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강정 투쟁의 기록 화가

2021년 10월 작가를 처음 만났다. 제주에서 태어나 조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고향으로 돌아간 작가였다.

작업실은 구도심에 있었고,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10월 낮은 더웠고, 작업실에는 무더위가 여태 자리하고 있었으나 작가의 왼손은 열심히 붓질을 해내고 있었다.

2022년 8월, 다시 작가를 만났다. 예술공간 이아에서 전시 중이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하면서 삶과 예술이 일치한, 행동주의 예술을 보여온 강정 기록화 전시였다.

밖은 더웠지만 전시장은 서늘하리만큼 냉기가 흘렀다.

그림 속 수많은, 사람들이 구럼비의 아름다운 부활과 투쟁의 발신으로, 절망과 희망이 함께 전송되고 있었다.
 

■몸을 잃고 구럼비를 얻다
 

고길천 화가. ⓒ광주아트가이드
고길천 화가. ⓒ광주아트가이드

작가의 그림행동은 2013년부터 시작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10여 년이란 시간을 작가는 구럼비로 살았다.

모든 전시 작품은 해군기지 관련 강정마을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에 대한 증언의 성격을 가졌다.

해군기지 건설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치열한 모습이 기록된 84점이다.

방대한 작업으로 아크릴 물감, 오일바, 사진, 콜라주 등 혼합재료를 사용한 대형 크기의 판넬 작품 11점과 종이 위에 목탄으로 그린 73점이 바로 그것이다.

화살표를 따라 걷다 보면 분노가 치민다. 쉽게 지나칠 수가 없다.

치열함이 온전하게 담겼다.

2008년, 여름 강정마을 주민들은 제주해군기지 반대를 알리는 5박6일간 도보순례부터 2011년, 7~8월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비상 선언과 함께 온몸에 쇠사슬을 두른 투쟁까지 처절한 저항이 그대로 옮겨져 현장성을 보여준다.

2013년 8월, 작가는 강정평화대행진 중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한여름 더위는 작가를 무너트렸다.

병상을 털고 일어난 작가에게 치명적인 오른손 마비가 왔다. 구럼비와 오른팔을 바꾼 셈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대로 주저앉지 않았다. 왼손으로 그림을 그리는작가로 거듭났다.

작가는 “2007년 제주도 강정에 해군기지가 생긴다고 뉴스가 나오기 시작했다. 4·3항쟁과 평택이 생각났다. 그래서 해군기지 건설 문제에 마음을 두게 됐고, 그와 관련된 작품을 하기 시작했다”. 고 말했다.

2011년, 작가의 실천과 기록 행동은 한겨레신문 <주목받은 12인의 미술인>으로 선정되었다.
 

리얼리즘은 작가의 의무
 

‘붉은 구럼비’의 첫 작품은 「1948년 강정」이다. 작가는 제주해군기지반대운동의 출발을 4·3으로 잡는다.

「1948년 강정」은 시체로 누워있는 주민과 총을 들고 서 있는 군인을 대비시킨다.

해군기지반대운동 과정에서 체험한 모든 형태의 폭력이 4·3에 가해진 국가폭력과 본질상 같은 것임을 이 그림은 화두로 제시한다.

가장 압도적인 작품은 단연 ‘붉은 구럼비’다. 왜 ‘붉은 구럼비’일까.

왜 그는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폭파된 구럼비 바위를 붉은색으로 표현한 것일까.

작가는 도록에 ‘붉은 구럼비’를 소개 글을 통해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바위가 지금도 살아있다는 것을 붉은색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구럼비는 1.7㎞에 달하는 거대한 통 바위다. 한 몸으로 이루어진 바위란 뜻이다.

혈맥처럼 수맥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콘크리트 바닥이 돼버리는 그 상실감은 작가에게 엄청난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9년 전 강정 기록화를 그려야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강정평화대행진 중 뇌졸중으로 쓰러져 2년 동안 병원에 있었다. 후유증으로 오른팔이 불편해졌고 그림을 못 그릴 줄 알았는데, 선배, 동료, 후배들의 도움으로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며 “4·3을 다룬 현기영 선생님의 소설과 강요배 선배님의 4·3 역사화가 모범이 되었다. 그래서 강정마을에서 일어난 국가폭력을 그림으로 기록하게 되었다”고 강정 기록화를 그리게 된 동기를 들려주었다.

작가는 현실과 경계를 두지 않고 행동하는 예술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실천한다.

고길천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고길천 작품. ⓒ광주아트가이드

그리고 실천한 내용을 기록한다.

구럼비의 부활을 꿈꾸며 연대하며 기록으로 그림을 그린다.

현장성 그 자체인 기록화가 10년이란 시간 동안 새로운 장르를 구축한 것이다.

작가는 동시대를 기록해야 한다.

시대에서 유리된 작업은 당대를 호흡하지 못하며 미래를 예견할 수도 없다.

내가 숨 쉬며 사는 곳이야말로 리얼리즘의 보루다. 작가의 빠른 쾌유를 빈다.


**윗 글은 월간 <광주아트가이드> 155호(2022년 10월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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