나 또한 10년 전 친일청산을 외쳤을 때 거의 모든 정치인이 외면했지만, 요즘 광화문에 나가보면 친일청산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정치인은 분단과 전쟁에 대한 참회를 가슴 속에 품고 있어야 한다. 북한은 자주성이 강한 나라다. 우리 시각으로 북한을 판단하면 안 된다.”

빗나가는 말씀이 없었다. 금과옥조였다. 그 바탕에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며 지구촌의 시각을 통찰한 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광복회장이라는 직책과 시절인연을 지었다.

김 회장님의 말씀은 사자후가 되어 산지사방을 요동케 했다.

왼쪽부터 한대수 이사장(아시아 1인극제), 장호권 광복회장(제21대), 김원웅 광복회장(제20대), 필자, 장승호 사진작가. ⓒ이주연
왼쪽부터 한대수 이사장(아시아 1인극제), 장호권 광복회장(제21대), 김원웅 광복회장(제20대), 필자, 장승호 사진작가. ⓒ이주연

민족의 자주성을 드높이고자 하는 호민(豪民)은 열광했다.

호사다마였을까? 미루어 짐작컨대 기회주의 세력의 발호였으리라. 당신 홀로 감당하시기에 녹록치 않으셨으리라.

급기야 몹쓸 병마에 사로잡혔다. 외롭고 고단한 암 투병이었다. 그리고 끝내 일어서지 못하시고 스러지셨다.

이 비정한 역사의 노정을 어디까지 감내해야 한단 말인가. 민족사에 흐르는 슬픔과 분루를 어찌 삼켜내야 한단 말인가.

역사는 씨줄과 날줄의 얽음처럼 엮어져 가는 것이리라. 태초의 어둠을 뚫고 나오는 한 줄기 빛 여명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어제의 여명이 오늘의 여명을 인도하여 어둠을 뚫고 내일의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김원웅 회장님께서 남기신 그 빛나는 영웅적 삶의 궤적 또한 우리 역사에 길이길이 남아 친일청산과 자주국가의 그날까지 영원히 우리 곁에 함께 하리라.

친일청산의 그 고단한 외길에 온 몸을 던지신 김원웅 회장님을 기억하고 추모하며, 님의 뜻 가슴 깊이 새겨 회장님의 부활을 학수고대하겠나이다.

이제 무거운 짐 다 내려놓으시고 영면하소서.

허준약초학교의 어느 여름날 거창 하늘춤꾼과의 추억을 헤메이며 배웅드립니다.

2022년 1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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