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문 [전문]

목숨 값 ‘931원’ 내 놓는 일본정부
日전범기업 강제집행 차단 나선 한국정부!

 

또 다시 마주하는 참담한 현실에 말문이 막힌다.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일본연금기구’가 지난 7월 6일 근로정신대로 동원된정신영 할머니의 계좌에 931원을 송금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이 931원은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을 한화로 환산한 값이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4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일제 당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 제작소에 강제근로를 한 정신영 할머니에게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일본연금기구'가 지난 6일 정 할머니의 계좌에 931원을 송금한 것을 두고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931원은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을 한화로 환산한 값이다. ⓒ예제하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이 4일 광주광역시의회에서 일제 당시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 제작소에 강제근로를 한 정신영 할머니에게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일본연금기구'가 지난 6일 정 할머니의 계좌에 931원을 송금한 것을 두고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931원은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을 한화로 환산한 값이다. ⓒ예제하

정신영(鄭信榮. 1930.2) 할머니가 일제의 강압과 회유에 못 이겨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간 것은 1944년 5월, 만 열 네살 때였다.

일본은 근로정신대로 동원된 10대 소녀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배를 곯아가며 죽도록 일했지만, 월급 한 푼 손에 쥐어 보지 못했다.

심지어 또래 친구 6명은 안타깝게도 지진으로 공장 건물더미에 묻혀 짧디짧은 생을 마치고 말았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인간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마저도 빼앗겼다.

구사일생으로 고향에 돌아왔지만,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력’은 끝내 평생을 따라다니는 ‘멍에’가 되었기 때문이다.

끌려간 것도 서럽고 억울한데, 남편은 물론 자식들한테조차 일본에 다녀온 사실을 숨겨야 했던 피해자들의 한과 눈물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무릎꿇고 백번 사죄해도 부족할 판에, 일본 정부는 90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껌 한 통 값도 안되는 한화 931원을 지급해 또 한 번 피해자들을 ‘우롱’했다.

ⓒ예제하
ⓒ예제하

한마디로 ‘악의적인 모욕’ 이외엔 더 이상 설명할 길이 없다.

제대로 하면 후생연금 탈퇴수당은 77년 전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으로 귀환할 당시 지급됐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후생연금’의 존재 사실조차 피해자들에게 감춰왔고, 마지못해 수당을 지급하면서도 그동안의 화폐가치 변동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77년 전 액면가 그대로’ 지급한 것이다.

‘악의적인 우롱’이다.

일본 정부는 2009년 양금덕 할머니에게 99엔을 지급해 물의를 빚을 당시에도 ‘규정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이는 변명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1973년 후생연금 보험법을 개정해, 화폐가치 변동에 따른 차이를 보전해 주기 위한 ‘물가향상제도’를 실시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규정이 없었던 게 아니라, 규정이 있음에도 한국에 거주하는 피해자들만 그 적용대상에서 배제한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양심’이다.

중국의 피해자들에 대한 사례와 비교해볼 때, 강자에게는 엎드리고 약자는 짓밟는 일본의 ‘참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99엔 지급’에 진심으로 사죄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미불임금 및 연금 관련 기록 등을 전면 공개하고, 제대로 지급해야 한다.

일본이 이렇게 피해자의 인권을 모독하고 무시한 데는 우리 정부의 태도도 크게 한몫을 하고 있다.

ⓒ예제하
ⓒ예제하

특히 윤석열 정부는 ‘한일관계 복원’을 구실로 일본에 한없이 충성스럽고 비굴하기 짝이 없다.

단적인 예가 지난 달 박진 외교부 장관의 일본 방문이다.

박 장관은 하야시 일본 외무상, 기시다 일본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민관협의회’ 출범 등 일제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다.

특히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 현금화가 이루어지기 전에 바람직한 해결방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상식적으로 말이나 되는 일인가?

해결 방안은 가해국과 가해 기업이 내놓아야 할 일이지, 왜 피해국이 해결방안을 내놓아야 하는가?

일제 전범기업 고용인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피해 국가의 외교 수장이 이런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다는 말인가?

어찌하여 피해자의 입장에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방해를 한다는 말인가?

이처럼 일본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보고, 혹여라도 역사적 사실을 잘 모르는 다른 나라에서 한국이 가해자이고 일본이 피해자라고 자칫 오해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이 정부에게는 국가의 존엄성조차 없는가?

이것만이 아니다. 지난달 26일 외교부는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 특별현금화명령(강제매각) 사건을 맡고 있는 대법원 담당 재판부에 ‘의견서’를 제출함으로써, 강제집행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나섰다.

ⓒ예제하
ⓒ예제하

이 과정에서 정부의 해명은 적잖게 충격적이다.

외교부 한 당국자는 2019년 일본이 일방적으로 자행한 수출규제 조치를 예로 들며, “일본 기업 자산이 실제로 넘어가게 되면 일본이 보복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그런 상황에서 현금화를 해야 하는 것인지”라고 밝힌 대목이다.

정부의 이번 대법원 ‘의견서’ 제출은 결국 일본의 부당한 압력에 굴복한 셈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강제집행’은 정당한 사법절차의 하나다.

특히 언제 생을 마감할지 오늘 내일을 알 수 없는 고령의 피해자들에게는 미쓰비시로부터 권리를 확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4년 동안 조롱하고 있는 일제 전범 기업의 손발을 묶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쳐 쓰러져가는 피해자 측의 손발을 묶어 놓고 말았다.

다시 말해, 윤석열 정부는 일제 피해자들이 늦게나마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1의 전범기업 미쓰비시를 강제매각 위기에서 ‘해방’시켜 준 것이다.

일본후생노동성 '일본연금기구'가 지난 7월 6일 일제 당시 미쓰비시중공업에ㅓ 강제 근로한 정신영 할머니에게 보낸 931원. ⓒ예제하
 931원은 후생연금 탈퇴수당 99엔을 한화로 환산한 값.일본후생노동성 '일본연금기구'가 지난 7월 6일 일제 당시 미쓰비시중공업에ㅓ 강제 근로한 정신영 할머니에게 보낸 931원. ⓒ예제하

윤석열 정부에 다시 한번 강조한다.

사죄도 반성도 없는 전범기업을 위해 불순한 ‘의견서’나 작성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제에 쓰라린 아픔을 겪은 피해자를 희생양 삼아 한일관계 복원을 구걸할 때가 아니다.

그에 앞서 “사죄 한마디 듣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다. 우리나라가 이것 밖에 되지 않으냐?”는 양금덕 할머니의 간절함에 우선 답해야 할 때다.

“우리들 죽기만 바라느냐. 사죄도 하지 않는데 용서를 할 수 있겠느냐?”는 정신영 할머니의 이 한탄에 우선 답해야 할 때다.

- 99엔 웬말이냐. 일본 정부 사죄하라!

- 사죄없이 용서없다. 미쓰비시는 사죄하라!

- 굴욕외교 중단하고 의견서를 당장 철회하라!

2022년 8월 4일

(사)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관련기사
저작권자 © 광주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