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그리던 북한 땅 못 밟고 26일 94세로 운명
전국 통일활동가, 사회단체 회원 등 추모 이어져

1950년 이후 꿈에 그리던 북한을 가지 못하고 타개한 이두화 통일애국열사. ⓒ예제하
1950년 이후 꿈에 그리던 북한을 가지 못하고 지난 26일 타개한 이두화 통일애국열사. ⓒ예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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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그리던 북한에 가지 못하고 지난 25일 운명한 통일애국열사 고 이두화 선생 추도의 밤이 26일 오후 7시 고인의 빈소가 마련된 광주 서구 매월동 국빈장례문화원에서 통일활동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박상춘 범민련광주전남연합 부의장의 사회로 열린 추도의 밤은 호상을 맡은 조대회 범민련광주전남연합의 인사말로 시작했다.

이어 박동기 남녘 현대사연구소장의 고인이 걸어온 길 소개, 김혜순 양심수후원회장과 김영승 범민련남측본부 김영승 고문,  오효열 6.15공동위원회 광주본부 상임대표,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명예의장은 고인의 생전 통일애국의 삶을 추모하는 추도사가 이어졌다. 

양심수후원회 양희철 고문과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 상임대표 장헌권 목사는 추도시로 고인의 애국통일의 삶과 영혼을 위로했다. 

끝으로 고인의 생전 삶을 조명하는 추모영상이 상영했다. 

통일애국열사 고 이두화 선생은 1928년 전북 삼례에서 태어나 중국 용정(광명여중)에서 어린시절을 보내다 해방 이후 함경남도 함주군 천원면에 살면서 아버지가 교장으로 재직한 나진여고를 졸업하고 1947년 김일성종합대학 사학과 입학했다. 

대학 3학년이던 1950년 6월 한국전쟁과 함께 전남 무안으로 여동생과 함께 정치공작대로 남하했다가 인천상륙작전으로 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백운산, 지리산에 입산하여 빨치산 정치공작대로 활동 중에 1954년 2월 체포됐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이후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으로 두 번째 체포돼 4년여간 광주형무소에서 투옥됐다가 석방됐다.

전남 옥과고에서 역사교사를 역임했으며 전남 나주 남평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통일단체 후원 활동을 해왔다. 

5년 전 광주백운동 요양원으로 옮겨 투병생활을 이어오다가 지난 25일 오전 94세를 일기로 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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