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먹기는 쉬워도 막상 만들기는 어려운 음식이 김밥이다. 주 재료인 김을 굽고 밥을 짓고 간을 하는 작업부터 일이다.

밑준비가 끝나면 이제는 부재료를 다듬어야 한다. 단무지, 고사리, 소세지, 계란에 밑간을 치고 한줄 한줄로 다듬는 준비작업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멸치, 치즈, 김치 같이 특별한 재료라도 들어가면 김밥 한 줄에 들어가는 정성은 배가 된다.

게다가 김밥은 딱 한 줄만 만들 수 없으니까 맘을 먹고 김밥을 말자면 남은 재료가 아까워서라도 기본 열 댓 줄은 만들어야 한다.

이런 노동 집약 음식이 2,000원 정도 밖에 하지 않고 어딜 가든 쉽게 살 수 있으니까 보통 이러한 김밥에 담긴 세세한 정성을 무심코 지나치기 마련이다.

ⓒ

 영화 <말아>(곽민승, 2022)에서 눈길이 가는 부분은 김밥 속 재료 같이 일상적이지만 섬세하게 안배된 디테일들이다.

디테일들이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큰 의미를 담고 있거나 치밀한 서사적 관계망을 펼치고 있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말아>의 디테일은 별 의미 없는 것들, 너무나 흔하고 일상적이어서 스크린 안의 화면에서 조차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쉽기 때문에 더욱 눈길을 끈다.

다시 말해 <말아>의 영화적 눈에 띠지 않아서 시선을 자극한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 주리(심달기)의 방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대낮에 주리는 낮잠을 늘어지게 자고 있다.

머리맡에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휴대용 게임기가 화면이 켜진 채로 널브러져 있다.

지난밤 게임을 하다 잠든 모양새로 이불도 깔지 않는 바닥에 누워 있다.

밤새 게임을 하고 늦잠을 자는 주리는 게으른 백수 같아 보이지만, 그녀의 방은 나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오히려 취향을 저격하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꾸민 듯 안꾸민 듯 정리되어 있다.

그것도 가성비가 좋은 것들로만 말이다.

100만원을 호가하는 명품 가전 청소기를 그대로 카피한 무선 청소기, 심플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 덕분에 완판 행진을 이어간 중국제 선풍기, 그리고 벽면에는 음악과 영화 포스터가 안락하고 ‘힙’한 방안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자리하고 있다.  

ⓒ

  특별한 듯 아닌듯한 소품들처럼 주리는 평범한 취준생 여성이다. 취업시장에 내세울 만한 특기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게으른 것도 아닌 평범함 그 자체다.

미장센과 캐릭터의 평범함은 무미건조한 서사와 맞물려 배가된다.

<말아>에는 명확한 기승전결이나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없다. 맛으로 표현하자면 삼삼한 김밥의 맛이라고나 할까?

분식집에 가면 메뉴판에 가장 첫 머리에 있는 김밥 맛처럼 이야기는 큰 굴곡 없이 담백하다.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청년 백수 주리는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인스타 그램의 전남친 사진을 보며 눈물을 속으로 삼키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어느 날 엄마의 김밥집을 당분간 맡으라는 미션 아닌 미션이 주어지고 김밥집과 집을 오가는 주리의 한가로운 나날을 그린 것이 <말아>의 이야기다.

주리가 갑자기 요리에 재능을 보여서 김밥집이 번창한다는 그런 성공 스토리는 없다.

단골들에게 김밥을 파는 소소한 일상들이 이어질 뿐이다.

ⓒ

 물론 영화의 청춘들은 힘겹다. 주리는 취업에 실패하고 이원(우효원)은 시험에 고군분투한다.

이러한 청춘들의 이야기는 자칫하면 지나친 감성과 설명조로 이야기를 전달해서 기시감이나 거부감을 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소재다.

하지만 <말아>는 기발한 현실 탈출법이나 전략을 제시하지 않는다.

작은 변화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거나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말아>는 구구절절 하게 말하지 않고 담백하게 자연광 같은 따스함을 지녔다.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