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전문]

일제 피해자들이 한일관계 개선의 제물이냐?
외교부는 의견서 제출 사과하고 즉각 철회하라!

 

미쓰비시중공업 자산(특허권‧상표권) 매각 재항고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피해자들의 심정을 어찌 다 말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루가 3년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우선, 대법원이 왜 이렇게까지 시간을 끌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사건의 맥락은 매우 단순하다. 미쓰비시가 배상금 지불 능력이 없어서 4년 동안 판결 이행을 지체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기회가 없었던 것인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1일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진 외교부장관의 광주방문을 앞두고 의견선 철회와 공식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예제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1일 광주광역시의회 시민소통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박진 외교부장관의 광주방문을 앞두고 의견선 철회와 공식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예제하

우리는 한국 대법원 판결이 이렇게 가벼운 것인지, 황망할 뿐이다. 민사소송법에서 강제집행 절차를 둔 이유가 무엇 때문인가?

충분한 지불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고의로 법원 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미쓰비시와 같은 악덕 채무자로부터 선의의 피해자를 보호하자는 것이 법의 취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4년 동안 법원 판결을 비웃고 있는 이런 악덕 채무자를 법으로 강제하지 못한다면 사법부 판결이 무슨 소용인가?

대법원 명령이 휴지조각보다 못한 처지라면 사법부 권위가 왜 필요한 것인가? 대법원은 좌고우면 하지 말고 이 사건을 조속히 판결하라!
 

가해자가 오히려 큰소리치고 배짱 내미는 어처구니없는 태도가 현 정권에서 빚어진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여유를 갖는 것을 넘어, 이제는 만용을 부릴 정도로 주객이 완전히 뒤바뀐 것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불과 몇 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그 단적인 예가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이다.

우리 외교부가 대법원 담당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해 사실상 판결을 미뤄달라고 한 것은, 한마디로 벼랑 끝에 서 있는 피해자를 벼랑 아래로 떠미는 것과 다름없다.

또한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은 배상도 거부하고 면담도 거부하는 미쓰비시의 헛된 용기에 우리 정부가 손을 보태 준 것에 다름 아니다.

윤석열 정부는 원고 5명 중 3명이 줄줄이 사망하고, 이제 할머니 2명 밖에 남지 않은 참담한 상황이 보이지 않는가?

광복 후 77년을 매달려 온 것이 고작 이 꼴을 보려고 했던 것인가?
 

ⓒ예제하
ⓒ예제하

4년 동안 배상 명령을 회피하고 있는 미쓰비시의 행태를 보고서도 어떻게 재판부에 판단을 미뤄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가?

피해자들을 돕지는 못할망정, 어떻게 가해자 전범기업 미쓰비시에 힘을 보탠다는 말인가?

이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판단과는 별개로, 윤석열 정부는 의견서 제출 그 자체만으로도 피해자들에 대한 중대한 국가폭력 가해자다.

외교부의 행위는 강제집행 이외에는 다른 수단이 없는 일제 피해자들의 손발을 묶어놓고, 오히려 강제 매각 위기에 처한 미쓰비시를 ‘해방’시켜 준 것과 같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2일(금) 대법원 확정판결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일본제철), 양금덕 할머니(미쓰비시중공업)를 만나기 위해 광주를 방문할 계획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의견을 경청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광주 방문을 앞두고 있는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묻고 싶다.

언론을 향해서는 피해자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하면서, 뒤에서는 대법원 담당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해 갈 길 바쁜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는 것이 피해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인가?

피해자를 돕기는커녕, 대한민국 법률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에 재를 뿌리는 것이 피해자를 존중하는 태도인가?

강조하지만, 우리는 정부가 피해자들을 만나는 것에 반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냥 만날 수는 없는 일이다.

힘겹게 마지막 사투를 벌이고 있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외면하고, 대신 전범기업 손을 들어줬던 외교부가 아무 일 없었던 듯, 사과 한마디 없이 웃으며 피해자들 손목을 부여잡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래서 정중하게 요청드린다.

피해자를 찾아뵙는 것은 좋지만, 공식 사과 표명 없이 피해자들의 손을 부여잡는 것은 삼가해 달다.

그것이 피해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아울러 외교부에 요구한다. 외교부의 의견서 제출은 일본기업 자산이 현금화될 경우 추가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던 일본의 부당한 압력에 우리 정부가 굴복한 외교적 수치이자, 국민 정서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다.

또한 외교부의 이 문서는, 대법원 최종 판단과 별개로 그 자체로 역사의 치욕으로 기록될 것이다.

따라서 외교부는 지금이라도 이 의견서가 폐기될 수 있도록 외교부 스스로 철회해야 한다. 그것은 국가적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도 매우 엄중하고 시급한 일이다.

냉엄한 국제현실에서 윤석열 정부의 고민을 우리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예제하
ⓒ예제하

그러나 광복 77년이 되도록 사죄 한마디 듣지 못하고 있는 일제 피해자들을, 한일관계 회복이란 명분에 쫓겨 그 제물로 삼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해서 얻는 국익이 진정한 국익이며, 일제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팽개치면서 얻는 한일관계 개선이, 진정한 관계 개선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우리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전범기업 손을 들어줬던 외교부가 아무 일 없었던 듯, 피해자들 손목을 부여잡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정부는 의견서 제출에 대해 피해자들에게 정중히 사과하라!

정부는 우리 외교사에 치욕으로 기록될 대법원 의견서를 즉각 철회하라!

2022년 9월 1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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